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리오 코르타사르: 아르헨티나 지식인의 삶
훌리오 코르타사르는 놀라운 이야기꾼이었다. 그는 팔방치기(Hopscotch)로 우리를 매료시켰고 일상생활이 특별하고도 예측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라틴 아메리카 출신 작가 중에 그처럼 이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가 남기고 간 유산은 앞으로도 여러 세대 동안 지속될 것이다.
훌리오 코르타사르
얼마 전 그가 백혈병으로 비극적인 사망을 맞이한 지 35주년이 되었다. 그러나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이름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남아있다.
그는 놀랍도록 섬세하고 시적인 산문으로 단편작을 쓸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초현실주의 스타일로 우리의 일상, 일상의 가장 날것의 모습 및 영감을 주는 부분에 빛을 비추기도 혹은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단편 소설인 ‘동물우의담(Bestiario)’을 시대를 초월한 걸작으로 여기고 있다.
그는 수많은 책을 썼고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 소설, 수필 및 시를 남겼다. 그러나 그는 문학적 측면을 넘어서서 그의 이상을 추구했던 사람이었다. 실제로 훌리오 코르타사르는 자신의 고국인 아르헨티나에서 군사 독재에 대항하는 한 방법으로써 프랑스인이 되기로 한다.
꿈에서, 시에서 그리고 놀이를 통해서 우리가 알고있는 우리가 되기전에 우리로 때때로 도달할 수있게된다.
-훌리오 코르타사르-
훌리오 코르타사르의 생애
훌리오 코르타사르는 1914년 벨기에에서 1차 세계 대전이 시작하던 시기쯤에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아르헨티나 출신이었지만, 브뤼셀의 아르헨티나 대사로서 일하던 그의 아버지로 인해 유럽에서 몇 년의 시간을 보냈다.
5년 후, 코르타사르는 처음으로 부모님의 나라를 방문한다. 아르헨티나는 프랑스 함께 그의 개인적인 삶과 문학에 진정으로 영향을 준 나라였다.
편지의 남성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학업을 마치고 몇 년간 작은 마을에서 교사로 일했다. 그리고 1951년 그는 보조금을 받은 후 그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였던 파리로 돌아갔다. 그는 유네스코 번역가로 일하면서 문학 경력을 쌓기 위해 얼마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를 떠날 무렵 그는 이미 그의 유명한 작품인 ‘동물우의담’을 포함한 매우 중요한 책들을 출간하였다. 또한 레알리닷(Realidad) 및 또 다른 유명한 작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게스’가 편집장으로 있었던 로스 엔헬레스 데 부에노스 아이레스(Los Angeles de Buenos Aires)를 포함한 여러 잡지사에서 일을 했다.
그러나 그는 60년대에 그의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코르타사르는 라틴 아메리카 및 스페인 문학에서 주요 인물이 되었다.
그의 이름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후안 룰포,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마리오 베네데티 및 그가 존경했던 호르헤 루이스 보르게스와 같은 문학계의 거물들과 함께 거론되었다.
코르타사르는 섬세하고 혁신적인 스타일과 진정한 사회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소외된 그룹과 사회 계급과 함께 일찍 인정받게 되었다.
훌리오 코르타사르 : 사회 운동가
훌리오 코르타사르 결코 전형적인 지식인의 상징이 되진 못했다. 이는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내향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그는 후안 페론과 그의 군사 독재에 대항하는 많은 시위에 참여했다. 그러나 60년대가 되어서야 진정한 자신감을 얻어 열성적인 운동가가 될 수 있었다. 그 시점까지, 그는 주로 그의 문학 작품을 위해 그의 목소리와 사상을 표현하는 것을 삼가했다.
‘또 다른 해변’과 같은 책과 ‘포획된 집’과 같은 이야기는 아르헨티나가 겪은 끔찍한 시기를 상징했다. 이 작품들로 인해 그는 인정을 받게 되었으며, 공공 영역에 대한 접근성을 얻게 되었기 때문에, 더 강력한 정치적 성향이 개발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그는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기 위해 쿠바에 갔으며, 칠레 대통령으로 살바도르 아옌데의 취임식에 참석했고,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운동을 지원했다.
그는 어느새 급진적인 작가가 되어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인권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는 콘퍼런스를 열고 ‘칠리, 레 도스 누아(Chili, le dossier noir)’와 같은 중요한 서적을 출판했으며, 칠레의 피노체트의 잔인한 정권에 대해 매우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행동은 아르헨티나 정부에 의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제로 비밀경찰은 그의 정치적 신념으로 인해 그를 계속해서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정치적 압력 (그리고 박해)은 결국 코르타사르가 프랑스 시민권을 신청하고, 그가 사랑했던 도시 파리로 영원히 이주하게 만드는 배경이 되었다. 그는 백혈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마지막 날을 파리에서 보냈다.
우리의 모든 감정 중에서 실제로 우리에게 속해있지 않은 유일한 것은 ‘희망‘이다. 희망은 삶에 속해 있으며 이것의 삶 자체는 스스로를 방어하고 있다
-훌리오 코르타사르-
팔방치기: 문학의 보물
1963년 그 당시 ‘팔방치기’의 출판은 스페인어 문학의 전환점이었다. 코르타사르는 그 작품과 함께 이전에는 한 번도 행해지지 않은 것을 해 보였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언어를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는 그의 능력, 기교, 스타일, 놀라운 줄거리라는 모든 요소가 합쳐져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구조
‘팔방치기’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두 가지 방법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첫번째, 1장에서 56장까지 읽는 ‘일반적인’방법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코르타사르가 이 책의 시작 부분에서 설명하였듯이, 또 다른 방법은 ‘지침 표’를 따르는 것이다.
두 번째 방식을 따르는 경우 73장부터 시작하여 각 장 끝에 표시되는 순서를 따르게 된다. 그게 전부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두 가지 방법 모두로 책을 읽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작품이 얼마나 놀라운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으며, 새로운 관점과 해석에 마음을 열어둘 수 있다.
스타일
코르타사르는 시적 산문으로 팔방치기를 썼다. 그는 단지 이 책의 혁신적인 구조로 독자들을 놀라게 할 단일한 목표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의 진정한 목표는 독자들이 한 가지 이야기가 다시 쓰이고, 반전이 이뤄지고, 다시 고려되고 심지어 파괴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기존 전통적인 언어에서 벗어나 우리 마음의 가장 감정적인 부분을 묘사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는 말장난, 구두점의 변화 및 신조어(새로운 단어)를 통해 이를 완성하였다.
줄거리
이 책의 주인공은 냉정하고 분석적이며 지적인 사람인 ‘오라시오 올리베이라(Horacio Oliveira)’이다. 그는 또한 인구의 상당 부분을 상징하는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가장 잊기 어려운 인물 중 하나인 ‘라 마가(La Maga)’를 만나면서 그의 세계에 갑자기 변화가 생긴다.
그녀는 순수하고 정서적이며 자발적이며 전통적인 면과는 거리가 멀다. 그녀의 성격은 초현실주의의 진정한 본질, 코르타사르가 프랑스에있는 동안 영향을 미친 사회적 움직임을 포함하고 있다.
그녀는 사회에 도전한다. 그녀는 또한 오라시오 올리베이라와는 정반이다. 외향적이며 원초적인 인물이다. 이 여성은 이상하리만큼 단어 사용능력을 키우고 싶어 하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주변 지식인들은 그녀의 직관과 마법, 단순성을 부러워한다.
‘팔방치기’는 지성적 혹은 정서적, 엄격함 혹은 혁명적, 실존적 혹은 관습적이라는 사회의 양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과 같이 정신적인 자극을 줄 수 있는, 그리고 심도 있게 반성하게 만드는 책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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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rraez, Miguel (2011) Julio Cortázar, una biografía revisada. Alre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