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살의 신: 일상의 캐리커쳐

· 2019-02-14

방 한 칸을 배경으로 네 명의 배우가 나오는 영화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대학살의 신이란 영화는 일상생활을 아주 훌륭히 패러디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이 영화는 야스미나 레자의 동명의 연극을 각색한 것이다.

그 영화에 특출난 배역이 존재한다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케이트 윈즐릿 , 조디 포스터, 크로스토프 왈츠, 존 라일리 등의 유명한 배우가 출연한다. 이는 짧은 영화로 공간적 측면에서 정적이며, 캐릭터는 제한되어 있지만 매우 강력한 시나리오를 가진다. 그리고 이 영화의 핵심은 연기와 대본에 있다.

“알다시피 법의 기원은 짐승 같은 힘이다.”

-알란 코완, 대학살의 신-

대학살의 신: 아이들에 관한 갈등?

영화는 유일한 야외 장면인 공원에서 두 아이 사이의 말다툼으로 시작된다.

이 다툼은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막대로 때리면서 끝이 난다. 그리고 장면은 이 싸움으로 크게 다친 아이가 사는 롱스트리츠 가족의 가정집으로 옮겨간다.

양측 부모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파트에서 만난다. 그 양가는 다음과 같다.

  • 코완: 공격한 아이의 부모. 그들은 우아하고 뛰어난 커플이다. 아버지 앨런은 유명한 변호사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어머니 낸시는 금융 투자자이다. 그들은 사회적 지위를 누리는 착하고 부유한 사람들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 뒤에 숨겨진 허위와 위선을 깨닫는 날이 머지않았다.
  • 롱스트리트: 공격을 당한 아이의 부모. 그들은 선하고 평화를 사랑하며 갈등을 유연하게 해결하려고 애쓰는 커플이다. 아버지 마이클은 차분하고, 태평하며, 선한 남자로 보이며 긴장된 상황을 진정시키려 애쓴다. 그의 아내 페넬로페는 평화주의자 같은 작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찾아온 손님에게 곧바로 특정 적개심을 가진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칼이 날아다닌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가면이 벗겨지고 등장인물은 정치적으로 옳은 면에서 공격적인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평화 중재자로 보이는 마이클조차 어둡고 악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대화는 말로 하는 대학살이 되고, 칼이 사방으로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처음에 의도한 것은 갈등 해결이었지만 결국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그리고 각각은 본색을 드러낸다.

추리와 일관성이 사라지고 모두 더욱 공격적으로 변한다. 서로를 조롱하면서 각 인물의 최악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심각한 상황은 말도 안되는 유치한 상황으로 변한다.

대학살의 신과 자기 중심성

이 영화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 충동을 탐구한다. 우리의 강렬하고 어두운 면이 폐쇄적인 분위기 속에 드러난다. 갈등은 계속되고, 결국 코완이 아파트를 떠나려는 시도는 실패하고 만다.

논쟁은 돌고 돌아 출구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이다가도 또 다른 갈등이 함정에 빠뜨린다. 

영화 속 사물은 네 벽 사이에 갇혀 아무 데도 못 가는 듯하다. 영화의 한 부분에서 실제로 아파트를 떠나려고 엘리베이터에 접근한다.

하지만 갑자기 또 다른 다툼이 시작돼 다시 거실로 들어선다.

두 가족의 싸움은 결국 여자에 대한 남자들의 싸움이 될 때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완벽히 개별적인 전쟁이 된다.

저마다가 자기를 방어하고, 인간의 고집이 추악한 머리를 치켜든다. 모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다. 모두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한다면 세상이 더 좋은 곳이 될 거로 생각한다.

대학살의 신은 인간 본성에 대한 가슴 아픈 패러디이다. 모두가 자기방어 메커니즘을 사용하고, 요점을 놓치며, 말로 서로를 찔러댄다.

대학살의 신

사회적 비판

그들의 사회적 관례를 뒤로하고 본연의 성격을 보여주면서 가면 뒤 현실을 보게 된다. 또 우리 세계의 위선과 도덕 관념의 부족도 보게 된다.

폴란스키는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등장인물을 출연시키며 우리의 일상생활을 비관적으로 표현한다. 누구든 이들 중 한 명과 자신의 유사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자신의 관계보다 일에 더 신경을 쓰는 앨런 코완의 캐릭터를 통해 돈과 지위의 중요성을 비판한다. 그는 아들에게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심각한 건강 문제를 일으키는 제약회사를 보호하려 함으로써 부도덕한 인물로 비춰진다.

또한, 항상 일에 매달려 휴대전화에 붙어산다. 그의 이런 태도는 두 가족 간의 의사소통을 방해함으로써 갈등을 심화한다.

페넬로페는 앨런과 대조적이다. 그녀는 인도적인 부분에 집중하며 제3 세계의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자신이 보는 모든 것만 믿으며 수단이 서방으로부터 받는 원조 뒤에 숨겨진 진정한 이해관계를 보지 못한다.

대학살의 신

비평, 코미디, 현실주의

이 혼란스럽고 무의미한 상황은 결국 어떤 결론도 이끌어내지 못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부분은 아이들이 부모에게 주는 교훈이다. 짧은 장면이지만 모든 것이 시작되고 아이들이 차이점을 뒤로한 것처럼 보이는 공원에서 일어난다.

너무나 복잡한 이 모든 것들이 아이들 간의 간단한 다툼과 악수로 끝날 수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생각하게 한다.

비판, 코미디, 현실주의는 대학살의 신에 훌륭한 방법으로 결합한다. 이는 일상적인 상황을 보여주지만, 가짜 미소를 넘어 인류가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동물의 창살에 지나지 않음을 드러낸다.

대학살의 신은 현 사회의 예술적 캐리커처로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야만적 신을 믿는다. 태곳적부터 규칙 따위는 따지지 않는 신.”

-앨런 코완-

TILLMAN, F. (1986). Film, thought and language. World Englishes. https://doi.org/10.1111/j.1467-971X.1986.tb00732.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