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는 조현병을 앓으셨다
할머니는 조현병을 앓으셨고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 보드게임인 ‘클루도’를 하는 느낌이었다. 할머니 이야기의 진위를 알기 위해 수수께끼 같은 사연을 파헤쳤다. 할머니는 자신이 양말 회사의 다리 모델이었고 몇 달간 잡지 촬영을 했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할 때 사진과 영수증을 보관한 작고 낡은 폴더를 발견했다. 1960년대, 할머니의 모델료 영수증을 보고 할머니를 믿지 않았던 나는 울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첫 남편 때문에 직장을 그만둬야 했는데 자꾸 밖으로 나돌면 할머니를 때리겠다고 위협했다고 한다.
나는 할머니의 경험에 공감하지 못하고 안타까워했다. 할머니의 이야기 상당 부분은 기이하게 들렸다. 할머니는 독일 항공 조종사에게 고백받은 이야기나 할머니를 모욕하기 위해 텔레비전에 들어간 이웃과 전구에 설치된 도청 마이크 이야기를 하곤 했다.
사실, 할머니와의 삶은 항상 쉽지만은 않았지만 돌아가신지 수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할머니가 그립고 가슴이 아프다. 심각한 정신 질환을 앓는 가족이 있으면 후회의 상처와 혼란과 고통을 덜어주지 못한 상처가 아물지 않고 남는다.
할머니는 진단을 받기 몇 년 전, 여러 번 입원하고 자살 시도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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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조현병을 앓으셨지만 아무도 할머니의 병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릴 적 할머니가 병원에 오가는 모습을 보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할머니가 아프지만 아는 척하지 마’였다. 마침내 퇴원하신 할머니를 만났을 때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내 인생이 아파’라고 대답했다.
어찌 보면 할머니의 말은 사실이었다.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던 할머니는 며칠 입원했다가 불안을 완치하지 못한 채 약 꾸러미만 들고 돌아왔다. 어릴 때는 그런 할머니가 두렵고 측은했다.
12살 때 입원한 할머니의 정신과 담당의들의 대화를 들었다. 의사들은 부작용이 적고 삶의 질을 높이는 다른 항정신병약을 처방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때야 나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 할머니는 조현병을 앓고 계셨다.
할머니는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못하고 편집증 때문에 당혹감과 극심한 공포 상태에 빠졌다.
할머니가 환청을 듣기 시작한 날
할머니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네 번의 결혼에서 두 번은 미망인이 됐고 다섯 자녀 중 두 명과만 연락했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좋은 엄마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불안정하고 차갑고 초연했으며 약속을 잘 어겼지만 기분이 날 때만 재미있었다고 한다.
증조부모님께 아이들 양육을 맡긴 할머니의 삶은 환청이 들리며 더 복잡해졌다. 25세였던 할머니는 도자기 공장에서 일하며 자신의 생각을 읽고 빙의하겠다는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즉시 공장에서 도망쳤다. 증조부모님은 그날 밤 버려진 집에서 다치고 손이 부러진 할머니를 발견하고 처음으로 입원시켰다. 명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법을 찾는 할머니의 끝없는 시련이 시작됐지만 할머니는 몇 년이나 환청에 시달렸다.
자기 마음을 믿지 못하는 할머니
할머니는 32세에 조현병 진단을 받고 환청을 없애는 임상 치료를 시작했고 항정신병약으로 자신을 조금씩 통제했다.
나중에 주치의는 할머니에게 병원 청소부 일자리를 제안했다. 그 덕분에 할머니는 약간의 돈을 벌면서 특정한 일과와 습관을 채택했다. 게다가 밤에 충분한 수면을 취하면서 혼란스럽고 위협적인 생각을 덜 하게 됐다.
항 정신병 약이 환청을 잠재우긴 했지만 편집증까지 억제하지는 못했다. 할머니는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자기 생각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다른 동료들이 험담한다고 믿고 격렬한 언쟁을 벌였다.
다른 때에는 할머니의 자식을 납치하려는 사람이 있다거나 집에 도청 마이크가 있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할머니는 자기 머리가 완전히 망가진 시계 같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시간, 현실, 삶 전체가 조각났고 자신의 마음속에 갇혀 힘들어했다.
할머니는 TV를 볼 수 없었다. 화면 뒤에서 누군가 감시한다고 믿었던 할머니는 음악 감상과 독서를 즐겼다.
할머니는 조현병을 앓으며 행복하고 절망했다
우리 가족은 무지나 낙인 때문에 할머니의 조현병을 언급하는 것을 피했다. 할머니를 집에 모시는 달이 ‘좋은’ 달이 되기를 바랐다.
사실 좋은 달은 없었다. 할머니는 자기 삶이 회전목마와 같다고 말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만큼 할머니의 마음도 흰색과 검은색 회전목마를 번갈아 타며 질주했다. 백마를 타면 인생이 공원 산책을 하는 것 같았고 모든 것이 긍정적이고 흥미로웠으며 행복했다고 한다.
나는 모든 것을 비웃던 시절의 할머니를 좋아했다. 할머니는 나와 함께 계획을 세우며 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휴가 때 아프리카로 여행을 가자고도 약속했다. 할머니는 한 번도 여행해본 적이 없었고 가장 큰 소망이 익숙했던 모든 것을 뒤로하고 머나먼 외국에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검은 말에 올라타면 절망에 빠졌다. 할머니의 슬픔은 온 집안을 어둡게 만들고 식구들을 질식시켰다. 할머니는 뭐든 위협이라 믿었고 가족을 불신했으며 세상에서 사라지길 바랐다.
조현병 환자 가족은 의료 및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환자를 도울 수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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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음악, 그리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여행
할머니는 화면 뒤에 마음을 조종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TV를 보지 못했다. 할머니의 정신적 피난처는 독서와 음악 감상이었다. 할머니가 듣던 에디트 피아프나 샤를 아즈나브루의 LP와 추리 소설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
할머니는 내가 18살 때 또 다른 자살 시도 후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나는 여전히 할머니가 그립다. 할머니의 마지막은 좋았던 시절 만큼 슬펐다. 안타깝게도 부모님, 이모, 삼촌, 그리고 나는 할머니를 돕기에 부족했다.
약물이나 잠시 입원하는 것도 할머니의 마음을 진정하고 삶의 의지를 북돋진 못했다. 할머니는 좋은 엄마는 아니었지만 좋은 할머니였다. 아직도 고양이, 로미오를 안고 테라스에서 본인이 지어낸 듯한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던 때를 기억한다.
여전히 그리운 할머니와 조현병이 없는 아주 머나먼 곳으로 여행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