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파머: 로봇이 되어버린 비운의 여배우

2018-06-06

프랜시스 파머, 그녀는 일반적인 배우와는 다른 여자이다. 여배우가 되기 위해 취했던 모든 행동들이, 즉 아름다움과 순종이란 것이, 40년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대담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글의 여주인공, 프랜시스 파머(Frances Farmer)는 감히 고집을 부렸다.

사람들은 그녀를 두고 히스테리가 심한 여자라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과감히 내고, 더욱 흥미로운 역할을 맡기를 원했다. 그녀는 너무나도 순진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녀가 배우의 세계에서 빠져나오고자 했을 때엔, 이미 늦은 뒤였다. 사람들은 그녀를 ‘미쳤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프랜시스 파머라는 이름을 더 이상 가억하지 않는다. 그녀는 아직 시간의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또 다른 여성일 뿐이다. 

우리가 다른 시대에서 이어진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숨기고 있는, 그 먼지 투성이 커튼 뒤에, 그 중 일부는 우리가 지금 들려 줄 필요가 있는, 누군가의 도움에 대한 숨막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내가 가진 유일한 좋은 점은, 자신에 대한 고통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 프리다 칼로

그러나, 정신과의 세계에서, 이 여배우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다. 이 상황에 대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 하나는:  프랜시스에게 수년에 걸쳐 복종시킨, 심리학 치료는, 그녀가 정신과에 있던 어둡고, 참담한 시간을 반영한다. 여자가 이상하게도 가장 직접적인 희생양이 되는 곳이다…

프랜시스 파머, 목소리를 내고 유명해진 여성

프랜시스 파머의 삶을 다룬 많은 문서가 존재한다. 그녀의 누이는 [사랑으로 돌아 보아라 ]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녀는 다양한 정신과 병동에서 보낸 젊은 여배우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아침은 과연 올 것인가?]에  대한 연구도, 편집증 환자이면서, 조현병으로 고통 받던 그녀와, 그녀의 주변 사람들과 가족들을 다룬 이 책의 이야기를 제대로 분석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러한 복잡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놓칠 수 없는 것이 있다. 프랜시스의 성장 과정과 역사적 맥락은 매우 중요한 관계에 놓여있다. 

우리는 프랜시스가 너무 대담한 여자라고 언급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일찍부터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히 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녀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그녀를 따라했다. 그녀에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항상 질문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프랜시스가 10대였을 때, 그녀는 지역 시애틀 신문에 출연할 수 있었다. 그녀는 철학자 니체의 글을 바탕으로 신을 믿는 여성들에 대한 강력한 연설을 함으로써, 니체에 대한 호의를 표현했다.

나중에, 프랜시스의 어머니는 하나의 매우 구체적인 목표를 염두에 두고, 연극 수업에 서명했다. 그녀가 자신의 젊음에서 결코 성취하지 못한, 자신의 개인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과 관련이 깊었다. 그녀는 영화에서 유명해지길 바랬다.

프랜시스는 대학에서 유명해졌고, 여전히 그녀가 좋아하는 활동 중 하나인, 하루의 사회에 관한 중요한 기사를 썼다.

말하지 말고, 논쟁하지 말고, 순종하라

1935년, 프랜시스 파머는 이미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녀는 그녀의 주요 목표인, 언론학 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나, 그녀가 언론으로 진출하기 전에, 부모는 그녀가 다른 방면으로 나아가기를  바랬다. 그녀는 일시적으로 그녀의 언론인으로서의 전문 직업을 보류하고, 무대 세계에 집중하라고 말했다. 프랜시스는 어머니의 의견에 동의했고, 그녀의 에이전트도 파라마운트 픽쳐스와의 오디션을 받았다.

프랜시스 파머: 로봇이 되어버린 비운의 여배우

스크린 테스트는 굉장히 쉬웠다. 그녀는 예쁜 드레스를 입고 앉아서, 카메라를 보았다. 프랜시스 파머는 고전적 아름다움을 가진 덕에, 때로는 대담한 매력을 보이기도 했다. 그것은 영화 산업 관계자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그들은 프랜시스에게 7년 계약을 제안했다. 그녀가 해야 할 일은 매번 복종하고, 대본을 배우고, 경영진의 파티에 가끔씩 참석한다. 그리고 그 모임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침묵을 유지하는 것이다.

프랜시스는 이 업계에 반기를 들었다. 그녀는 영화 제작사가 순진한 여자를 연기하도록 한 제안을 매우 싫어했다. 그녀는 언론을 싫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는 인생에서 또 다른 대본을 따라야 하는 것을 싫어했다. 모든 것이 매력적이고 우아한 거짓으로 감싸진 그 암흑의 장소를.

그러나 그녀는, 어머니와 에이전트가 그녀를 납득시켰기 때문에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스타로서의 입지를 위해, 다른 배우와 결혼하기까지 했다.

자유에 대한 열망과 구속복

프랜시스 파머의 커리어에 부정적인 영향이 생기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특정 장면을 촬영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녀는 대본을 거부하고, 에이전트와 계약 한 계약의 규약을 준수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피하기 위해, 밤에 주변을 돌아다니며 드라이브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프랜시스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았을 때, 보통 좋지 않은 결말을 마주하는 운전을 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산타 모니카 경찰에 엄청나게 난폭한 음주 운전자로 유명했다.

“때로는 내 마음이 돌로 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 프랜시스 파머

그러나, 그녀가 기어이 할리우드의 중역과 몸싸움을 벌이면서, 문제는 복잡하게 꼬여버렸다. 그 후,  그녀는 다시 도망치게 되었다. 물론 멀리 도망치지는 못했지만. 경찰이 그녀를 따라갔다.

비명 소리와 몸싸움, 그리고 권위의 그 그림자에서 자유를 얻는 것을 위한 무의미한 시도를 몇 번 거친 후에, 이들은 모두 합의를 이뤄냈다. 그들은 그녀의 반항과 성격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녀를 정신 병원에 데려갔다.

프랜시스 파머: 로봇이 되어버린 비운의 여배우

의사들은 그녀를 ‘편집성 조현병 환자’ 라고 진단했다. 그들은 고전적인 전자충격 요법과, 인슐린 쇼크 요법, 등으로 치료를 시도했다.

몇 개월 후, 프랜시스는 퇴원했다. 그녀는 배우로서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로 결정했다. 그 억압하고 굴욕적인 세상에서 영원히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프랜시스의 어머니 릴리안 파머는 딸의 병이 아직 치료되지 않았다고 느꼈다. 그녀는 프랜시스가 ‘올바른 생각’을 유지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할리우드 경영진의 도움으로 정신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선언할 수 있었다. 결국 프랜시스는 다시 병동으로 실려가게 되었다.

구멍 속에서의 5년

프랜시스 파머는 워싱턴의 스테일라쿰에 있는 병원에 입원했다. 그녀가 거기서 보낸 5년은, 후에 그녀의 언니가 나중에 그녀의 책을 통해 세상에 제대로 전했다.

그들은 심한 정신과 치료보다 더 나쁜 일을 저질렀다. 그들은 성적으로 학대를 저지르며, 프랜시스를 계속해서 강간했다. 궁극적으로, 병원의 간호사 중 한 명이 나중에 증언한 바에 의하면, 의료진은 프랜시스에게 불법 시술을 저질렀다. 그 목표는, 그녀의 성격, 그녀의 ‘나쁜 성격’, 그녀의 ‘히스테리 성질’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말이다.

프랜시스 파머: 로봇이 되어버린 비운의 여배우

5년 동안 갇혀서, 학대와 외상을 당한 그녀는 결코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때때로 인터뷰, 연극 또는 TV 시리즈에 출연했다. TV에서 그녀의 존재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프랜시스의 진정한 모습은 정녕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를 잃었다. 그녀의 성격은 침묵으로 향했다. 진정한 프랜시스 파머를 구성한 그녀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잃어버렸으며, 의료적으로 제거되어 버렸다.

이렇듯, 인생이란, 자신이 원하지 않은 길을 가지 않은 경우에는, 이런 극단적인 비극을 맞이할 때도 있다. 참으로, 슬플 따름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어떠한가? 당신은 지금 만족스런 길을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