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테라피의 아버지, 빅터 프랭클

로고테라피의 아버지, 빅터 프랭클

마지막 업데이트: 29 10월, 2019

많은 사람들은 빅터 프랭클에게 무슨 칭호를 붙여줘야 할지, 쉽사리 결정하지 못한다. 영웅, 순교자, 위대한 현자.. 그 어느 쪽도 거의 맞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위의 칭호들의 각기 일부의 면을 갖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를 로고테라피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

인간이 살 수 있는 최악의 역경에 용감하게 맞섰기 때문에 영웅이고, 그가 이 역경을 피할 방법이 있었지만, 그는 잔인한 전쟁 중에, 그의 사람들과 함께 머무르며, 고통을 겪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그는 순교자이다. 그는 그의 유산으로서, 심리학의 새로운 영역을 창조하여 발전시켰기 때문에, 위대한 현자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로고테라피이다.

로고테라피의 아버지, 빅터 프랭클

빅터 프랭클은, 인간으로서의 최악의 인간적 고통을 겪는 가운데에서도, 위대한 한 사람으로 성장하여, 인간의 역사에 한 발자취를 남긴 사람이다. 그는 1905년,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오스트리아의 의사이자 정신과 의사였다. 그에게는 형과 동생이 각각 한 명씩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더 이상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빅터 프랭클

그는 고요한 집에서 자랐고, 평화로운 유아기를 즐겼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그는 5 살 때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눈을 뜨지 않은 채, 침대에서 깨어나, 엄청난 행복과 평화의 감정을 느꼈다. 그는 눈을 뜨고, 그의 아버지가 자기 옆에서 자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의 사춘기 동안, 그의 가족은 1차 세계 대전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다. 이것은 매우 잔혹은 시기였다. 생활 용품이 부족해서, 세계가 가난과 굶주림이 무엇인지를 배워야만 했다. 이 시기에, 프랭클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열렬한 팬이 되어, 그와 열렬한 교류를 하곤 했다. 그는 인간의 마음 속에 숨어있는 비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빅터 프랭클과 삶의 의미

빅터 프랭클이 대학 ​​학부생이었을 때, 첫 번째 학술 회의를 갖게 되었다. ‘생명의 의미’라는 제목의 이 컨퍼런스는, 오스트리아의 빈의 인기 대학에서 진행되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평생 동안 대답하려 했던 질문들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왜 우리는 존재하는 걸까?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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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는 처음에는 정신 분석에 매우 관심이 있었지만, 1925 년, 그는 프로이트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그는 프로이트의 접근 방식이 너무 결정론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초점을 알프레드 애들러의 ‘개인 심리학’으로 돌리게 되었다. 그 후, 그는 루돌프 앨러와, 오스왈도 슈왈츠(정신 신체의학의 창설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프랭클은, 언제나 철학, 특히 실존주의에 열정적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신경의학과, 정신의학, 전문의학도 열심히 배우려고 했다. 1933-1937년, 그는 빈 대학의 심리 클리닉의 정신과 의사였다. 1939년, 빈의 로스 차일드 병원의 신경과 학과장을 지 내기도 했다. 그는 운명이 급진적 인 방향으로 나아갈 때에도, 자신의 직업에서 뛰어난 면을 보였다.

나치즘과 2차 세계대전

빅터 프랭클은 유태인이었고, 오스트리아에 살았다. 이 때문에,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나치즘의 확산의 영향을 받아야만 했고, 이 때문에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합병되면서, 그의 상황은 더욱 위험해졌다. 1938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을 때, 그의 형제 월터는 나치에 의해 체포되어 강제 수용소에 수용되어버렸다.

나중에, 그의 누이, 스텔라는 멕시코로 피신했다. 빅터(Viktor)는 미국으로부터 비자를 요청해, 승인받았다. 그러나, 그는 부모와 환자의 운명에 대해 고뇌해야만 했다.

유대인

그 때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라디오에는 대리석 조각이 있었다. 그리고 돌에는 히브리어가 새겨져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제 4계명에,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러면 너는 약속의 땅에 있을 것이다.”라는 계명만 쓰여있었다. “라고 말했고,  후,  그는 오스트리아에 남아있기로 했고, 미국 비자를 반납하게 되었다. 

1941년, 빅터 프랭클은 틸리 그로서와 결혼했다. 몇 달 후, 나치는 그녀의 아기를 낙태시키도록 만들었다. 1942년, 빅터와 그의 아내, 그리고 부모는 테레지엔슈타트 캠프로 강제 이송되었다. 다음 해, 그의 아버지는 굶주림으로 인해, 호흡기 질환으로 크게 쇠약해져, 결국 사망했다. 1944년, 빅터는 그의 아내와 함께 아우슈비츠로 옮겨졌다. 그들은 분리되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녀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이 잔혹하고 힘겹던, 수감과 강제 노동의 시대는, 프랭클에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마침내, 1945년에, 프랭클이 배치된 수용소는 미국 육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베르겐-벨센으로 옮겨진 그의 아내도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탈출한 모든 수용수들이 자유를 향해 달려 나왔을 때, 사람들에게 짓밟혀 사망했다. 빅터의 어머니는, 몇 년 전에 가스실에서 사망했다.

의미를 찾아서

그가 강제 수용소를 나갔을 때, 프랭클은 가족을 찾아 헤맸지만, 결국 그는, 자신 이외의 모든 가족이 사망했다는 슬픈 진실을 듣게 되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그가 재구성하려고 시도한 첫 물건은, 바로 자신이 수용소에 수용될 때, 압류된 그의 수기가 들어있는 책이었다. 그는 그것을 재작성할 수 있었고, 마침내 그의 첫 번째 책인 [정신분석학과 존재주의]를 출판했다

곧, 1945년의 크리스마스 즈음,  프랭클은 거부할 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삶과, 강제 수용소에서 배운 것을 이야기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세 명의 비서를 고용하고 메모를 하도록 했다. 그는 비서들에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모두 말했다. 9일 동안, 그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릴 수 없을 때에만, 말을 멈추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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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 빅터 프랭클의 가장 위대한 작품이 탄생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책이 심리학뿐 아니라, 저자의 증언으로서도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점은 프랭클은 인간의 잔혹한 면모를 돌아보고 싶길 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의 목표는, 세상에 감동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는, “나는 그저, 독자에게, 분명한 예를 통해, 인간의 삶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으며, 그 어떤 조건에서도, 설령 그 조건이 참으로 비참할지라도, 반드시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로고테라피: 인류를 위한 유산

빅터 프랭클은, 다행히도 자신의 삶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그는 1947년에 재혼했고, 딸, 두 명의 손자, 한 명의 증손자를 두었다. 그의 결혼은 50여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는 40개 이상의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30권이 넘는 책을 출판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하버드, 스탠포드, 빈 대학 등이 포함되어 있다. 말년에, 그는 아마추어 조종사로서 첫 비행을 한 직후, 1997년에 세상을 떠났다.

프랭클의 심리학적 신 이론은, ‘로고테라피’,(혹은 의미치료)라고 하며, 지금도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그의 이론을 활용하고 있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신체적, 정신적, 영적 차원의 3개의 차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정신적인 문제는 인간의 정신적 차원에서 힘이 없는 것과, 삶의 의미를 정의하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의 ‘치료의 의지’는 우리가 계속 살아갈 수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

나뭇잎

그렇다면 그 의미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프랭클과 그의 추종자들에 의하면, 인간의 창조, 초월적인 정서 경험, 고통에 대한 태도 등, 우리가 취할 수 있는 3가지 길이 있다. 첫 번째는 창조와 창조의 가치에 해당한다. 인간이 예술을 창조하고, 글을 쓰는 능력과 관련이 있다. 두 번째는 인간의 경험의 가치, 대인 관계 및 체험을 기반으로 하는 능력이다. 세 번째는 인간의 태도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설명하고 있다.

빅터 프랭클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정신 질환이 고난이 아니라 고통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프랭클의 삶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누구에게나 모범이 되는 삶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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