최선의 해결책이 가장 편안한 해결책을 의미하지 않는다

2020-01-06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길이 항상 최선의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위험을 감소시켜줄지는 모르지만 배움의 기회를 감소시킬 수도 있다.

문제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을 찾으려고 시도할 때, 또 다른 문제들로 귀결되는 방식으로 행동하여 해결하려고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자신을 편안함에 묶어두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관점이 두려워서 모르는 영역을 탐구하는 것을 거부하게 되는 것일지 몰라도, 이는 우리의 인생의 여정을 떠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들은 만족감이 결핍되어 있는 편안한 생활 패턴에 정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완벽한 생활 방식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주된 목표나 가치 또는 사회의 목표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우리를 저지하며 극복할 수 없는 그 장애물을 피하지 못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만 같다.

우리의 안전지대 너머의 두려움은 우리를 실패로 이끈다.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거나 도전에 직면한다는 단순한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해로운 것에 더 매달리게 된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고통에 매혹되어 있다. 우리는 이를 뺏어가려는 무언가 혹은 누구에게나 강력히 대항하려 할 것이다.

두 악마의 작은 하수인, 편안함: 최선의 해결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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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우리는 개인으로서나 웰빙으로서나 전반적인 성장엔 거의 기여하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곤 한다. 우리는 해롭거나 심지어 위험한 상황에서도 편안한 환경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우리는 우리의 능력보다 떨어지거나 도움이 되지 않은 일을 지속하기도 한다. 이는 자신도 모르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에 더 많은 책임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렇게 우리는 최선의 해결책이 평소의 것에 정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익숙한 것이 일반적으로 더 편안하지만 편안함은 과대평가가 되어 있다. 편안함이 항상 건강 혹은 마음의 평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편안함에서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내포하는 두려움이 너무 커서 표면적인 고통을 견디는 것을 선택해 버리지만 이는 우리를 더욱 강렬하며 끝나지 않는 고통 속으로 데려갈 뿐이다.

편안함은 인간에게 매우 높이 평가되는 요소인 것 같다. 편안하게 사는 것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통제력을 주며 불안감을 크게 줄여준다는 점은 사실이다.

매일 우리에게 좋을지도 혹은 나쁠지도 모르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면, 우리는 스트레스로 죽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 삶에 안락함을 찾는 것이 반드시 해로운 것은 아니다.

휴스턴, 우리에게 문제가 생겼다.

실제 문제는 언제 발생할까? 바로 우리가 안락함을 선택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만큼이나 안락함을 느끼지 않을 때다. 즉,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우리는 친숙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이미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또한,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사실상 마음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우선, 우리 자신 외에도 통제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적어도 편안한 것처럼 보이는 것조차 사실상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이것이 믿기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물어보도록 하자. 즉, 지금의 인생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가?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 인생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는가?

단기적으로는 보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유지함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이를 뒤돌아 보길 바란다. 무엇이 보이는가? 그 당시와 같은 자리에 계속 갇혀있지는 않는가? 뭔가가 잘 풀리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드는가?

아마도 편안함이 자신을 붙잡아 왔을 것이다. 벼랑 끝으로 이어지는 사다리를 올라가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곳에서 떨어져 그전에 했던 것과 같은 어려운 방법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다. 이러한 반복의 시작은 친숙하고 편안하겠지만 이것이 정말로 우리에게 최선일까? 알다시피 때로는 최상의 해결책은 가장 쉽고 가장 편안한 해결책이 아니다.

불편에 대한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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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통제를 넘어선 불편하거나 알 수 없는 상황 혹은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을 겪어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새로운 방법으로 여러 가지 것들을 시도할 수 없기도 하다.

사회는 행복해야 한다는 너무나도 큰 압박감을 주고 있으며, 최소한으로 힘들어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마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약점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것들을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피해야 하는 것처럼 악마화하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항상 긍정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이러한 프로그램된 모토를 채택한다. 즉, 게으름, 불편함, 슬픔, 죄책감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마지막의 결과에 끊임없는 불만족스러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뭔가 여운이 남을 만한 것이 빠진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내일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없이, 오직 오늘만 생각하고 같은 곳에 자신을 묶어둘 만한 것에 안주하려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반대 방향으로 가려면 일련의 장애물을 헤쳐나가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이는 불편함을 전해주지만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것이 아니라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최선의 해결책을 찾는 방법

여기서 핵심은 계획을 세우고 똑똑하게 이를 해나가는 것이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 정도면 충분히 했다.”라고 말하기 위해서, 그리고 근거 없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말이다. 또한, 우리가 변화를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다면, 우리 자신을 삼켜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괴물들’은 사실상 ‘위협’이 되어 따라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따라오더라도, ‘그들’은 우리가 믿었던 것처럼 끔찍하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항상 이를 관장하고 있으며 모든 것을 확대하는 경향이 있음을 기억하자.

결론적으로 최선의 해결책은 대체로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대신 불편하고 불확실하다. 따라서 이 만트라를 자신에게 반복해야 한다. 즉, “여기에 내가 있으며 나에게 무엇이 찾아오든 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면 울고 싶은 만큼 울 것이며, 기분이 좋을 때는 웃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인생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것을 받아들이면 새로운 것들을 배우게 될 것이다.

  • Barraca, J. (2005). La mente o la vida. Una aproximación a la terapia de aceptación y compromiso. 2º edición. Desclee de brou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