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기쁘게 하려는 것은 불필요한 낭비

· 2017-08-04

우리가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을 어떻게든 기분 좋게 만들려고 할 때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너무 물렁한 건지도 모른다. 우리의 의지를 희생하고, 욕망을 억누르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마 인생에서 이미 여러 차례 이 시기를 겪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있어서, 적절히 양보하는 것과, 지나치게 양보한다는 것의 범위가 상당히 애매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너무 양보하는 것이 위험하고 불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기준으로 보건대, 우리는 우리가 ‘안돼’라고 말해야 할 때, 일부러 남에게 잘 보이려 하는 것이 우리를 파멸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남과 대화할 때, 우리의 목소리가 떨리고, 시선을 피하게도 된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서는 적절한 거부도 필요하다.

안될 때는 확실히 안된다고 말하자

‘자기 표현’에 대한 정의 중 하나는, 심리학자 월터 리소가 이하와 같이 정의한 바 있다:

“자기 표현이란 사람이 안된다고 말해야 할 때, 반대를 표하는 것, 분쟁을 겪을 때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내세우고, 다른 사람의 의견과 조율을 시도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폭력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누르지 않는 능력이다.”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은,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억누르지 않고 내세울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변화시킬 때, 우리가 우리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부를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우리에게 독이 된다; 마치 영원한 불행이 가득 찬 샘물을 마시는 것과 같고, 불만족스러운 자신이 되는 것과 같고, 우리 스스로에게 화가 난 채, 어마어마한 좌절감으로, 우리의 생각과 신념을 꺾는 것과 같다.

상대가 자신에게 옳지 못한 일을 한다고 당신의 본질을 잃지 말고 주의하라

한 아시아인 교사가 물에 빠진 전갈을 보고, 물에서 건지려 한다. 하지만 그가 건진 후, 전갈은 교사를 쏘았다. 그 고통으로, 교사는 전갈을 놓치고, 전갈은 물 속으로 다시 들어가 물에 다시 빠져버렸다. 교사는 다시 전갈을 구하고, 전갈은 다시 교사를 쏘는 일이 반복된다. 교사를 지켜본 한 사람이 물었다:

“실례합니다만, 참으로 고집쟁이시군요! 전갈을 건져올릴 때마다 그 녀석이 당신을 쏘는 것을 보고도 이러시는 겁니까?”

이에 교사가 답하길:

“그건 전갈의 습성일 뿐, 제가 도우고자 하는 습성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이 몇 번의 도움 끝에, 교사는 전갈을 건져올려, 끝내 그를 구해냈다. “누군가가 당신을 아프게 한다고, 당신의 천성을 바꾸지 마라; 그저 주의만 하라.” 당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들은 당신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것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잘못하거나 한두번 다치게 했다고 바꾸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조정하고, 우리의 상황을 재고하고, 우리의 전략을 그들에게 통하게 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다른 사람을 직접적으로 향한 우리의 감정을 다시 재고하는 것도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원칙을, 아무런 악의 없이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과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악의를 표현하는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원하지 않는 거부의 반복, 그리고 우리의 주변 사람들과 우리가 필요한 것의 상실의 반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표현할 때, 세상의 모든 사람을 무작정 기쁘게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큰 대가를 치르는 것이고, 우리의 자존감이 낮아져, 존엄성과 결단력도 해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 스스로와 우리의 본질을 지키도록 주의해야 하는 이유이자, 무의미하게 잃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안된다고 할 때는 안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