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울지 마라"라고 하지 마라

11 9월, 2017

넘어졌거나 약간 성질을 부리고 침울해진 아이들의 기분을 나아지게 하고 싶을 때, 우리는 주로 “울지 마렴” “용기를 내” “남자라면 울지 말아야지” “운다고 다 해결되진 않잖니?”라는 말들을 자주 한다.

하지만, 위의 말들이 정말일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있는가? 우리가 그들의 행동에 ‘아니’라는 말을 할 뿐 아니라, 우리는 아이들 자신과 그들의 감정에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하기 보다, 오히려 억누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아이들의 발달 및 전반적인 사회 발전에 지장을 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그렇게 신기한 일도 아니다. 우리가 배운 방식을 그대로 우리의 아이들에게 주는 것과 같으니까. 우리가 어른들에게 같은 말을 했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왜 마음 한구석이 아픈데 울면 안된다는 걸까? 운다는 것은 우리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일반적인 극복의 체계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이 자신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이를 잘 조절할 수 있도록 하길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동에서 어떤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을 억누르는 버릇을 없애야 한다.

– 루시아, 그들을 보내주렴 – 할머니가 말했다.

– 누구를?

– 너의 눈물 말이다! 어쩌면 넌 너의 눈물에 빠질지도 모른다고 여길 정도로 잘 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니란다.

– 그럼 할머니, 언젠가는 눈물이 안 나오게 되는 거야?

– 물론이지! – 할머니는 환한 웃음을 한 채 대답했다. – 눈물은 오랫동안 나오지 않아. 눈물은 자신의 일을 마치면 흘러가버리는 거란다.

– 눈물이 하는 일은 뭐야?, 할머니?

– 그들은 물과 같단다, 루시아, 눈물은 모든 것을 씻어주지..마치 비처럼 말이야. 비가 오고 나면 무든 것이 달라보이듯이 말이야.

– 마리아 페르난타 헤레디아의 “비는 이유를 알고 있다.”에서 발췌

우리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때, 그들의 두려움은 사라진다

만일 우리가 아이들에게, 왜 자신들이 울어버리는지, 그것이 아이들의 감정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알려주는 것을 도와준다면, 아이들의 감정조절능력을 강화시켜줄 것이다.

다행히도, 자연은 지혜로워서, 이 만연하는 교육적인 모델로, 슬픔이라는 가장 많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과 싸워왔다. 우리의 뇌는 우리의 슬픔에 주목하도록 했고, 이를 강조하며, 슬픔을 느끼는 사람을 완화시켜왔다.

옳지 못한 식의 오랜 교육은 우리가 부정적인 마음을 억누르고, 우리가 긍정적인 마음을 느낄때조차 가능한 한 억누르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인간의 슬픔에는 엄청나게 다양하고 많은 원인이 있고, 무언가에 의해 침울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자기 조절의 올바른 유형을 가르치고, 슬픔과 불편함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증진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울지 마라”와 같은 식의 말로 스스로의 감정을 억누르게 만든다면, 우리는 극복이라는 방법을, 두려움과 거부를 기반으로 가르치는 셈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기분과, 짜증이라는 감정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을 이해한다는 마음 아래, 우리는 아이들의 기분을 낫게 하고, 악순환을 끊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울음이라는 것의 근원은, 어떤 이유에 의한 짜증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성질부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려 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맞서야 한다.

성질 부리는 것은 아이들 사이에서, 특히 2-6세 사이의 아이들에게서 흔하다. 그 말인즉, 성질이라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버려져선 안된다; 오히려, 그 성질을 제대로 조절하고 부리는 목적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만일 아이들이 성질을 부린다면, 우리는 화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말 한마디가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감정을 받아들인다는 긍정의 의미를 표하고, 아이의 부정적인 행동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을 품고 있다면 어떨까? 우리는 아이들의 감정과 기분을, 아이의 발전 단계와 스스로에 대한 고찰을 가능하게 하도록 받아들일 수 있다.

감정이란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복잡한 개념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아이들에게 화가 나거나 당황하는 것은 슬픔과 양립하진 않는다고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은 서서히, 성숙하면서, 좀 더 유연성 있는 생각 패턴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울음의 근원이 무엇이건, 우리가 아이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분석하고, 말로서 표현하도록 격려한다면, 우리는 아이들의 감정을 조절하고 반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아이들의 생각이 흐트러지고, 제대로 조절할 수 없을 때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