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론의 아버지’, 쇠렌 키르케고르의 생애

2019-11-04
쇠렌 키르케고르의 작품은 삶의 본질인 사랑과 믿음이라는 이차원적인 기본에 기반으로 하고 있다

사람들은 쇠렌 키르케고르가 그의 마지막 날까지 레기네 올센을 사랑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키르케고르의 삶은 철학과 기독교 신앙 연구에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덴마크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키르케고르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없는 고통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 덕분에 놀라운 업적을 쌓을 수 있었다.

키르케고르의 작품은 주로 신앙을 기반으로 한다. 그에 따르면, 신앙을 통해서만 절망의 시기에 구원과 균형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이 관점은 헤겔의 이상주의에 대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덴마크 철학자인 키르케고르는 종교 기관에 대한 비판의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종교기관이 위선적이라고 말했다.

그가 한평생에 걸쳐 다듬어온 이원론은 그의 저서인 ‘두려움과 떨림’, ‘철학적 단편’ 및 ‘유혹자의 일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신학에 자신을 헌신하는 것과 반대되는 ‘사랑‘,’고난’ 그리고 ‘불가능한 사랑’은 철학과 가장 맞아떨어지면서도 흥미로운 소재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의 힘든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덴마크 교회는 신은 선행에 보상해주는 합리적인 존재라고 말하지만, 키르케고르의 신은 ‘헌신’을 좋아하는 대신 두려워한다. 그의 철학은 20세기의 실존주의의 기초를 다졌다. 그는 인간의 주관성을 정의했으며, 장 폴 사르트르, 프리드리히 니체 및 알베르 카뮈와 같은 다른 큰 사상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열정을 잃는 것보다 열정 속에서 헤매는 것이 낫다.

– 쇠렌 키르케고르 –

쇠렌 키르케고르의 옆모습 그림
쇠렌 키르케고르의 생애

쇠렌 키르케고르는 1813년 코펜하겐에 위치한 부유한 가정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보수적인 면모를 지닌 매우 독실한 양털 상인이었다. 그의 어머니 쇠렌다테르 키르케고르는 그의 아버지의 어린 시녀였고, 쇠렌을 임신하게 된다. 이 사실은 쇠렌 자신이 죄의 산물인 것처럼 느끼게 했다.

어린 쇠렌은 시민 윤리 학교에 마치고, 코펜하겐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그는 주로 철학과 문학에 관심이 있었다는 점을 주목해야한다.

그의 유년 시절에 그의 인생에 큰 사건이 찾아온다. 그는 그가 대학을 마치고 약혼한 15세의 레기네 올센과 교재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1838년 임종 직전에 쇠렌에게 목사가 되어 그의 인생을 신을 위해 보내면서, 신학을 공부할 것을 약속해달라고 했다.

그 약속의 무게는 당연히 그의 애정 생활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레기네와의 약혼을 파하고 베를린으로 오게 된다. 그 후 10년 동안 그는 자기 생애에서 가장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게 된다.

사랑, 죄책감, 고통

1843년에 6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중 한편이 ‘두려움과 떨림‘이다. 그는 이 저서를 통해 레기네에 대해 자세한 묘사를 하고 있으며,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이 주제는 지속된다. 이 저서에서 그는 자신의 종교에 대한 죄책감, 고통, 헌신을 탐구한다.

그리고 그해 그는 코펜하겐으로 돌아와 레기네가 프레드릭 슐레겔과 결혼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레기네 올센의 결혼으로 인해 그에게 두 번째 기회란 아예 사라지게 된 것이다.

쇠렌 키르케고르 뒷모습을 담은 그림

그의 가장 저명한 저서 중 ‘철학적 단편’, ‘불안의 개념’, ‘인생의 길의 여러 단계’는 역경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이 경험하는 생각과 현실에 관해 이야기한다.

쇠렌 키르케고르와 그의 동생 피터는 비극으로 가득한 가족으로부터 유일한 생존자가 되어갔다. 그의 아버지는 항상 그들이 저주받았다고 상기시키곤 했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죄의 그늘에 있었기에 젊은 나이에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예언’이 사실로 나타났다. 키르케고르는 4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죽음의 원인은 분명하지 않다. 그는 일종의 장애 및 그 외 많은 건강 문제로 고생했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그가 우리에게서 탁월한 문학적, 철학적 유산을 남기고 떠나는 것을 막아내진 못했다. 그리고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그가 떠나던 마지막 날들까지 그는 자신의 유서에 레기네를 포함 시키면서 우리에게 그녀에 대한 깊은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쇠렌 키르케고르의 유산

윌리엄 제임스는 종종 쇠렌 키르케고르의 말을 인용하는 것을 좋아했다. “인생은 오직 거꾸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며 살아가야 한다.” 그는 주관적인 견해를 가진 덴마크 철학자이자 신학자였다.

그는  인생이란 올바른 선택을 하는 법을 아는 것이라고 세상에 가르쳤다. 우리가 내리는 각각의 결정에 따라,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정의하고 우리가 남겨두고 가는 것을 정의한다. 또한, 키르케고르는 사람들에게 불안과 고통의 감각을 이해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이 삶의 일부이며 고통을 덜어주는 유일한 길은 ‘믿음’을 통해 가능하다고 한다.

편지위에 올려진 펜
필명과 실존주의

쇠렌 키르케고르는 빅토르 에레미타, 요한네스 데 실렌티오, 안티-클리마쿠스, 힐라리우스 북빈더 또는 비길리우스 하우프니엔시스와 같은 각기 다른 필명으로 그의 저서 대부분을 작업했다. 그는 이런 필명들을 매우 구체적인 목표하에 사용했다. 즉, 사고를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내기 위함으로 사용하였다.

그는 이런 전략을 ‘간접적인 의사소통’라고 부르며 정의했다. 그는 필명을 사용함으로써 다른 관점을 탐구할 수 있었다. 동시에 키르케고르의 목적 중 하나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존재의 세 가지 영역을 확립했다 :

  • 첫 번째는 심미적 영역이다. 즐거움, 쾌락주의 또는 허무주의에 기반한 삶의 방식이다.
  • 윤리적 영역은 개인이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이 영역에서는 선을 악으로부터 구별하고 그에 맞춰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 종교적 영역은 키르케고르의 계층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그것 안에서 인간은 신과 개인적인 관계를 형성하여 그들의 고귀한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불안’의 철학자, ‘아이러니’한 철학자

알베르 카뮈와 같은 위인들은 쇠렌 키르케고르를 ‘아이러니한 철학자’로 정의했다. 키르케고르는 모든 것을 뛰어넘는 믿음을 옹호했지만, 그는 항상 덴마크 교회를 비판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애정 생활을 거부했지만, 레기네에 대한 사랑을 절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작품 대부분의 뮤즈였다고 볼 수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는 항상 종교적 정신을 다듬을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심미적, 윤리적 영역에 갇혀있었다.

그의 사고를 정의해 주는 또 다른 측면에는 추후 카프카, 우나무노 또는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과 같은 다른 위대한 작가의 작품에 영감을 불어넣은 개념인 ‘불안’이 있다. 이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 감정이다. 이는 인생에서 더 많은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우리가 허공으로 자유롭게 뛰어들거나 한 걸음 물러서서 다른 해결책을 찾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고통의 대안은 항상 존재하지만, 고통 그 자체는 우리가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준다.

    • Garff, Joakim (2007) Søren Kierkegaard: A Biography.  Princeton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