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보호의 후유증

02 7월, 2017

우리는 일반적인 보호 본능과 과보호를 혼동해선 안된다. 우리의 아이들을 지켜주는 것은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아이들이 아직 어릴 때, 부모는 그들의 욕구이자 의지의 대상, 그리고 자신들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모든 동물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을 본능적으로 보호하고 돌본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나 스스로를 돌볼 수 있게 되면, 아이들의 여정이 시작되어 부모에게서 서서히 독립하게 된다.

인간의 경우, 이 보호의 본능이 좀 더 늘어난다. 일반적인 본능 뿐 아니라, 이 보호의 기간 동안, 아이들을 본질적으로 돌보고 안전히 지키지만, 아이들에게 있어서 이 기간은 그들의 정신에 매우 큰 타격이 되는 경우도 있다. 과보호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과보호하는 것은 그들의 기본적인 욕구와 복지를 만족시키는 것을 넘어선 영역에 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말하고, 아이들을 위해서 부모가 선택을 하고, 아이들의 문제를 부모가 풀어버린다. 이 행동으로 인해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일을 해결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개인의 능력을 발전시킬 기회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과보호하는 부모는 아이들에게 “하지 마, 다친다.” “친구네 집에서 자는 것은 위험해.” “함부로 여행 가지 마라.”와 같은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안된다는 말만 골라 한다. 논리적으로, 이런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우리의 아이들의 두려움을 내면에 남기고, 세상은 위험하다는 섣부른 선입견만을 심어줄 수도 있다.

반면에,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고, 내면화할 수 있는 분명한 규율이나 제한을 걸어두지 않는, 너무나도 포용적인 부모들도 있다. 이 경우, 아이들은 이 규율을 지키지 않음으로서, 자신들에게 해가 될 수 있는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며, 훈육의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아이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어떤 의무나 책임도 부과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 “제대로 하지 않는”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라고 말할 뿐이다.

이것은 과보호를 행하는 부모들의 잘못된 믿음이다. 과보호를 통해 아이들의 자아 존중감을 지킨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이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보호에 의한 결과는 무엇일까?

두려워하는 아이

납득이 가는 결말 중 하나이다. 만일 아이들에게 무조건 ‘바깥 세상은 위험하다’라고만 강조한다면, 아이들이 원하건 원치 않건, 아이들은 세상 속에서 ;일어날 지 모르는’ 두려움을 안고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또한, 만일 아이들이 전혀 접해보지 못한 도구를 만지게 되거나 상황을 접하게 된다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채 피하게만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매번 도와달라고 의존하게 될 수도 있다.

의존적인 아이

위의 문단에서 언급했듯이, 아이들에게 스스로 선택하는 능력을 길러주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주지 않는다면, 만일 그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면, 쭉 누군가에게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 말인즉, 자신의 자아 존중감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지 못한다고 믿게 된다면, 자신은 무의미한 인간이고,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필요하다고 계속 생각하게 될 것이다.

좌절에 대한 낮은 수용력과 인내력

아이들의 부모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항상 꾸준히 줌으로서, 자신들이 무언가가 없어서 겪는 아픔이나, 실망감에 대해 전혀 내성을 주지 않았다. 이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거나, 상황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 생기는 일에 대한 내성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부모라는 이름의 보호막 속에서, 과보호를 받은 아이들은, 자신들의 부모를,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항상 갖다주는 일종의 하인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세상이 이 아이들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줄 것이고, 결국에는 한번쯤은 다치고, 실망하고, 좌절할 일이 생길 것임을 스스로 배우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이 좌절과 실망에 대해, 아이는 분노나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개인적인 능력의 발전 저해

만일 아이들에게 배우기 위한 실수를 허용하지 않고, 무조건 해주기만 하면, 아이들의 배움의 능력을 저해하게 될 것이다.

만일 아이가 추락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그들은 다시 일어나는 법도 배우지 못한다. 인간은 자신들의 행동의,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여러 결과에 의해 배우고, 그로 인해 인간은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 극복하는 경험을 할 필요도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인간이 배우는 것에선, 인간은 또한 무언가를 미처 배우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긍정적인 일이다. 만일 자신이 과보호를 받은 채 자랐다면, 자신을 인간으로서 다시금, 스스로를 교육하는 것은 자신의 의무이다.

만일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부모라면, 아직 아이의 과보호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게 할 기회가 있다. 만일 당신의 아이들이 자연스럽고, 자주적이고, 행복한 인간으로 자라길 바란다면, 과보호를 부디 피하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