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속에 숨어 있는 괴물

· 2018-10-23

아이들은 항상 괴물이 이야기 속에만 존재한다고 말한다. 어느 누구도 괴물들이 실제로는 진짜 사람이고, 백주 대낮에 길거리를 거닌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를 황홀하게 하고는 학대를 해서는 마침내 우리의 자존감을 박살내버리는 어떤 사람, 자식에 대한 사랑을 거부하는 부모들, 무고한 목숨을 앗아가는 테러범들, 아니면 불필요한 전쟁을 시작하는 정치가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사실, 우리 마음속에 숨어 있는 괴물이 있다.

사실 말이 중요하다. 그리고 말은 진실과는 다른 딱지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괴물”이란 용어는 예를 들면, 허구적이면서 문학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저 순전히 악을 내포한 행동을 묘사하기 위해서 그 단어를 정당하게 사용할 수는 없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이 괴물이 되지 않게 하자” – 니체 

괴물의 개념에 대한 과학적 토대는 없다. “악한 사람 혹은 괴물과 인터뷰 하는 방법”에 관한 장이 들어있는 교과서는 없다. 그렇다고 괴물을 찾아내도록 도와주는 매뉴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눈을 똑바로 뜨고 보자. “인간성”의 개념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묘사할 때면, “괴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에 따르면, 경찰이 사람을 묘사하기 위해서 “괴물”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1790년이었다고 한다. 당국은 한 살인자를 찾고 있었는데, 그 살인자는 전대미문이었다. 거의 2년 동안 런던 시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변태이면서 상상할 수도 없는 존재였다. 토막 살인범 잭의 이야기이다.

우리 마음속에 숨어 있는 괴물

살과 피의 괴물, 인간성이 실종된 사람들

“괴물”이란 단어는 아직도 원래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 초능력자는 악마와 결탁하여 우리에게 해를 가져온다. 그래서 이 용어를 누군가에게 사용할 때마다, 우리는 실제로 그 사람에게서 모든 인간적 특성을 벗겨내는 것이다.

“괴물”은 과학적인 실체가 없는 단순한 딱지일 뿐이라고 언급을 했다. 하지만, 범죄자 프로파일을 만드는 어떤 전문가들은 가끔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 1970년대 미국의 연쇄 살인범 Ted Bundy를 두고 일어난 일이다.

범죄의 세계에서 Bundy 가 역사상 가장 잔혹한 연쇄 살인범이다. 인터뷰에서, 그는 100명의 여성을 죽였다고 말했다. 그의 냉혈한 잔혹성 때문에 단지 36명의 피해자의 시체밖에 찾지 못했지만 당국은 그의 말을 믿었다.

Bundy는 겉으로 보기에 총명하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었다. 법과 심리학을 대학에서 전공했고, 출세 지향적인 정치가이자, 줄곧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승자의 전형적인 본보기처럼, 승리가 눈앞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사회에서 존경받는 사람 속에 괴물이 들어 있을 수가 있다

하지만, 수십 명의 대학생이 사라진 후에 Ted Bundy라는 이름이 그 사건들 배후에 있고,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야만적인 행동이 발견되었다. 당국의 말을 잃게 만든 잔혹한 살인이 있었다. 당국은 그를 “괴물”이라고 딱지를 붙였다. 그가 저지른 만행 때문만이 아니라, 그에게 행한 여러 심리 테스트의 복잡한 결과 때문이기도 했다.

당국의 결론은 Bundy는 정신병자도 마약 중독자도, 알콜 중독자도 아니였다. 뇌 손상이나 어떤 정신 장애도 앓고있지 않았다. Ted Bundy는 그저 악을 실천하는 것을 즐겼다.

괴물들이 살고 있는 또 하나의 장소 –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끔은피테르 브뤼겔(Brueghel the Elder)의 혼란스런 그림들과 같은 세상이기도 하다. 그의 그림에서 악은 군중의 일상 생활 속에, 도시 대중의 소문 속에, 그리고 길거리에 숨어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괴물들은 우리 주위에만 거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괴물들이 종종 왕래하는 장소는 바로 우리 자신의 마음이다.

가끔은 두려움, 우리의 감정, 생각이 우리를 매우 어두운 곳에 가두어버릴 수가 있다. 우리가 길을 잃고 악마에게 질식되는 곳. 사람이 자신의 악마와 접촉을 하게 되는 그 여정을 완벽하게 그려냈던 작가들이 있다. 그들은 악마를 알고, 물리치고, 그들의 속박에서 벗어나 다시 나오려고 한다.

단테가 “신곡”에서베르길리우스를 통해서, 루이스 캐롤이 앨리스를 통해서, 그리고 모리스 샌닥이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맥스를 통해서 괴물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 특히 샌닥의 책은 보석 같은 동화책이다. 그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누구나 어느 시점에서 마음속에 있는 그 괴물이 우리를 이상한 곳으로 끌어내리는 “내적인 발톱”의 피해자가 될 수가 있다.

맥스가 늑대 의상을 입었을 때, 건방지고 싶은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느꼈고, 그의 엄마는 그를 “괴물!”이라고 불렀고, 맥스는 “엄마를 잡아먹을 거야!”라고 답했다. – <괴물들이 사는 나라>, 모리스 샌닥

괴물들이 사는 나라

괴물의 땅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읽으면서 아이의 손을 잡고 여행을 할 수 있다. 그 모험은 가끔 우리는 가장 이상한 동물들이 살고 있는 초현실적인 왕국을 방문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우리를 거기에 잡아두게 해서는 안 되고 지나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함을 쳐야하고, 화내고, 웃고, 울고 해야 한다. 그 괴물들을 이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모두 해야한다.

그 괴물의 땅에 우리의 발자국과 녹쓴 왕관을 남겨두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것으로부터 해방이 되어서 말이다. 다시 순수해지고 삶으로 다시 돌아온 행복감에 젖게 되고 힘도 세질 것이다.

어릴 때 존재한다고 우리에게 말해주었던 그 괴물들은 실재로 존재한다. 우리 주위에 있는 악마들을 늘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괴물들이 “천사”로 위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우리 마음속에 나타나는 그 괴물들은 용감하게 물리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