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적 구식화, 소비자를 조종한다
1901년에 전구가 미국 캘리포니아의 리버모어라는 도시의 소방서에 설치가 되었다. 그 전구의 불을 켠 후 절대 끄지 않았다. 그 전구는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첫날처럼 여전히 빛나고 있다. 계획적 구식화, 오늘 소개할 용어인데, 이 전구가 그 개념을 잘 반영해준다.
이 특정의 전구가 뭐가 그리 특별한가? 사실은 특별한 것이 하나도 없다. 1881년에 에디슨이 발명한 것과 비슷한데, 후자는 수명이 1,500시간이었다. 100여 년이 넘은 그 전구는 조금 개선된 모델일 뿐이다. 문제는, 왜 초기의 기술이 시간의 시련을 더 성공적으로 이겨냈는가 하는 것이다. 현대의 미디어와 기술이 더 발달한 것을 생각하면, 논리적으로 보아서 오늘날 생산하는 전구가 더 나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반대가 아니라?
현대의 다른 기기들을 살펴보면 더 의문이 간다. 구형 TV들이 오늘날의 TV보다 수명이 길었다. 거의 모든 전자 가구들이 그렇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1924년에 봉인된 협정이 계획적 구식화를 전세계에 헌납한 것이다.
“과도와 낭비의 경제가 되는 것 외에도, 소비주의는 또한 그리고 똑같은 이유로 사기의 경제이다. 소비주의는 소비자의 정통한 결정이 아니라 소비자의 비합리성에 투기한다. 그것은 소비자의 이성을 일깨우는 것이 아니라 소지자의 감정에 투기한다.”
-Zygmunt Bauman-
계획적 구식화란 무엇인가?
이것은 상품의 유용한 유통기한을 인위적으로 계획적으로 제한하는 관행이다. 그 말은 제조업자들이 상품을 만들 때 특정 기간이 지나면 쓸모가 없어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상품들이 다르게 제조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소비주의를 높이기 위해서 이렇게 생산을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오래 가는 상품을 사면, 그 사람은 수년 동안 그 제품을 다시 살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반면에, 제품이 상대적으로 빨리 소모가 되면, 소비자는 자주 다시 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제조업자들에게는 더 많은 매출이 생긴다.
전구가 계획적 구식화의 유일한 예는 아니다. 나일론 스타킹이 또 한 예이다. 처음에는 수명이 1년이 넘었다. 요즘은, 스타킹을 두 번 이상 입는 여성이 거의 없다.
음모와 다른 유형의 구식화
1924년 크리스마스에 스위스의 제네바에 모인 영향력 있는 산업가 단체를 가리키는 많은 증거가 있다. 이 단체는 “포이보스 카르텔”이라고 알려졌다. 첫 협약 중의 하나는 10만 시간 이상 지속되는 전구 특허를 금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많은 다른 제품에 대해서 계획적 구식화를 부과하는 협정을 만들었다.
오늘날 계획적 구식화의 형태가 여기 저기에 널려 있다. 몇 예를 든다:
- 기능의 구식화 – 제품의 기능은 점점 향상되어서 소비자는 새로운 모델을 구매해야 한다.
- 품질 구식화 – 일정 시간이나 사용 후에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 호감도의 구식화 – 패션과 경향을 조작하여 제품이 호감도가 떨어지게 한다. 디자인이 개선되거나 자질 구레한 것들이 더 들어가서 소비자가 “업데이트”하도록 유도한다.
오늘날, 우리는 계획적 구식화를 감정과 크게 관련시킨다. 특히 기기에 관해서라면, 회사들은 계속 업데이트가 계속되도록 신중하게 계획한다. 그래서 크게 개선이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소비자는 최신 모델을 얻고 싶은 욕망이 생기도록.
재활용은 자유의 한 유형이다
이런 모든 소비 이면에는 높은 매출을 유지한다는 회사들의 최종 목표가 있다. 계획적 구식화는 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한 전략이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이제는 제품의 품질이나 유용성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계속 소비를 하려는 매우 강한 욕구만이 있을 뿐이다.
시장 조종의 한 형태였던 것이 이제는 소비자의 갈망으로 바뀐 것이다. 사람들은 계획적 구식화를 내재화해 온 셈이다.
중고 물품은 빨리 버리고 새것으로 대체한다. 이것은 소비자에게 만족감, 통제감, 그리고 심지어는 권력감까지 준다.
점점 분명해지는 조종의 유형에 직면하여, 재활용 유행이 등장했다. 이 접근 방법은 재사용의 문화를 일구려는 것이다. 목적은 재갈풀린 소비주의를 제한하는 것 뿐만 아니라 환경도 보존하려는 것이다.
결국, 재활용은 심리적 영향력도 있다. 재활용은 버리는 대신에 고치는 것에 집중하는 태도를 키워준다. 재활용은 또 물건들이 완전하지 않지만 그래도 유용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문제가 있는 것 같으면 버리는, 뭐라고 꼬집기 힘든 현실에도 불구하고, 재활용을 통해서 더 건설적이고 인간적인 자세를 유도할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