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요일은 그렇게 우울한 걸까?

21 4월, 2018

왜 일요일은 그렇게 우울한 걸까? 일요일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의미하는 요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감정을 가지고 두려워하는 날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휴일로서 충전하면서, 새로운 한 주를 준비하는 요일이기도 하다.

월요일을 두려워하는 ‘월요병‘이 유행어가 될 정도로, 사람들은 일요일이 끝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일요일은 그 향수와 진리로 우리를 압도한다. 어떤 면에서는, 마치 일요일이 우리에게 심각한 현실감을 안겨준다. “여기에 내가 있다, 여기에 네 자유가있다. 여기 있다. 여기 네 인생이 존재한다.” 그것은 한 주기의 끝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모든 것을, 우리가 강제로 보고 있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일주일 내내 계속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일요일에는 마치 마술처럼, 모든 것을 잊고서, 우리는 휴식을 취하면서, 모든 것을 내보낼 수 있다. 우리가 느끼고 싶지 않은 모든 것을 열어서 내보내는 순간, 그것이 주말의 이점이다.

반면에, 일요일은 일주일 중 가장 피곤한 날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다음 주를 다시금 맞이할 각오를 하는지, 반농담조로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도 한다그러면서도, 결국 우리는, 주말에 다시금 다른 일정을 보내면서, 일요일에는 다시 피곤해지게 된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우리 몸은 약간의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일요일을 너무 푹 쉬면서 보냈거나, 일상이 너무나도 피곤하고 힘들기 때문일 수도 있다.

왜 일요일은 그렇게 우울한 걸까?

왜 일요일은 그렇게 우울한 걸까?

일요일은 우리가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스스로를 반영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고, 멀리할 수도 없다. 이것은 당신의 삶이며, 이것은 당신이 누군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벌거 벗겨지고, 불확실한 미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것과 같다. 월요일이 다가오면, 우리는 옷을 입고 출근하게 될 것이다. 은유적인 의미로도, 사실적인 의미로도 말이다. 우리는 월요일을 시작하면서도, ‘월요병’으로 인해 우울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바쁘게 지내면서, 우리는 평화, 의미, 방향 및 안정성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기 의미가 존재한다. 우리에게는 각기 자신의 위치가 존재하며, 우리 모두 각기 세상에서의 의미가 존재한다. 우리 사회를 건설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 알의 모래알과 같다. 하지만 지금, 사회는 자신의 위치가 무엇인지 아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자유’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작품, [자유의 두려움](1941)에서, 이 상황을 지적했다. 그는 인간이 자유를 원하고 두려워하는 이 호기심의 역설과, 그에 함축되어진 인간 자신의 책임감을 강조한다. 내가 자유를 누리고 있는 만큼, 나는 나의 존재와 나의 선택에 전적으로 책임을 갖고, 질 수 있어야만 한다. 나는 내 자신을찾아내야만 하는, 이 심연은 격렬한 고통, 불안, 불안감을 야기시킨다.

우리는 월요병을 극복해야만 한다

우리는 월요일이 다가오면, 우울함으로 가득 찬 공허함을 느낀다. 일요일이라는 이 무서운 마지막 날의 밤에 나타나는, 이 멜랑콜리를 느끼게 된다. 일요일은 우리가 사회(직업상의 역할)에소속된 것과, 우리가 깊이 빠져있는 개인적인 것 사이의 일종의 연옥과도 같다. 그것은 우리 앞에서, 우리의 근본적인 고독을 바로 잡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고독을 바로잡기 위해서.

때때로 우리는 어떤 동료를 찾음으로서, 우리의 고독을 멀리하려 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가 혼자 있을 때, 우리는 우울감이 우리의 마음에 침입했다고 느낀다. 우리는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피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려 한다. 어쩌면, 우리는 하루 종일 잠을 자거나, 다른 사람과 시간을 보내려 할 수도 있다. 또는 우리는 스스로 바쁘게 살기 위해 애쓰려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도 일에 중독되어버려, 일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워커홀릭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일이 없는 날은, 우리 자신은 도대체 누구이며, 우리 자신들이 어떻게 도망가고 있는지에 대한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바쁘고, 그 때문에 우리 자신이 유용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열광적인 활동은 우리를 삶으로 채워준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또한 ‘우리가 실제로 누구인가’에 대해 우리를 멀리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를 고독과 불안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고독

일은 우리의 깊은 내면에서 멀어지게 한다

일은 우리가 일요일에 일어나는 우울과 불안을 피하도록 돕는다. 이를 은폐하기 위해,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는 모든 것은, 결국에는 우리가 제일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드러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솔직하게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가 보지 않으려 하는, 최선의 선택을 내릴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일요일에 이런 부류의 감정을 겪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일이다. 우리가 바쁜 일상이 다시 시작되기 전날, 여행에서 돌아온다고 생각해보자. 이 내면의 폭풍에는 커다란 의미가 존재하지만, 그 의미가 항상 분명하지는 않다. 마치 건축 재료에서 강한 재료를 찾듯이, 우리 자신의 의미를 쫓고 믿는 유용한 존재로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동시에, 우리의 본성을 인간으로서 돌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갑작스럽게, 그리고/또는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반응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포용하고, 우리의 불안과 우울을 받아들이면, 그것을 더욱 견딜 수 있고, 확실히 더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