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토닉 사랑이란 무엇일까?

· 2019-04-09

플라토닉 사랑이란 정신적 연애를 뜻하는 말로, 일상 속에서 정말 흔하게 사용되는 표현이다. 이 말을 사용할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두 친구 사이의 비성적이고 비낭만적인 사랑에 관해 이야기한다.

플라톤의 철학과 연결되는 ‘플라토닉’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사실 우리가 말하는 플라토닉 사랑은 그의 사랑에 대한 정의와는 약간 거리가 멀다.

이 글에서는 플라토닉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자.

사랑은 늘 우리 주변에서 가장 많이 다뤄지는 이야기 주제 중 하나다. 그것은 시인, 작가, 사색가 및 철학자들에게 처음부터 영감의 원천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물론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도 예외는 아니다.

플라톤에 관한 몇 가지 정보

플라톤은 그리스 철학자였다. 처음에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였고 나중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 되었다. 그는 많은 글을 썼지만, 가장 잘 알려진 저서는 아마도 심포지엄(Symposium)과 동굴의 비유(Allegory of the Cave)일 것이다. 심포지엄은 그가 사랑에 대한 자기 생각을 이야기한 글이므로 우리는 이를 통해 “플라토닉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다.

플라톤에 관한 몇 가지 정보

플라톤은 사랑이 우리 자신을 위해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경험하는 동기로 인식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철학에서 주요 개념 중 하나인 이원론을 통해 아름다움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원론은 우리가 현실을 보는 방식이 물질적(육체적), 그리고 비물질적(영적)이라는 두 가지 독립적인 물질로부터 온다는 철학적 개념이다.

이 두 가지는 함께 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절대로 혼합될 수는 없다. 플라톤은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육체는 물질세계에 속하지만 영혼은 사상의 세계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영혼은 또한 그것이 갇혀있는 몸과 공존해야 하지만, 그에 의하면 이 두 현실은 완전히 독립적이다.

이는 플라톤이 사랑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한 철학적 개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를 오해하고 있다. 그들은 플라토닉 사랑을 금욕적이고 영적인 사랑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 철학자의 사랑에 대한 생각은 그 중간쯤에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사랑이 안정성 면에서 완벽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므로 무차별적이거나 금욕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랑

이 개념에는 여러 가지 의미, 감정, 용도가 있다. 따라서 간단한 방법으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확실한 사랑의 한 측면은 그것이 우리가 서로에게 연결되는 것과 관련된 보편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영어로 사랑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감정을 포함한다. 열정적인 욕망과 낭만적인 사랑의 친밀감에서부터, 가족과 함께하는 비성적인 감정인 친밀함에 이르기까지 모든 감정이 될 수 있다. 깊은 헌신이나 종교적 사랑을 포함할 수도 있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사랑이 어떤 종류이든, 이 감정은 항상 아주 강하다. 기본적으로 이 감정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저항할 수 없는 감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플라토닉 사랑은 실제로 우리 관계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이 사랑은 예술에 영감을 주는원천이며 심리학이 그렇게 많은 것들을 연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랑에는 늘 어떤 광기가 있다. 그러나 광기에는 항상 이유가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플라토닉 사랑이란 무엇일까: 이면에 숨어있는 개념

우리가 사랑에 ‘플라토닉’이라는 단어를 넣을 때, 이는 플라톤과 그의 철학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소크라테스 연설을 통해, 플라톤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경험하려는 동기 또는 충동이 사랑이라고 말했다. 이 사랑은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형상이나, 영원하고 이해할 수 없는 완벽한 사랑에 관한 것이다.

즉 플라톤은 사랑이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경험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왔다고 생각했다. 이 과정은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존중하고 영적인 상탤 나아갈 때 시작된다. 그래서 가장 높은 단계는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사심이 없는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한 경험이다.

보다시피, 플라토닉 사랑은 확실히 비낭만적인 사랑에 관한 건 아니다. 이는 육체의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종류의 사랑이다. 플라톤은 사랑이 정말로 다른 사람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성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도 여기지 않았다. 그는 사랑을 아름다움의 탁월한 본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아래는 심포지엄에서 플라톤이 사랑에 대해 말한 내용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결코 사랑하는 것은 아름다움이라기보다는 곧 선량함이며, 사람들은 이 선함을 영원히 갖고 싶어 한다. 무언가 영원히 갖고 싶어 하는 것은, 필멸의 인간이 불멸을 추구하기 때문이고,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두 가지의 방법은 자식을 낳는 것과 지식 및 예술을 낳는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숭고한 사랑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플라토닉 사랑 이면에 숨어있는 개념은 무엇일까?

플라톤이 말하는 아름다움과 사랑

플라톤에 따르면, 우리는 아름다움을 만났을 때 사랑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물론 사랑에 대한 그의 정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경험하도록 우리를 밀어붙인다. 실제로 아름다움에는 여러 단계가 있는데, 우리는 매번 다른 단계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다.

  • 육체적인 아름다움: 이는 첫 단계이며, 육체에 대한 사랑의 느낌으로 시작하고, 일반적으로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으로 진화한다.
  • 영혼의 아름다움: 감상, 넘어짐 그리고 그 사람의 육체와 나누는 사랑 사이의 모든 장벽을 넘어서면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집중하게 된다. 따라서 이 단계는 도덕적, 문화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이는 우리가 물질(몸)을 넘어서서 비물질(영혼)로 움직이는 단계다.
  • 지혜의 아름다움: 영적 아름다움을 높이는 길은 항상 지식과 사상에 대한 사랑으로 이끈다. 이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초월한다.
  • 아름다움 그 자체: 처음 3단계를 지나면 마지막 문이 열린다. 이는 어떤 주제나 대상에 묶여 있지 않은 아름다움 그 자체에 대한 사랑을 경험할 기회이다. 이는 가장 높은 수준의 사랑이다.

마지막 단계는 열정적으로, 순전히, 그리고 사심 없이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시간이 지나도 절대 변하지 않을 감정이다. 따라서 그것은 낭만적이지 않은 사랑에 관한 것이 아니라 완벽하고, 영원하고, 이해할 수 없는 형태의 감상에 관한 것이다.

플라토닉 사랑을 낭만적이지 않은 사랑으로 여기는 이유가 무엇일까?

“플라토닉 사랑”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첫 번째 인물은 15세기의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였다. 그가 이 표현을 처음 사용했을 때, 그것은 누군가의 지성과 그들의 성격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춘 사랑이었으며 육체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춘 사랑이 아니었다. 즉 사상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완벽하고 부패하지 않는 형태의 사랑이었다.

플라톤에 따르면, 우리는 결코 이러한 느낌의 순수한 사랑을 결코 얻을 수 없다. 사랑은 관심사가 아니라 덕목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다시 말해, 완벽한 사랑은 단지 환영일 뿐이다. 완전함은 사상의 세계에만 존재할 수 있으며 현실 세계에서 완벽한 것이란 없다.

이 말을 더 간단하게 표현해 보자. 기본적으로 플라토닉 사랑은 성적 욕망이 없는 이상적인 사랑이다. 그래서 우리가 일생 생활에서 이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친구에 대한 비낭만적인 사랑을 말하기 위해서다. 분명히 이는 성적인 사랑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플라톤이 말했던 사랑과 일치한다. 하지만 그것은 플라톤이 말한 진정한 사랑의 일부만을 포함할 뿐이다. 100% 벗어나지는 않있지만, 요즘 우리가 이 표현을 사용하는 방식은 여전히 잘못된 부분이 있다.

플라토닉 사랑을 낭만적이지 않은 사랑으로 여기는 이유가 무엇일까?

플라토닉 사랑이란 무엇일까: 정의

플라톤에 따르면 아름다움은 정의, 선함, 진리와 같다. 그래서 사랑은 항상 아름다움, 정의, 선함, 진실에 관한 것이다. 플라토닉 사랑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의 일부를 다른 사람을 통해 찾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거의 항상 우리가 보는 모든 선하고, 아름답고, 진실하며, 의로운 모습들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플라토닉 사랑은 로맨틱하고 우호적인 사랑이 아니다. 분명 성적인 측면을 가질 수 있는 중간 정도의 영역이지만, 그것이 주요 초점은 아니다.

플라토닉 사랑이란 육체를 뛰어넘으며, 다른 사람의 영혼 및 생각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육체적, 성적 행위를 배제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한 요소들도 일부가 될 수 있지만, 분명 플라토닉 사랑은 그것들을 뛰어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