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사람들의 세계

30 12월, 2017
 

예민한 사람은 자신만의 언어를 사용하곤 한다: 바로 감정의 언어이다. 그것은 매우 친밀한 지각적 언어로 예민한 사람들의 마음은 항상 안절부절하지 못하며, 자신이 취약하다고 느끼게 되는 원인이다. 하지만, 예민한 사람들이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자신의 취약성이 의외의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힘이 넘치는 정신의 근육과 같지만, 동시에 위험한 것이다. 감정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만큼 강력한 도구: 즉 인간의 정서 지능이란 것이 있다.

예민한 사람은 언제나 인간들 사이에 숨어 있으며, 그 일상의 풍경 속에 섞여있다. 동시에, 우리들 모두는, 우리들이 모두 하나로 동일할 것을 원하며,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며,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은 요구하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마치 우리 모두가 아플 때 완전히 같은 처방전을 받고, 같은 감정적 언어를 말하듯이 말이다.

“사람이 세상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면, 그 사람은 매우 예민해진다. 민감하다는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내적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며, 그 아름다움의 의미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예민한 사람들의 세계

예민한 사람의 일상은, 마치 고슴도치의 등의 가시, 또는 장미의 줄기의 가시처럼, 뾰족한 가시의 형태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그 사람이 받아들이는 모든 것이 조금 더 아프게 느껴지고, 동시에,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이런 감각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여겨질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무례하고, 무관심한 듯히 보이는, “당신은 모든 것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 좀 더 강해지고, 마음을 가볍게 비워야 해.”와 같은 말을 할 때, 두 번 생각하지 않을 매우 급해보이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테드 제프 박사가 자신의 저서, [예민한 사람을 위한 생존비법]에서 저술했듯이 예민한 사람들은 과민 반응을 보이는 신경계를 갖고 있다. 또한 그들은 뇌의 일부가 더 강하게 기능하는 면도 존재한다. 특히, 뇌도와 뇌의 다른 영역은 인간의 감정 이입 능력과, 그 정서적 반응과 관련이 깊다.

다른 주파수를 통해 세상을 조율하는, 그런 두뇌를 가진 사람이라면, ‘더 힘들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아닌 무언가로 완전히 변할 수는 없으며, 우리의 마음의 소리가 압도적으로 클 때, 그 소리를 줄일 수도 없다. 우리의 영혼이 우리에게 말을 할 때, 우리는 그 감정을 통제 할 수 없으며, 우리의 현실은 갑자기 우리만이 볼 수 있는 색채를 보여주게 된다.

예민한 사람들의 세계

예민한 사람과 그 주변 환경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아마 그 친구를, 애정을 담아 “보되, 만지지 마“라고 말할 것이다. 그의 미세한 후각이나 촉각은, 우리의 주목을 끈다. 예민한 사람에게 불편함을 주고, 가려움을 유발하고,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는 작물이 존재한다. 

 

가끔은, 단순한 일상 속의 소리, 혹은 그보다 약간 더 큰 소리가 예민한 사람에게 심한 고통을 주기도 한다. 예민한 사람들은 모임이나 파티에 참석하더라도, 차라리 빨리 끝나기를 바라며, 구석에 숨어있곤 한다.

정신과 의사이자 [감정적 자유]의  저자인, 주디스 올로프 박사에 따르면, 예민한 사람들의 감각적 지각력의 문턱은, 일반인의 것과는 다르다. 마치, 일반인의 자극의 수준에 50을 곱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감정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섬세한 지각력과 정서적 문턱은, 매우 강렬한 방법으로 삶의 아름다움에 적용할 수 있는,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아름다움을 완전히 놓치고 살고 있기 때문에 더욱 가치 있다.

그래서, 높은 감수성이 선물이라는 말은 결코 오류가 아니다. 그러나 예민한 사람들이 자신이 받는 자극을 적절하게 관리하고, 적절히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이 자신의 일상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엄폐물을 잘 활용하여, 자신의 자부심과 정서적 자립성을 잘 관리할 수 있게 되면, 그 사람은 매우 뛰어나고 성숙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예민한 사람들은 침묵 속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소중한 고독의 순간을 알 수 있는, 세세함의 소중함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이 조용한 순간에, 자신의 모든 활동(특히 예술 활동)이 그 사람에게 스릴감을 준다. 논리적으로 제대로 설명하기 힘든 인간의 감정의 폭발, 즐거움, 그리고 미묘한 감정을 잘 인지하는, 20%에 드는 사람들이, 바로 예민한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무지개

예민한 남자와 침묵의 세계

여기, 알렉스라는 한 남자의 모습을 예시로 들고자 한다. 알렉 스는 일을 마치고 퇴근한 후에, 자신의 누이와 함께 커피를 마셨다. 그는 하루 종일 위장에 매듭이 묶인 양, 매우 지쳤다고 말한다. 그의 상사는 알렉스가 별로 잘 하지 못하는, 판매 담당 책임자의 업무를 보고, 알렉스에게 작은 비판의 꾸지람을 했다. 사실, 알렉스는 너무 크게 꾸지람을 받은 탓에, 직장 동료들이 이를 갖고 놀리기까지 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직장 사무실에서 이미 ‘호들갑쟁이’ 이라고 불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군가의 감수성을 무시하지 마라. 모든 사람의 감수성은 자신들의 천재성이다.” – 찰스 보들레르

이 간단한 예시는, 많은 예민한 사람들이 지금 살고있는 현실을 형상화한 것이다. 실제로, 예민한 사람이란 말은, 여성에게 국한 된 표현이 아니다. 예민한 사람의 절반은 남성이며, 예민한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에서 가장 압박감을 느끼는 것도 남성이다우리의 문화는 간신히 감정을 유지하는 사람, 비판에 고통받고 잘 우는 사람, 혼자놀기를 선호하는 사람, 주변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강한 공감을 가진 사람을 거부하기도 한다.

 
바다의 남자

이 시점에서, 예민한 감수성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인데도, 이를 숨기고, 여전히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의 주의를 환기시키지 않고, 조용히 남들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상처를 입지 않도록 조용히 바라본다. 우리는 각자가 날서린 사람들과 그들의 말로 가득 찬 세상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남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존경과, “살아라, 그리고 살게 두어라.”라는 원칙은 우리 삶의 모든 면에서 중요하게 인지되어야, 진정한 개인적인 성취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