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학대의 정체: 나의 이야기

심리적 학대의 정체: 나의 이야기

마지막 업데이트: 31 5월, 2018

몇 년 전, 나는 나보다 훨씬 젊었던 사람들과 살 일이 있었다. 내가 학교에 다시 가기로 결정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그들을 만날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나이는, 나와 나의 아이들 사이에 위치한 세대였다. 나에게, 특히 소녀들 사이에서 뭔가가 주목을 받았다. 그들은 미처 깨닫지도 못한 채, 심리적 학대의 피해를 입는 관계에 완전히 몰두했다.그 아이들의 미래엔 이런 관계 뿐인 걸까?

그들은 자신이 어떻게 자신의 연인과 논쟁하고 ‘싸우는가’에 관해 말해줄 것이다. 그 말들은 항상 똑같이 들렸다. 우선, 그들은 자신들이 화가 나게 된 원인을 설명하고, 그 지점에 도달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그 후, 일종의 죄책감이나 책임감으로 변한 감정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를 끝내게 된다. “나는 정말 기분이 안 좋아.”, “그는 사실 그렇게 나쁜 짓을 한 건 아니야..”

솔직히 말하자면, 이 소녀들의 이야기는 나의 오감을 저리게 했다. 그들은 소녀가 결코 참지 말아야 할 것들이었다. 이 소녀들은 자신이 치료받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자신들이 당한 모든 악행들에 대해 변명하고자 할 것이다. 그들이 객관적으로 자신들이 당한 일에 대해 생각한다면, 그들은 또한 자신들이 너무 단단히 집착하고 있는 정당화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나는 그들에 대해, 어떤 슬픔이 밀려왔다. 아침에 온 그들에게서도 슬픔을 볼 수 있다. 휴식 시간에 그들은 내부의 모든 것이 나올 때까지,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준다. 너무나 명백했다. 그것은 사랑에 빠진 소녀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것은 의존적이고 독성어린 인간 관계에 빠진 사람의 얼굴이었다. 사람은 심리적 학대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과연 우리는 경고조차 할 수 없는 걸까? 우리 각자는 우리 자신의 눈으로 보고, 정말로 학대의 끔찍함을 겪어야 하는 운명인 걸까? 이것이 이번 글이 쓰여진 목적이라 볼 수 있다.

여기 한 소녀의 간증이 있다. 손을 제대로 쓸 수 없을 때까지, 심리적인 학대의 마수에 시달린 소녀의…

심리적 학대의 실제 사례

심리적 학대의 피해자

나는 하얀 옷의 유령에게 홀렸다. 그는 나보다 연상이었고, 더 경험이 많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우리는 아직 심리적 학대를 깨닫지 못하던 떼때로 돌아가야 한다. 불행히도, 우리는 너무 늦을 때까지, 진실을 깨닫지 못했다.

나는 단지 나 자신을 느끼고, 아들을 통해 완벽한 어린 시절을 경험하고 싶었다. 내가 생각했던, 완벽한 어린 시절은 언제나 열망했던 ‘행복한 가정’에 관한 생각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임신했을 때, 그의 진정한 자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사소한 일로 험하게 대우하고, 나에게 소리치고, 모욕하고, 결국 우리는 싸우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열등하고, 무언가를 감당할 수 없는 느낌이 드는 사람으로 여겼고, 그렇게 만들었다. 그가 없던 때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던 걸까?

아들이 생기고, 모든 것이 더욱 나빠졌다

나의 어린 아이가 태어났을 때,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그는 심지어, 내가 아기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도 나를 맹렬히 공격했다. 그때부터, 나는 최대한 많이 논쟁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그의 분노의 폭발로부터 달아났고, 단순한 ‘미안해 라는 말을 더더욱 많이 하게 되었다. 이 폭력은 더욱 자주 일어났다. 나는 심리적 학대의 함정에 빠져 들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그 학대에 대한 책임을 느꼈다. 나는 나쁜 성질을 가진 것 때문에, 그 죄를 받고 있는 걸까?

그는 일하는 것을 멈추고 집안일을 도왔다. 이런 자상했던 그도, 맥주만 마시면, 그는 악마처럼 변했다. 그는 나를 구두로 짓밟으며 학대했고, 손에 닿은 모든 것을 부러뜨렸다. 그러나, 나는 그 와중에 남아있던 단 하나, 아름다운 목표를 명심했다: 행복한 가정을 말이다. 모든 부부는 각기 싸울 때도 있지..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가 나와 싸울 때, 나는 그를 피했다. 부모의 집에서 비명을 지르고 모욕감을 겪어야만 했던 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최악의 부분은 바로 그의 파괴적인 태도였다. 그것은 치유되지 않으며, 매일 더 깊어질 뿐이었다.

그는 3살이 된 아들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그가 나와 함께했던 것처럼 아들에게도 똑같은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은 그가 쌓아 놓은 모든 증오를 뱉어내기 좋은, 쉬운 먹이감이었다. 증오. 왜일까? 나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항상 피해자를 가까이에 두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불행하다는 것이 분명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내 친구들은 현실에 눈을 뜨기 위해 필수적인 존재

천천히, 나는 나의 사회적 영역을 넓혀나갔다. 나는 이미 꽤 은둔자같은 삶을 살기 시작한 지 오래였지만, 차츰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 나는 나의 현실을 보기 시작했고, 결국 보게 되었다 – 이 싸움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나의 자존감을 파괴하고 있었다.

나는 돈을 벌어오기 위해, 집 안팎에서 일하면서, 노예처럼 일했다. 여름에는 9시간에서 10시간 동안 사무실에서 일한 후, 몇 시간 동안 친구들과 함께 일탈을 했다. 지원과 애정의 달콤한 말들을 통해, 위안을 찾았다. 그러나, 겨울이 다가왔을 때, 나는 집이라는 감옥으로 돌아갔다. 지나가는 날이 다가올 때마다, 행복한 가정의 꿈은 더 멀게 느껴질 뿐이었다.

친구

내 아들은 3살의 어린 아기였고, 거울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쳐다볼 수 있게 된 지 2년이 갓 지났을 무렵이었다. 나는 자신을 고치거나 예쁘게 보는 데에 관한 모든 관심을 잃어버렸다. 무엇 때문일까? 나는 추하고 피곤했다.

나는 30세에 나이든 기분을 느꼈다. 끊임없이, 남편은 우리가 마주하는 몇 가지 사건에서 나에게 비명을 지르고, 나를 힐난하고 과소평가할 것이다. 그가 한 일은 아무것도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내 눈은 달이 없는 밤 바다 구름처럼, 슬픔으로 가득 찼다.

나는 이것을 경고로 삼았다. 이것은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고뇌를 깨닫고, 그 고뇌는 더욱 악화되었다

나는 내가 선택한 이 삶이,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잘못이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 모두와의 관계에 대해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나는 나의 탈모에 대해 거짓말을 계속했다. 결국에는 호르몬 문제라는 것을 모두에게 납득시킬 때까지.

어느 날, 무언가가 나를 쳤고, 내 몸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내 마음에 말했다. 나는 죽음의 문에 나를 똑바로 서고 마주하게 만들었던, 치명적인 공황 발작을 겪고 있었다. 천천히, 나는 내 몸이 기능을 멈춘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손가락부터, 그리고 차례대로, 손과 발이 굳어갔다. 그리고, 서서히 내 얼굴, 혀, 팔, 그리고 다리… 그리고 내 호흡마져 거칠어져 갔다.

나는 누구도 이런 증상을 겪길 바라지 않는다. 몸이 조금씩, 조금씩, 멈추는 것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내 친구들은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고, 나를 걱정해서, 밤새 거기에 머물러 주었다. 그는 우리 아이와 나의 집으로 향했다. 그 작은 마을의 의사는, 내 친구이자, 정신과 의사였다. 그는 평화와 회복을 위해, 일주일 중 남은 시간 동안 자신의 집에 머물 것을 권했다.

나는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배웠다

그것이 내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5일 동안 지속된 회복을 시작한 방법이었다. 남편이 현관에 서 있었다. 나는 계단을 올라가 그를 안었다. “다녀왔어. 나, 전보다 훨씬 나아졌어.”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는 나를 필사적으로 거부했고, 이는 나의 균형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는 나에게 떨면서, 무어라 소리지르기 시작했지만, 정작 나는 그의 말을 기억하지 못했다. 갑자기, 나는 그의 말을 전혀 들을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외침과 폭음이, 떨림이, 그리고 폭력이, 목소리가, 나를 겁나게 하고, 움츠러들게 하려는 것만 볼 수 있었다.

나는 나를 위해, 그리고 내 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나와 함께 집에 온 친구를 위해서라도, 무서움을 느꼈다. “도망쳐!”, 이 말만이 내 마음을 넘은 유일한 것이었다. 그러나, 5살의 아이를 데려가지 않고 떠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나를 해치기 위해, 아이를 해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것이었다. 그는 나를 되찾기 위해, 서슴없이 아들을 해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겁에 질려 떠났다. 팔 끝에 머리카락이 아직도 붙어 있다. 아무도 내 친구의 집으로 향하는 도중,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우리가 거기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침묵했다. 몇 분 후, 그는 도착했다. 나는 2층 테라스에서, 아래에 있는 남편을 보았다.

눈물

다시 한번 그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거 알아? 벌써 너무 늦었어. 내 영혼 깊은 곳에서, 한 마디가 나왔다. “아니!! 나도 더 이상 못 참겠어. 당신과는 이제  끝이야!” 나는 심리적 학대의 감옥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나는 그가 나와 함께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차라리 혼자서 행복하게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또한, 내가 그를 매우 사랑한다고 말했다. 별거 때문에, 그가 한 모든 일은 죽음의 위협이 될만한 것들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굴욕에 대한 복수를 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아니, 우린 그를 보고 싶지 않아. 그는 주변에 있어도 우리에게 해를 입힐 뿐이야. 그는 우리 둘 다  나와 아들과 함께 우리를 억지로 잡아당길 뿐이다. 멀리떨어져 있는 것이, 내가 필요한 것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를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아들을 위해 평화를 얻어야만 한다. 나는 아무도, 그를, 그의 작은 영혼마저도 해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과 굴욕을 결코 혼동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 어머니로서의 의무이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정신적으로 학대할 리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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