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은 섬세하고, 애정 많고, 돌보는 마음을 가진 아이

08 4월, 2018

우리 아들은 항상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말해주며, 포옹을 한다. 이 아이의 행동은, 그 아이의 애정과 부드러움을 주저 없이 보여주는 일이다. 소년들도, 또래의 소녀들처럼 충분히 감미로운 감성과 감성 지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년의 감정들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이나 필요에 따라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 아이들에게 더 민감한 부분을 개발하거나, 이를 위해 격려하는 것은 그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우리의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직감에 가치가 있는 일이다. 하지만,어떤 이유로, 예를 들어, 사회나 가족들이, 소년이 ‘남자다울 것’을 요구하면서, 자신의 성별에 ‘맞는’ 행동을 하도록 강요한다면, 그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소중한 감정들이 많이 있을 수 있다.

“우리를 우리의 부모와 자식으로 나누는 것은, 우리의 육체나 피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다.” – 프리드리히 본 쉴러

얼마 전, 스페인의 여러 다른 학교들에서, 소년과 소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소녀들은 언젠가는 매우 특별한 남성적 인물이자, 상업적인 재벌인, 아만시오 올테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처음으로 말했다.

이제, 소녀들은 사회적인 성공에 긍정적인 기술이 필요하다는 아이디어를 내면화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는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고, 용감하며 결단력 있는 행동을 취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 모든 것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로지 남성적인 영역으로만 여겨지고  있었다.

물론 소녀들은 이 ‘남성적인’ 개념들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고, 이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만, 소년들은, 전통적으로 사회적인 남성성으로 인하여,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개념들을 거의 잃어버리게 되는 가련한 피해자들이다. 이 소년들은, 섬세함, 부드러움, 온화함 등을 잃어버릴 수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모든 사회적 발전을 이뤘는데도, 우리는 성차별적 개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자녀들을 키우는 방식에도 여전히 영향을 주며, 관련이 없다고도 말하기 힘들다. 또한, 현재 사회의 가부장제가 여성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성도 여성 못지 않게 억압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남성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강제로 ‘지시’하기 때문이다. 한번, 이하의 로베르토라는 남성의 경우를 예로 들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 아들은 섬세하고, 애정 많고, 돌보는 마음을 가진 아이

남성적이어야만 ‘한다’는 것과 남자의 세계

얼마 전, 로베르토와 그의 여자 친구와의 관계가 끝나버렸다. 8년 간의 관계 끝에, 여자는 더 이상 로베르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로베르토의 세계는 산산이 부서지고, 그 파편들은 그의 마음과 정신을 사정없이 꿰뚫고 있다. 그는 숨막힐 정도로 고통스럽다.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대응할지를 ​​알지 못한다.

그는 친구나 주변 사람들에게서 지원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우정이 ‘남성적인 활동’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농구를 하거나, 무술을 익히거나, 비디오 게임을 하면서, 인맥을 맺어왔다.

그런 그에게도, 옛 친구, 카를로스가 있다. 카를로스는 분명히 자신이 믿고 말할 만한 사람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서로를 믿고 있기 때문에, 믿고서 그의 어깨에 기댈 수가 있다.

그러나, 로베르토는 더욱 복잡하고 좌절스러운 문제를 겪고 있다. 그는 그 친밀감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 알기는 커녕, 친밀감을 익히고자 하는 기술조차 알지 못한다.

마침내, 몇 달간의 암흑기와 가끔씩 일어난 자살의 충동 이후, 전문적인 도움을 받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정신적 치료를 몇 달간 진행하면서, 로베르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전혀 모르는 것을 제안받게 된다. 뭔가 이상하면서도, 매우 긍정적이며 치료가 되어줄 것, 바로 ‘남자의 세계’이다.

서클

어떤 남자의 세계가 좋을까?

현대 사회는 동질성을 권장하고 있다. 우리의 부모는, 때때로 로베르토가 겪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강요의 철퇴를 내리치기도 한다 – 당신의 성별에 따라, 당신이 ‘어떻게 있어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라는 것을 강요하는 일종의 틀이 존재한다. 이 사회적 강요가, 우리에게 여러 모순과, 고통, 그리고 좌절을 불러온다.

남자의 세계의 최종 목표는, 바로 남성이 자신의 생각과 필요에 관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안전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털어 놓을 수 있기를 원한다.

이 세상 남성들이 알아야 할 것은, 그들이 사회의 총알이 자신을 꿰뚫고 지나갔다는 것을, 우리 모두 충분히 과감히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남자도 충분히 울어도 되고, 자신의 감수성을 보여주며, 가부장적인 개념과는 일절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우리 아들은 섬세하고, 애정 많고, 돌보는 마음을 가진 아이

“울지 마.” “우유부단하면 안돼.” “남자답게 약점을 보이지 마.” “그렇게 말하지 마. 무슨 계집애처럼 목소리가 왜이리 작아?” 모든 것들이, 충분히 성 차별적인 말들이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당신의 아들이자, 한 명의 소년이 제대로 성숙한 남자로 자라나지 못하게 만든다.

이것은 결코 올바른 접근 방식이 아니다. 결국 이 사회적 성적 규범과 역할은, 남성성의 문화적 생각을 멋대로 정의내리고 틀을 씌울 뿐이다. 우리가 조기에 이것을 통합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저 감정적으로 제한되고 불안정한 사람으로 자라날 뿐이다.

“좋은 부모는 100명의 선생님들보다도 가치 있다.” – 장 자크 루소

이제, 공간 기술이든, 손으로 일하는 단순 직업이건, 감정적인 남성들도 충분히 필요하고, 준비된 채, 경쟁력을 가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남성들은 감정적인 기술이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그들은 좌절을 용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슬픔이나 두려움처럼, 일반적인 감정을 개발하고 처리할 수 있는 사회적인 메커니즘을 아직 얻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번 이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보자. 언젠가는 여성이건 남성이건 불행해질 것이고, 그 불행한 남성들이 자라나는 것을 진심으로 원하는가? 아마 아닐 것이다.

아이

소년이건 소녀이건, 인간들은 일반적으로, 어릴수록 더욱 소중하고 섬세하고, 애정어린 존재들이다. 우리 인간은 소위 사회적인 생물이기 때문에, 충분히 사람들과 연결되어 살아가도록 존재한다. 따뜻함, 감도, 부드러움 등이, 우리가 서로 더 잘 맺어지고 연결될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 면을 존중하고 활성화하도록 해보자. 우리의 아들들과 남자들이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자유롭게 배울 수 있게 하자. 거리낌 없이 포옹을 하고, 서로 안아주자. 남자도 자신이 원할 때면 충분히 울 수 있음을 알려주자. 인간의 성별이 무엇이건, 그에 관련 없이, 내면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도록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