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홀랜드 드라이브': 빛과 그림자
2001년 상연된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트윈 피크’의 데이비드 린치 감독 작품으로 유명하다. 다른 린치의 작품처럼 멀홀랜드 드라이브 역시 관객을 빨아들였다. 많은 영화 팬에게 충격과 존경을 안겨주는 작품으로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제 세기의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영화 구조상 줄거리를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먼저 차 안에서 살해될 뻔했지만 우연한 자동차 충돌 사고로 목숨을 건진 젊은 여성의 등장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 여성은 거액이 든 가방과 파란 열쇠를 가지고 있을 뿐, 사고 후 자신에 관한 기억을 잃은 상태였다. 두려움과 혼란에 빠진 여성은 어떤 아파트에 몰래 들어간다.
그 아파트는 배우 지망생인 베티가 신세를 지기로 한 고모 집이었고 베티는 도착하자마자 다친 불청객을 발견하고 리타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멀홀랜드 드라이브: 새로운 여정의 시작
베티가 리타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한 여정에 동참하며 영화는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주인공들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정에서 가끔 연결성이 없는 이야기들이 나오기도 한다. 초반 스릴러물 느낌을 풍기던 작품은 점점 어두운 분위기로 물들고 결국 속임수와 이상한 상징이 만연한 악몽 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린치 감독의 의도와 달리 파일럿에 충격을 받은 제작자들의 제안으로 시리즈가 아닌 영화로 제작됐기에 작품이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작품을 설명하거나 1차원적 관점으로 보지 말고 그저 보는 그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도록 한다.
매사에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 사람의 천성이지만 이번 글에서는 ‘멀홀랜드 드라이브’라는 작품의 주요 감상 포인트만 짚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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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홀랜드 드라이브 작품 해석이 필요한 이유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사실 미로처럼 복잡한 영화로 꿈처럼 보이는 요소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작품 해석을 위해 여러 논란이 펼쳐졌지만, 린치 감독은 해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과도한 정보가 넘치는 이 시대에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관객에게 스스로 답을 찾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예술 작품은 반드시 말로 설명될 필요는 없다. 그보다 자아 발견과 새로운 감정을 느끼는 기회가 돼야 할 것이다.
잠시 그림, 음악 또는 시에 관해 생각해보자. 이러한 예술 작품이 명확한 주제를 전달하는지는 사실 큰 관심사가 아니다. 그저 작품을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그 감정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 역시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감정을 발견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끝없이 많은 의문을 제기하며 감정 이입을 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린치 감독의 작품은 대개 꿈 같은 상황을 연출한다. 꿈속의 장면과 이야기는 내면을 드러내지만 깨고 나서 생각해보면 앞뒤가 안 맞을 때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꿈꾼 내용을 설명하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완벽하게 꿈의 논리를 따르며 마음대로 해석할 자유가 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 환상
꿈속 등장인물들은 본인은 기억 못 할지 몰라도 평생 한 번쯤 만났던 사람이거나 현실에서는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꿈에서 방문하는 장소도 현실과 다를 수 있으며 꿈속에서는 평생 해본 적도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논리적이다. 작품 속 수많은 상징과 ‘실렌지오’라는 클럽 등이 꿈이라는 생각을 뒷받침해주기도 한다.
실렌지오 클럽은 최면적 측면이 있는 장소이면서 전후를 구분하게 한다. 1차원적 구조와 맞지 않는 여러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클럽 장면이 끝나고 나면 마치 새로운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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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클럽은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늑대’ 속 마법 극장과 비슷한데 두 곳 모두 전혀 달라진 상황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만나고 주인공이 현실을 발견하는 배경이 된다. 푸른 빛이 강하게 감도는 클럽은 주인공이 주장하는 이원론을 연상하게 한다. 내면과 자아 성찰을 상징하는 파란색은 베티가 상자에서 발견한 리타의 열쇠 색깔이기도 하다.
결말
리타의 열쇠로 상자를 열면서 새로운 현실이 드러나고 앞뒤가 들어맞는 듯 보인다. 모든 것이 새로운 의미를 가지며 이제까지 몰랐던 인격도 목격한다. 실렌지오 클럽 덕분에 이 작품도 다른 예술품이나 꿈처럼 전부 환상과 허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실렌지오 클럽의 마법사는 주요 등장인물과 관객을 언급하며 린치 감독이 의도한 꿈 같은 상황에서 깨게 만든다.
형사 같은 관점에서 시작한 관객은 충격적인 반전 이후 점점 어두운 분위기에 빠진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낙관적인 베티에서 절망적이고 불안정한 다이앤과 주인공의 이원론에 빠지게 된다.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작품이지만 너무 난해하다는 평도 여전하며 과대평가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배우의 연기력이 돋보였던 작품은 나오미 왓츠의 인생 대표작이 되기도 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정말 퍼즐 같은 작품으로 해석은 관객에 따라 매우 주관적일 수 있다. 즉, 이 작품은 열정과 허구로 가득한 마음속 미로를 들여다볼 기회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