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을 질러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소녀, 키티 제노비스
혹시, 제노비스 신드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번 글에서는, 이 신드롬이 생겨난 계기이자 비명을 질러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소녀, 키티 제노비스의 이야기를 다뤄보고자 한다.
비명을 질러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소녀, 키티 제노비스
그러나, 아직 무서운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 아니다. 이 사건은 인간의 어두운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마침내 한 사람이 창문을 열고 ” 그 소녀를 혼자 놔둬!” 라고 소리 쳤다. 가해자 윈스턴 모슬리는 몇 분 동안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심하게 다쳤던 키티는, 근처 건물 입구로 도망쳤다.
“이 세상은 살아가기가 참으로 위험한 장소이다; 사악한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들 때문에 위험하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녀를 본 사람들은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슬리는 그녀를 다시 찾는데 오래 걸리지 않으므로, 얼마든지 그녀를 다시 공격하고, 죽일 수가 있었다. 이 사건이 있은 이후, 뉴욕 타임스 가 인간성의 상실, 침묵, 그리고 비인간성을 심하게 힐난하는 일련의 기사를 발표했고, 이 기사로 인해 뉴욕에서는 당분감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기사는 사회 책임을 회피 하는 모습을 담은, 심리적 부검과 거의 같았다 . 어떤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른 쪽을 볼 뿐이고, 숨어버린다. 그리고, 도움을 구하는 그 어떤 목소리도 무시해버린다.
키티 제노비스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심리적 이데올로기를 변화시켰고, 심리학 분야의 새로운 이론의 형성에 크게 공헌했다. 한 번 알아보도록 하자.
키티 제노비스와 사회의 반성
윈스턴 모슬리는 전문적인 엔지니어이자, 아이 셋의 아버지이가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가 강도죄로 체포되었을 때, 그가 키티 제노비스와 다른 두 명을 살해했다고 금방 자백했다.
그 후, 나중에 정신과 의사들은, 윈스턴이 네크로필리아를 앓고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얼마 전, 그는 같은 감옥과 정신병동에서 폭력사건을 일으킨 후, 옥사했다.
미디어 매체에서는 이렇게 설명했고, 이후 관련된 책도 나왔다. 뉴욕 타임스의 기자, A.M. 로젠탈의 저서, [키티 제노비스 사건과, 서른 여덟명의 증인]
그리고, 2007 년에 발표 된 연구도 언급해야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잡지에 의하면, 키티 제노비스 살인 사건의 이야기는 약간 언론에 의해 과장된 부분도 존재한다.
실제로 2015 년 다큐멘터리 <증인>에서 , 키티의 형제가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고자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결론은 끔찍할 정도로 간단했다. 아무도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제대로 볼 수 없었고, 경찰을 부른 사람들은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경찰에게 무시당했다.
제노비스 신드롬과 “책임 확산 이론”
어쨌든 이 사건은 심리학자들에게 잘 알려진, “책임 확산 이론 “을 공식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가 이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본다면, 사람들이 키티 제노비스에 대한 공격을 보았는지 보지 못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경찰에 신고했는지 안했는지도 마찬가지다. 뉴욕 타임즈 에서 설명한대로 목격자가 12명인지, 20명인지, 38명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많은 사람들 중 아무도 그녀의 비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 남자가 젊은 여성을 공격하는 30분 동안, 아무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심리학자 존 달리와 빕 라타니는, “책임의 확산”이라는 이론 하에서 이러한 행동의 의미를 설명했다. 주변에 지켜보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실제로 도우려는 사람은 적다는 뜻이다. 소위 말하는 군중심리이다.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 그 군중은 다른 사람이 도와줄 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알아서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개인적인 사고 방식의 결과는, 결국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책임감과 죄책감이 군중들 사이에 퍼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함을 뜻한다. 그냥 일반적으로 들어줘도 되고, 아니면 말고 급의 일반적인 요청으로 인식해버리는 것이다. “피터, 불 좀 켜주세요.”라고 대상을 확실히 지정하고 말하는 것이 훨씬 낫다. 이 경우, 누군가를 확실히 선택함으로써, 우리는 책임의 확산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책임 확산의 요소
마지막으로, 인간의 책임의 보급을 확산시키기 위해, 도움을 줄 때 다른 중요한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알아보고자 한다.
- 목격자가 피해자를 잘 알아볼 수록, 책임 확산의 가능성은 낮아진다.
- 간섭하게 되면, 무언가 개인적인 비용이 들 수도 있다. 키티의 사건에서도, 자신도 공격받을 것이 두려워, 책임확산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 자신이 다른 군중과 비교해서, 자신이 더 좋거나, 더 좋지 않은 입장에 있다고 생각할 때에, 책임 확산에 영향을 주게 된다. 예를 들어, 자기 방어의 전문가는, 자신을 방어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보다 위험한 상황에서 행동할 의무가 좀 더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피해자와 좀 더 가까운 사이라면, 책임감이 다른 사람보다는 강할 것이다.
- 상황이 심각하다고 생각한다면. 책임 확산의 가능성이 낮아진다. 오랫동안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서나, 혹은 상황이 갈수록 강렬하고 심각해지면, 확산 가능성은 낮아진다.
폭력을 일반화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
키티 제노비스의 슬픈 사건은, 현대 사회에 주목할 만한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유명한, 911 라인을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추모의 노래를 죽은 키티에게 전했고, 여러 영화와 TV 드라마에 영감을 불어 넣어주었다. 또한 그녀는 앨런 무어의 [파수꾼 ] 과 같은 만화의 주인공에도 영향을 주었다
1964년 밤, 키티는 소리지르면서 죽어갔다. 마치 메아리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세계 여기저기에서, 날마다 각기 다른 모습과 형태로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아마 우리는, 인간으로서, 폭력이란 것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도 일반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의 22세의 청년이, 축구 팬들에게 밀려서 경기장 담장 너머로 떨어진 사건도, 그 예시이다.
15 피트의 높이에서 떨어져서, 그 청년은 벤치 위로 추락했다. 몇 시간 후, 그는 이 낙사로 인해 죽고 말았다. 그런데도, 그 사잉이에 축구 팬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경기장을 오르내리며 응원만 했다. 경찰이, 사고 신고를 받고 도착하기 전까지는.
적극적이며 공격적인 행동(스포츠, TV, 인터넷 등)에 대한 지속적인 노출은 우리를 폭력적인 행동에 대해 더욱 관용적이고 일반적으로 인식하도록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폭력적인 행동에 대해서도, 제대로 반응하지 않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어느 쪽이건, 결코 인간적이지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고, 정당화할 수 없는 행동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방관자로서 행세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행동하자. 인간으로서의 미덕을 저버리지 않도록 하자. 우리의 주변 사람들, 이웃에 대한, 존중과, 진심어린 관심을, 잊지 말도록 하자.
키티 제노비스와 같은 사람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