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스 패밀리: 섬뜩함의 아름다움

2020-01-15
아담스 패밀리는 수십 년 동안 우리에게 놀라움을 자아내왔다. 그 성공의 비결은 무엇이며, 우리가 죽음에 매혹되는 것은 이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아담스 패밀리는 공포의 ‘아이콘’이 되었다. 수십 년에 걸쳐 수많은 방식으로 적응되어 왔다. 이에 대한 성공의 열쇠는 무엇일까? 왜 우리는 공포를 향해 웃고 싶어 할까? 죽음에 대한 추앙이 왜 아름다울까? 오늘의 글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려고 한다.

아담스 패밀리는 의심할 여지없이 TV와 영화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패밀리’ 중 하나다. 그 이름만 들어도 잊을 수없는 곡 리듬에 맞춰 손가락을 움직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이 가족은 수년간 할로윈 (및 다른 날) 밤을 즐겁게 해 줬으며 죽음에 대해 희화화와 섬뜩함에 대한 그들의 취향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사람들은 왜 공포에 매료될까?

우리는 공포 영화를 생각할 때 우리를 놀라게 할 영화를 찾는다. 안락의자의 안락함과 평온함에서 두려움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허구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쨌든 우리는 이런 경험을 통해 즐거움을 발견한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공포영화가 웃기다고 생각하기도 하며, 이는 공포 영화에서 너무 많이 진부함이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단순히 가까이하고 싶지 않아 한다.

관객에게 공포감을 전달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다른 감정과 주관성이 작용한다. 이 같은 전제는 코미디에도 적용될 수 있다. 우리를 웃게 만드는 것은 정말 복잡한 일이며, 특히 모든 사람이 같은 것에 대해 웃게 하려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그 모든 공포 영화의 진부한 것들을 가져다가 코미디를 살짝 섞는다면 어떨까? 이것이 바로 아담스 패밀리에서 볼 수 있는 것이며 성공의 열쇠라 할 수 있다.

섬뜩함의 역사

역사를 통틀어 죽음과 관련하여 셀 수 없는 예술적 발현들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인류 역사에 흩어져 있는 종교와 숭배는 우리가 얼마나 이생 후에 무엇이 올 것인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은 죽음과 미지에 대해 지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이는 다양한 방법으로 반영되어 있다. 심지어 묘지조차도 예술적인 야외 공간이 될 수 있다. 이에 관한 좋은 예로는 밀라노의 기념비적인 묘지 또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레콜레타 묘지가 있다. 우리는 또한 이집트 피라미드와 고인돌에서 볼 수 있는 선사 시대 숭배의 예도 빼놓을 수 없다.

메멘토 모리

요컨대 죽음의 추앙에 관한 과거로부터 온 많은 예시들이 있다. 문화나 지리적 위치에 관계없이 우리는 유명한 라틴어 ‘메멘토 모리’를 상기시키는 몇 가지 증거를 항상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해석하는 방식이 장소마다 다르더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러한 추앙은 결국 미스터리로 가려져 왔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포 영화에 등장하게 되었다.

알 수 없거나 어떤 식으로든 우리 삶에 위협을 안고 있는 것은 항상 일정 양의 공포를 낳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공포 장르는 이러한 두려움, 오컬트,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음을 길러내면서 살아남고 싶은 우리의 열망과 연결된 책이나 영화를 만들게 된다. 하지만 이 밖에도 이것을 바라보는 또 다른 방식이 있을까?

아담스 패밀리-2

물론 공포 장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하고 적응해 왔다. 그러나 이는 쉽게 식별할 수 있고 종종 코미디로 이어질 수 있는 특정한 미학적 요소를 가졌다. 그리고 공포 그 자체보다 더 대담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에 대해 웃어넘길 수 있는 능력이다. 이로써 무서운 몬스터는 친구가 되거나 웃을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다.

고딕 소설

19세기에 고딕 소설은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으며 그 결과 다양한 하위 장르가 만들어졌다. 최근에 우리에게 ‘코미디 공포물’로 나중에 알려져 정의된 아주 좋은 사례가 있다. 지금 우리는 ‘워싱턴 어빙의 슬리피 할로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케이스에선 공포는 다소 블랙 코미디 형태의 유머와 섞여졌다. 그때부터 수많은 영화들이 이런 식의 공포를 묘사하기 시작했다.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그렘린 (조 단테, 1984), 흡혈 식물 대소동 (프란크 오즈, 1986), 호커스 포커스 (케니 오테가, 1993), 화성 침공 (팀 버튼, 1996) 또는 비틀쥬스 (팀 버튼, 1988)과 같은 영화들이 돋보였다.

스페인의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 감독은 코미디와 혼합된 공포를 우리에게 선보이면서 돋보이게 되었다. 그의 작품 중에서 두 가지를 뽑자면 야수의 날(1995)과 주가라무르디의 마녀(2013)를 예시로 들 수 있다. 영화는 때로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두려움을 희화화하고 종종 우리의 삶을 둘러 싸고 있는 불합리한 관습을 비웃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야기하는 아담스 패밀리야 말로 죽음에 대한 희화하를 최고조로 만들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 세계 및 모든 연령대의 팬들을 사로잡았다. 이는 웃음과 공포를 결코 동일하지 않은 방식으로 결합시키는 데 성공했다. 아담스 패밀리는 당연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에게 코미디 공포물이 실제로 무엇인지에 대한 결정적인 정의가 된 셈이다.

아담스 패밀리

아담스 패밀리: 섬뜩한 코미디

미국의 만화가 찰리 아담스는 1933년에 뉴욕에서 한 카툰 연재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블랙 코미디와 일상생활 패러디를 담고 있는 섬뜩한 캐릭터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수십 년 후 60년대에 이 만화는 아담스 패밀리 제작에 영감을 주게 되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당시 TV를 점령한 유일한 이상한 가족 드라마는 아니었다. 다른 채널에서는 ‘더 문스터스’라는 제목의 상당히 유사한 시리즈를 볼 수 있었다.

블랙 코미디와 공포의 진부함을 채택한 후 -나중에 이를 패러디하기 위해서- 현대적인 가치들에 대한 진정한 풍자를 위한 토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다소 정상적인 모든 것들에 대해 이상하고 낯설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그들은 비전통적인 모든 것들을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기법은 우리에게 이상한 것들로 시청자를 즐겁게 하는 일종의 거꾸로 된 세계를 보여 주지만, 동시에 우리 자신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잘못된 것으로부터 올바른 것을 구별하게 하는 사회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의 장르에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유머를 사용하여 우리의 전통적 관점을 세분화하고 있다.

영화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는 아담스 패밀리

아담스 패밀리의 성공은 TV 스크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화, 애니메이션 시리즈 및 뮤지컬로 이어졌다.

이 드라마의 그 캐릭터들은 공포 영화에서 나와 일상생활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더 이상 동네에서 두려워해야 할 괴물 같은 캐릭터가 아니라, 다소 독특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웃이 되어간다. 어떤 면에서는 이 모든 것이 ‘괴짜’라는 개념을 가리키고 있다. 어떤 이유로든 사회 규범에 맞지 않는 어느 개인에게나 붙는 용어이다.

아담스 패밀리는 인간인 우리의 모든 관습을 어기고는 있지만, 그들 자신도 도덕과 규칙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세계를 관찰하고 그들에게 이상한 것에 대해 이해하려고 한다.

웃음을 자아내는 요소에 대한 흥미로운 점은 이 드라마에서 기존의 가치와 규칙을 세분화하여 아이러니를 사용하여 질문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코미디 공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정상적인 것’이 완전히 반대라면? 당연히 우리는 ‘그러한 규칙’에서 벗어나는 모든 행동을 비판할 것이다.

장미는 꽃잎 없이 가시만 있어야 더욱 아름답다고 배운 아담스 패밀리의 ‘모르티시아’를 예로 한번 들어보자. 이러한 경우 당연히 우리는 이를 다 잘라 내고 가시의 아름다움에 도취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실제로 꽃과 꽃잎에 감탄한다면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관점과 사회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쳤는가에 달려 있다.

아담스 패밀리: 공포의 아름다움

이러한 대조를 활용하면 웃음을 자아낸다. 가치가 뒤집어진다. 즉, 섬뜩함이 아름답다고 여겨지고 모든 것에 의문이 제기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공포 속에서 특정한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아름다움은 완전히 주관적인 것이다.

우리의 삶은 순간적이며 이 세상으로 통하는 우리의 길은 본질적으로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 왜 두려워할까? 왜 이를 희화화해보지 않는가? 아담스 패밀리는 이를 수십 년 동안 성공적으로 해왔으며 우리에게 삶(또는 죽음)으로 통하는 길을 더 즐겁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안도감을 주었다.

우리의 삶은 종종 매우 비극적이다. 우리가 꿈꿔왔던 것과는 다르게 더 씁쓸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웃음은 치료제이며, 가장 어두운 순간에 우리를 구해주는 카타르시스와도 같다.

이렇게 보면 아담스 패밀리는 그들의 아름다움, 옳고 그름, 도덕 및 유머에 대한 특별한 관점으로 우리를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수십 년 이후에도 현재까지 우리를 사로잡고 있으며 계속해서 기록을 깨면서 우리에게 영감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