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모든 것을 알아보자

2019-09-14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은 출판하는 책마다 거의 모두 공권력과의 마찰을 빚었다. 그녀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가진 기자였고 중요한 역사적 사건 뒤에 숨겨진 인간의 이야기를 기록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이제부터 그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대부분의 사람은 2015년 그녀가 노벨 문학상을 받기 전까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조사를 바탕으로 한 비소설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기자는 그녀가 최초이다.

그녀 이전의 모든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시인, 소설가뿐이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작품은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의 영감을 받은 것이다. 그녀는 소비에트와 그녀의 조국  벨라루스의 현실을 그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역사적 사건과 사실 만을 담담하게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 속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의 역사 또한 그려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그녀의 저서 중 가장 유명한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20개국의 언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하지만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조국에서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정부 금지 도서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 만으로 이 현대 작가의 작품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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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울림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슈타니슬라프라는 우크라이나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벨라루스 군인인 그녀의 아버지가 임시로 해당 지역에 머물렀을 때 태어났다. 알렉시예비치는 어린 시절과 성인 된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슈타니슬라프에서 살았다.

슈타니슬라프는 그 자체로 불안정한 지역이었다. 이곳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우크라이나 서부, 폴란드, 소비에트 연방, 독일,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벨라루스의 일부로 취급된 지역이었다. 현재 슈타니슬라프는 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그 옛 마을의 이름은 이바노프란킵스크라고 불린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1948년 5월 31일에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시골 선생님이었고 그녀의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벨라루스 군인임과 동시에 선생님이었다). 정치적 불안정성은 그녀의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매우 큰 흔적을 남겼다. 성인이 된 그녀는 벨라루스 국립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대담한 기자 생활

유명한 소련 작가 알레스 아다모비치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게 가장 큰 영감이 되어준 사람 중 하나이다. 그는 “소설-증거”, “집단 소설”, “서사 코러스” 또는 “소설-오라토리오”라고 불리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낸 작가 중 한 명이다. 이 장르는 저널리즘과 문학의 결합 버전이다.

신문사에서 근무하던 알레시예비치는 좀 더 깊숙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칠 줄 모르는 여행가였고 커다란 역사적 사건 생존자들의 증언을 듣기 위해 그곳이 어디건 마다하지 않고 다녔다. 그것이 바로 그녀가 놀라운 보고서를 쓰기 시작한 시점이다.

1985년 그녀는 첫 저서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출간했다. 이것은 세계 2차 대전을 살아남은 여성들의 인터뷰가 담긴 책이다. 이 책이 출판될 당시에 그녀가 근무하던 신문사는 그녀를 해고했고 소비에트의 국가적 영광을 더럽혔다고 비판했다.

용감한 여성

1989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500번의 인터뷰 이후 아연 소년들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녀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소비에트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할 당시 참여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이 책에서 인권 유린의 현장을 다뤘다. 그것으로 인해 국가는 그녀에게 법원 출석을 명령했다.

소비에트 연맹을 비판한 그녀는 1991년 정치적 망명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 그녀는 여러 유럽 국가들을 떠돌며 살게 되었다.

1997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라는 책이 출간되었고, 이 책은 그녀의 최고 작품이 되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체르노빌 핵 재앙 피해자들의 증언을 공유했다. 그녀는 대략 10년에 걸쳐 이 책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했다.

그녀의 철저한 조사로 핵 재앙이 일어났을 당시 공권력이 저지른 몇 가지의 심각한 실수들이 수면 위에 드러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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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실망과 영광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글은 인간의 이야기와 그 영향을 다룬다. 그녀의 글은 매우 감동적인데 그 이유는 그녀가 위대한 역사적 순간의 심오한 역설을 이야기할 줄 알기 때문이다.

특히 소비에트 연방과 관련된 것들은 더욱더 그러하다.

이러한 사건들은 직접적으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녀 자신이 전쟁과 소용돌이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어린 소녀였을 때 그녀의 부모가 전쟁을 피해 피난을 갔고 성인이 되어 그녀는 체르노빌 대참사를 경험했다.

그로 인해 그녀의 어머니는 눈이 멀었고, 자매는 사망했다. 그녀 역시 추방의 슬픔과 다시는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다양한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최초의 (그리고 아직까지 유일한) 비소설 작가로서 노벨상을 받은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현재까지도 그녀는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한 글을 쓰며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Ánjel, M. (2015). Sobre Svetlana Alexievich. Antes de todo, la memoria (O de cómo una periodista rusa (¿ucraniana?) atrapa lo que no se quiere decir y es imposible de olvidar). Comunicación, (33), 8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