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으로 편견을 없앤 빌리 엘리어트 이야기

'빌리 엘리어트'는 편견을 깨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영화로 기억된다. 아이에게 적대적으로 보일 수 있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주인공은 꿈을 향한 열정으로 결국 모든 장벽을 허무는 데 성공한다.
춤으로 편견을 없앤 빌리 엘리어트 이야기
Sergio De Dios González

검토 및 승인: 심리학자 Sergio De Dios González.

작성자: Leah Padalino

마지막 업데이트: 18 10월, 2022

‘빌리 엘리어트’는 새 천 년을 연 영화 중 하나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약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논란이 되는 주제를 다뤘으며 이후 ‘빌리 엘리어트’ 뮤지컬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

새 천 년을 연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시기적절하게도 구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미래에 관한 주제를 이야기한다. 관용을 주제로 하거나 장르의 틀을 깨는 최초의 영화는 아니지만 색다르게 무용수의 꿈을 좇는 남자아이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주인공, 빌리 엘리어트는 자신이 사회에서 적대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빌리의 춤에 대한 사랑은 놀림감이 됐고 가족과의 갈등까지 일으킨다. 하지만 빌리는 구시대적 가치를 파괴하고 가족에게 수용과 관용의 힘을 가르친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주연인 제이미 벨은 크게 유명해졌고 엘튼 존은 ‘일렉트리서티(Electricity)라는 곡을 만드는 데 영감이 됐다고 말했다. 사실, 이 작품 자체가 레전드가 된 셈이다.

빌리 엘리어트는 훌륭한 주제를 담은 영화다. 빌리가 개인적인 투쟁에서 승리하고 가족까지 빌리의 선택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과정 속에서 억압적인 사회 체계와 가정환경의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몰입도 높은 연기를 펼친 출연진과 단순하지만 감동적인 줄거리 덕분에 달드리 감독의 작품은 인생과 관용의 교훈을 준다.

빌리 엘리어트

빌리 엘리어트는 탄광촌에서 아버지, 형과 할머니와 함께 사는데 빌리의 아버지인 재키와 형인 토니는 남자다움과 관련된 가치를 나타낸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빌리의 가족은 형편이 어려워졌고 광부인 형과 아버지의 월급으로 겨우 생계를 이어갔다. 할머니는 무용수 지망생이었던 과거를 회상하며 젊은 시절에 대한 망상을 자주 일으킨다.

빌리 엘리어트는 편견에 관해 생각하게 만든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 어떤 편견에서도 자유롭지만 사회에 의해 정형화한 모습으로 성장하게 된다. 요즘은 사회가 발전하여 성적 역할에 관해 유연하게 사고하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성적 편견이 매우 지배적이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소녀들의 전유물과도 같았던 무용수를 꿈꾸는 소년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축구선수가 꿈인 소녀나 발레 무용수가 되고 싶은 소년처럼 누구나 꿈을 쫓아도 된다고 말한다.

빌리는 복싱 체육관에 자신을 등록시킨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춤 연습으로 시간을 보낸다. 주변에서는 이런 빌리를 두고 조롱하며 차별한다.

빌리 엘리어트 속 편견 파괴

영화 속에서 무용수를 꿈꾼 빌리를 동성애자로 묘사하기 쉬웠겠지만 진실과 멀어질 수는 없었다. 사실 빌리의 곁에서 항상 응원하며 아름다웠던 우정을 쌓았던 친구, 마이클이 여장을 즐기던 동성애자였다.

관객은 장벽을 세우고 우정을 포기하며 진정한 자아를 감추는 것이 어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빌리는 결코 마이클을 자기 잣대로 판단하지 않는다. 마이클의 동성애에 관해 한 번도 언급하지 않으며 그냥 친구로서 받아들인다. 동성애자라는 편견으로 마이클을 정의할 수 없다. 빌리에게 마이클은 그저 무엇보다 소중한 친구였다.

빌리 엘리어트 편견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역사 및 문화적 맥락

2000년 개봉한 ‘빌리 엘리어트’는 관용은 물론 가장 흥미로운 정치 및 문화적 주제를 이야기한다.

빌리의 아버지는 1980년대 영국 북부 더럼 카운티 탄광촌의 광부다. 당시 영국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는 북부의 노동 계급을 뒤흔들 정책을 펼쳤다.

대처 정부는 가혹한 경제 조처를 했고 그 결과 가장 산업화한 지역의 실업률이 특히 높아졌다. 또 광업의 민영화와 노동조합의 와해를 위해 광부들도 힘든 시기를 보낸다.

덕분에 대처는 노동 계급의 적이 됐다. 영화가 촬영된 1985년부터 광부 파업이 발생했지만 대처는 런던의 계속 광업의 민영화와 권력 집적을 주장했다.

대처의 결정은 오늘날까지도 영국에 분열을 일으키고 있지만 당시에는 파업이 실패하고 대처리즘이 승자로 떠올랐다.

빌리의 춤에 대한 열정을 주로 다룬 작품이지만 은근히 대처 때문에 힘이 빠진 광업 운동의 아픈 사연도 관객에게 이야기한다.

광부 파업의 심각성은 영화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빌리의 아버지 같은 일부 광부가 자존심을 삼키고 출근하던 모습은 억압자와 피억압자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드러낸다.

빌리의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탄광에 출근한다. 관용적 측면에서는 사랑하는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노력으로 볼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빌리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직장에 복귀한 아버지는 파업에 참여한 동료들과 충돌한다. 편견을 제쳐두고 아들의 미래를 위해 일하는 아버지는 부당하지만 압제자 앞에 굴복한다.

불평등과 인간성

이러한 불평등한 상황은 빌리와 아버지가 발레 학교 시험을 보기 위해 런던에 도착했을 때 완벽하게 반영되는데 빌리와 다른 세계에 사는 심사단은 마치 재판하듯 빌리를 평가한다.

부유한 런던 사회는 북부의 어려운 사정을 잊어버리고 빌리의 친부뿐만 아니라 무용계의 실세마저도 소년의 열정을 편협하게 바라본다.

많은 이의 꿈과 욕망을 좌절시키기 충분한 편견이었지만 춤출 때 전신이 뜨거워지고 감전된 것처럼 짜릿하다는 빌리의 진심에 무너져버린다. 빌리의 춤에 대한 사랑은 출생지, 성적 취향, 부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요컨대, 빌리 엘리어트는 아직 타락하지 않은 인류, 즉 아이들을 통해 교훈을 전달한다.

“춤추기 시작하면 모든 걸 잊게 되고 몸 전체에 변화가 느껴져요. 전신이 불이 난 것처럼 뜨겁고 새처럼 나는데 감전된 것처럼 짜릿하죠.”

-빌리 엘리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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