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은 우리를 잠재적인 위험으로부터 지켜준다

2017-12-11

우리가 자유로이 선택한 고독은 우리를 지켜준다. 그것은 그저 단순한 치유의 연고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우리를 다시 연결시켜줄, 효과적인 치료법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가끔은 고독이야말로,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이 멀리해야 하는 것들을 격리시켜주는, 한 방법일 수도 있다. 고독을 통해, 우리를 언짢게 하고, 우리의 내면의 평화를 망칠 수도 있는 것을 멀리할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심리학적으로 ‘활동적인 고독’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개념은, 우리에게 친숙하건, 아니건, 어떤 것을 우리에게 형태를 보이도록 암시하고 있다: 우리에게 해를 주거나 불쾌하게 할 수 있는 유독의 물질이나 존재에서, 스스로를 격리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시 찾을 수 있고, 심리적인 행복도 쟁취할 수 있다.

“스스로를 바로잡지 못하는 것만큼, 최악의 외로움도 없다.” – 마크 트웨인

여기서는, 비자발적인 고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의존적인 인간관계나, 혹은 의미있는 동료를 갖지 못해서 발생하는 슬픔, 외로움이나 고독 같은 것이 아니다. 이 경우에는,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치료적 방법이나, 자존감이나 개인적 취향, 우선도와 같은 기본적인 요소들을 고칠 수 있는 힘을 지닌 방법들이 존재한다. 개인적인 친밀감, 그리고 빼앗겼던 우리만의 공간을 되찾는 과정인 것이다.

[대지]로 유명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펄 벅도 말하길,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우리 자신을 시간을 들여 회복하여, 우리가 계속 살아있도록 도와주는, 아름다운 마음의 샘이 있다고 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런 것들은, 우리가 아름답고, 자발적이며, 활발한 고독을 즐길 때에만 볼 수가 있다.

고독은 우리를 잠재적인 위험으로부터 지켜준다

동료와 함께 할 때의 외로움, 그것은 위험한 심연의 징조

우리들 대부분은, 고독을 두려워한다. 사실, 빈 길거리를 거니는 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여, 우리 자신에게 경종을 울리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우리는 두려움과 억압감을 느낀다. 이것은, 우리의 기본적인 메커니즘, 우리가 혼자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음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는 우리의 본능에 의한 것이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사회적인 존재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무리지어 살아가며, 지금까지 살아남아왔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자주 듣는 말이지만, 이 세상에는 외로운 자신의 모습보다 더욱 끔찍한 일이 생각보다 자주 생겨난다. 각기 다양한 연구에서도, 결혼한 사람들 중 60% 가량이 외로움을 느끼면서 살아간다고 말한다. 70%의 십대들도, 친구들이 참 많은데도, 외로움을 크게 느낀다고 한다. 이 통계들은, 우리의 외로움은, 우리 주변의 사람들의 수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적 연결관계 때문이라는 것을 깨우치고 있다.

반면에, 우리는 간혹, 우리 자신이 불행을 만들어내기 딱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여러가지 일들을 겪기도 한다. 우리는 외로워하며, 오해받고, 우리의 여러 일들에 스스로 지친다. 하지만 우리는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일을 계속하며 살아간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친구들이 영원히 우리의 친구들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관계를 이어나간다. 어떻게 내가 그들을 떠나보낼 수 있겠어? 이 세상에는, 외톨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낭만적인 연인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옆에 아무도 없다면, 그 외로움은 더더욱 증폭되기 때문이다.

남자의 옆모습

이 모든 예시들은, 고장난 방식의 고독의 한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잘못된 고독은 우리에게 방어기제를 만들어내게 하여,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우리들은, 스스로에게 모든 것이 잘 되고 있으며, 우리는 사랑받고 있고, 우리의 행동을 보고, 남들이 우리를 평가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생각을 이어가다보면, 마치 물 속에 빠졌는데도, 물을 더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을 보는, 굉장히 위험한 아이러니를 보게 될 것이다.

불행은 더 많은 고통으로 치유할 수 없다. 아무도,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외로워야 할 정도로 형편없는 사람이 아니다.

재회로서의 고독

공격적이고, 불편하고, 이기적인 환경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간혹 다른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려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으며, 결국에는 언젠가 나의 욕구도 이루어주길 바라는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하지만, 비례법이 항상 따르는 것만은 아니다.

“나는 고독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우리들 중 누군가는 오히려 고독을 즐기기도 한다.” – 샬롯 브론테

이 경우, 우리는 현실에 안착하여, 해결책을 찾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남아있지 않다. 스스로 선택한 고독, 거리, 그리고 스스로에게 쏟는 약간의 시간은, 언제나 건강하고, 필요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우리는 우리의 고독이나 현실 도피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간단한 것이다: 우리에게 해로운 것을 단순히 멀리하는 것이다.

여자의 옆모습

고독은 우리를 잠재적인 위험으로부터 지켜준다

스스로에게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영원히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우리 자신만의 공간을 되찾는 것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고, 우리가 앞으로 되고자 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갖는 것과 같다. 어쩌면 이 과정은 며칠이 걸릴 수도 있고, 몇 주일수도,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다. 우리 모두, 우리가 스스로 받아들이고 존중해야 할 리듬과 타이밍이 있는 것이다.

스스로 자유로이 선택한 고독, 우리의 삶에서 가끔 맞이하는 소독은, 그저 치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서진 마음의 퍼즐조각들을 하나로 합쳐줄 시간을 우리에게 준다. 이것은 우리의 개인적인 필터를 재구축하는 것을 배우는 한 방법인 것이다. 이 필터는 우리의 마음의 먼지들을 걸러내며, 우리를 기분좋게 할 것들만 남기며, 우리의 감정을 조절하며, 마음 속에 소중한 것들만을 남겨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