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합리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다
비합리적인 사고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논쟁과 그들의 이에 대한 조정은 심리학 분야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토론에서 분명한 목표로 삼게 되었다. 사회적 불안 장애에서 대인 관계의 폭력, 심지어 외상 후 스트레스라는 주제에서 까지 말이다.
인지적 재구성은 심리 치료와 유사하다. 심지어 다른 모델들과 심리학적 흐름의 뚜렷한 경계를 지난 것으로 보인다. 항상 가장 정통하며 유용하며 효과적인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말이다.
평가 자체를 통해 이를 시행할 수 있고 심리 치료가 끝날 때까지 유용할 수 있는’인지적 재구성’은 동일한 생각에 대한 대안적인 생각을 끌어내기 위해 개인의 비이성적인 생각의 감지를 추구한다. 비이성적인 생각이 자신의 기분에 미치는 영향을 볼 수 있는 사람보다 더 적절한 것은 없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그런 사람들의 차후의 인식과 생동을 인지하기 위함이다.
한 개인이 인지적 재구성을 일반적인 습관으로 가지게 될수록, 자신의 비합리적인 생각을 감지할 수 있다는 점이 더 잘 이해된다. 또한 훨씬 더 적절한 대안적 생각을 제안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비탄력적인 생각을 발전시키는 것은 종종 합리적인 생각 대신 긍정적인 생각을 제안함으로써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비합리적인 사고와 합리적인 사고의 차이점
비합리적인 사고는 매우 불쾌한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낸다. 분노에서 괴로움, 심지어 공포까지 다양하다. 이는 오래 지속되며, ‘절대’ 또는’항상’과 같은 부사의 사용과 함께 절대주의적 용어로 자라난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행복해지려면 뭐가 필요한지, 어떻게 되어야만, 무엇을 해야만 혹은 가져야만 하는지와 관련이 있다. 즉,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요구들인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생각들은 대개 검증할 수 없는 것들이다. 반대로, 합리적인 사고는 이것이 가능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사고는 훨씬 낮은 강도의 감정을 생성한다. 예를 들어 분노가 아닌 싫증, 괴로움 대신 체념, 공포 대신 두려움이라고 볼 수 있다.
분노가 행복으로 대체되지 않는다는 점을 먼저 강조해야 겠다. ‘괴로움이 만족으로’ 혹은 ‘공포가 용기로’ 대체되지도 않는다. 합리적인 사고는 현실적이고 조정된 것이다. 지나치게 긍정적인 말로 표현하면 비합리적인 사고가 될 것이다.
또한 누군가가 대안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긍정적 사고로 이해한다면, 그러한 사고를 제안해내지 못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약화된 정신상태와 부정적인 방향으로 시야가 좁아진 상태는 이 과제를 해내는 것을 엄청하게 힘들게 만들 것이다.
예시: 패트리샤, 직업을 잃다
예를 들어, 패트리샤라는 40세의 여성이 은행 직원으로 직업을 잃는다고 상상해보자. 패트리샤가 가질 수 있는 비합리적인 생각은 “나는 다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할 것이다.”, “나는 쓸모가 없다.”, “나는 더 많이 일을 했어야 했다.”일 것이다.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검증할 수 없는 절대주의적 용어를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연습을 통해 패트리샤는 상황에 훨씬 적합한 대안적인 사고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직업을 다시 찾게 될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일을 찾을 것이다.”, “직업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내가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이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뿐이지 나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가치 있는 사람이다. ” 또는 “더 오래 남아서 일할 수도 있었지만 이것이 해고사유와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두 번째 생각에서 볼 수 있듯이 절대주의적 용어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외부적인 사건에서 기인한 추론이나 자신에게 비난의 꼬리표를 성급하게 달지 않으면서 결론을 지었다.
불안정안 긍정적 사고
패트리샤는 비합리적인 생각을 적절하게 대체하는 방법을 모를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녀가 받은 설명이나 지침이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이 상황에서 비합리적인 사고에 대한 대안적인 사고가 다음과 같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을 수도 있다. “내일 일을 찾게 될 것이고 은행에서 벌었던 돈만큼 벌게 될 거야.”, “나는 밖에서 최고로 일을 잘하며, 내 능력은 다른 사람보다 우수해.” 또는 “추가 근무에 관한 것이 이번 해고와는 아무 관련이 없으며 상사가 나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났을 뿐이야.”
우리가 대중문화에서 듣는 것과는 달리, 긍정적인 사고라는 것은 모든 것이 자신이 원하는데로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식의 사고는 수많은 함정을 담고 있다.
바르바라 에렌라이히 또는 데렌 브라운과 같은 저자는 이미 초긍정적인 사고의 해로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은 이것이 얼마나 기만적이며 우리가 부적절하고 비현실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 경험적 유효성이 전혀 없는 귀속과 추론에 근거한 결론인 것이다.
비합리적인 사고 vs. 긍정적인 사고
잘 조정된 방식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합리적인 생각은 부정적일 수 있다. 실제로 대다수는 부정적이지만 긍정적일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가 이를 고려할 때 감정적 반응을 악화시킬 수 있지만 후자는 너무 강렬한 감정적 표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이를 완전히 수행하지 못했을 때 말이다. 또는 사실과 진실된 정보를 기반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아질 때도 그럴 수 있다. 또한 절대주의적 용어에서 간주될 때도 마찬가지다.
또한 개인의 개념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합리적인 사고가 발생하는 특정 범주를 이해하는 것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예시나 은유법을 가지고 연습을 시작할 수 있으며 그런 다음 한 사람의 비합리적인 사고에 대해 연구해봐야 한다.
또한 이전에 훈련을 해야 한다. 따라서 일상적인 대안적인 생각의 제안을 자동화할 때면, 그 사람에겐 가장 편리하고 효과적이며 유용한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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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hrenreich, B. (2009). Sonríe o muere. La trampa del pensamiento positivo. Madrid: Tur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