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가족을 실망시킬 때
가끔은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가족을 실망시키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그만한 대가를 치뤄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인간으로서, 개인으로서, 우리의 행복, 그리고 우리의 삶의 자립성을 확립시키기 위해서도, 그만한 대가가 필요한 것이다.
가족이 자신에게 갖는 기대에 대해, 한번쯤 의문을 표해보거나, 그를 저버리는 것은, 당신 자신의 내면과 외형을 재구축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받아들인다는, 어려운 결단을 내리고, 이를 받아들이거나, 놓아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의 첫 과정으로서,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며, 자기 자신의 모습, 그리고 다른 가족과 우리 가족이 갖는 차이, 그 부조화에 대해 자각하고 각성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예를 들어, 아이는 아마, 부모는 자식인 우리에게 충고를 할 지언정, 그 충고를 스스로 지키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수 있다. 그리고, 부모가 자신에게 갖는 기대감이 너무나도 무거워, 불쾌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깊은 사랑이 없는 곳만큼, 실망감이 큰 곳도 없다.” – 마틴 루터 킹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가족을 실망시킬 때
가족들이 당신에게 갖는 기대감은, 서로의 관계를 박살내는 폭탄같이 될 수도 있다. 아무도 깨닫지 못하지만, 우리를 괴롭게 할 수도 있다. 이것은 세대 차이나, 신념의 차이 등의 문제로 생겨난다. 말이나 글이 아니라서 보이거나 들리지는 않지만, 어투나 비언어적 수단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스스로 어렵게 만들고, 침묵시키는 어떤 신념이나 특성 등에 둘려싸이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상황에 맞지 않는 사람임을 깨닫기 전까지, 우리는 우리의 ‘가족‘의 모습이, 이상적인 가족상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도 한다. 수많은 침묵과 비하들로 인해,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싫어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면, 우리 스스로의 변화를 이룰 지, 아니면 우리만의 삶의 방식을 찾으면서,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이 갖는 실망감을 감수할지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의 몫이 된다.
가족의 인연이라는 것의 복잡함
여기, 루카스라는 사람의 일화를 예로 들어보자. 루카스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41세였고, 아버지는 46세였다. 그의 부모는, 임신이 되지 않던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고된 노력과 대가를 치룬 덕택에, 그를 임신할 수 있었다. 루카스가 태어나기 전, 몇 번의 유산이 있었고, 루카스에게도 동생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살아남은 것은 루카스 뿐이었다. 그 때문에, 루카스는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가족의 꿈, 희망, 소망을 모조리 담고 살아가게 된 셈이다.
하지만, 루카스는 결코 모범생은 아니었다. 그는 차분하지도, 조용한 성격도 아니었고, 남에게 순종적인 성격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결국 학교에서 낙제하기도 하고, 그때문에 부모는 자신의 태어나지 못했거나 일찍 죽은 그의 형제 이야기를 하면서 그를 괴롭게 했다. ‘그 아이가 제대로 자랐다면 훌륭한 삶을 살았을 텐데..’ ‘어쩌면 그는 너보다는 훨씬 차분한 성격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부모가 갖는, 이상적인 인간상에 대한 기대감에 더해서, 루카스는 친척들에게서도 마찬가지의 말을 듣고 자라야만 했다. ‘너의 엄마 말씀 잘 들으렴. 음악 따위 포기하고, 직장을 찾아보렴. 너의 부모는 널 위해 많은 걸 포기했어. 한번쯤은 너의 부모를 행복하게 해드려야지?’
이윽고, 루카스는 자라 성인이 되었고, 이제 자신만의 결단을 내릴 시기가 되었다. 그는 결국,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해외로 유학을 떠나기로 했다. 물론 그는 이 결정이 가족을 크게 실망시킬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게 가족을 아프게 만들것이라는 것은 잘 알지만, 자신은 결코 가족이 바라는, 죽은 형제들의 허상이나, 자신에겐 불가능한 이상적인 인간상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루카스는 자신의 모습을 찾아야 했고, 자신의 삶의 작가가 되어야만 했다.
스스로를 찾는다는 것은 가족을 실망시킨다. 하지만 자신의 깨달음을 위해서는 중요한 순간이다
작년, 미국의 유타 주립 대학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 연구의 주제는, 자신을 가족의 ‘골칫거리’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도움이 제일 도움이 될까에 관한 것이었다. 그 상황은, 놀랄 것도 없이, 매우 복잡하고,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 정도였다. 우리가 겪는 감정의 문제들은, 대개 이 가족간의 감정, 가치, 욕구, 신념 등의 충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피는, 우리를 그저 친척으로 엮을 뿐이다. 사랑이 진정한 가족을 만들어낸다”
이 현실을 어떻게 마주하고,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 그것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세 가지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 우리는, 스스로를 그냥 ‘탄력 있는 골칫거리’로 여겨야만 한다. 자신의 역경을 극복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것과 경험한 것을 잊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해야 한다.
- 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에서의 지원이나, 도움 등을 구하는 것도, 우리가 새로운 관점을 갖게끔 하는 큰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 스스로,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신념을 줄지도 모른다.
- 우리 가족에게 적극적인 의견을 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가족에게 우리의 생각이나 의견, 소망을 크게 말하는 것도, 그들이 우리르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헌신한다면, 결코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그저, 진실을 향한 길을 위한 언덕이라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이제 스스로를 ‘하찮은’ 인간이라 생각하지 말아야 할 때이다. 우리는 아마 정말로 ‘가족의 골칫거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깥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가족이 멋대로 붙인 꼬리표인지도 모른다. 우리 골칫거리들도, 가족의 이상을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이제, 이 편견어린 가치관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 말도록 하자. 그리고 남을 실망시킨다는 것이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님을 생각할 때이다. 우리 스스로의 의견을 갖고, 우리의 가치관을 스스로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