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적 폭력: 얕아 보이지만 깊은 상처
수동적 폭력 (Passive violence)은, 매우 역설적이고 모순된 개념이다. 폭력은 보통 ‘적극적’인 행동이라고 인식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수동성과 폭력은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목소리를 높이거나 상처를 주는 말을 굳이 사용하지 않고도, 우리를 상처입히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수동적인 폭력 의 피해자는, 애매모호하면서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미묘한 종류의 고통을 느낀다.
수동적 폭력, 또는 수동 공격성은 주변의 권위와의 갈등을 해소할 수 없거나, 여러 가지 불리한 상황 중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상황들로 인해 발생한다. 이 경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절망감과 무력감의 감정만이 남을 뿐이다 . 그러나 그 포기 속에는, 분노와 좌절로 가득하며, 결국 어떤 형태로건 그 분노와 좌절감은 표면으로 나타날 것이다.
매일의 일상 속의 수동적 폭력
수동적 폭력의 가장 분명한 예는 10대 아이들과 관련이 많다. 그들의 부모는 그들에게 방을 청소하라고 지시하지만, 아이들은 ‘좀 있다 할 거야!’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 후, 그들은 결코 청소하지 않는다.
어린 아이들에게도 일반적인 일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게 있을 때, 떼를 쓴다. 그리고 만일 부모가 아이의 생떼에 굴복하지 않으면, 그들 자신을 다치게 하기 위해, 몸을 거침없이 던져 버린다. 혹은, 나중에 그들은 비싼 꽃병을 “의도치 않게” 깨뜨려버린다.
성인들에게도 물론 수많은 수동적 폭력의 사례가 존재한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말을 해도, 그들은 ‘미안, 못 들었어.’라고 한 다. 또는 그들이 조언이나 제안을 한답시고, 간접적으로 비난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혹은, 그들이 차마 결정하기 힘든 난관들을 몇 가지 제시하고, 친절한 태도로 ‘자, 원하는 걸 골라봐.’라고 미소지으며 말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예시들이 있다.
수동적 폭력과 권위
일반적으로, 수동적 폭력은 역동성을 포함하는 상황에서 빈도가 증가한다. 공격적인 감정의 표현을 방해하거나 제한하는 힘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겉으로는 복종하는 척하며, 뒤에서는 소위 ‘호박씨를 까는 것이다.’
권위적인 모습의 사람들은, 종종 수동적인 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물론 부모도, 상사, 교사, 의사 등도 피해자일 수 있다. 때로는, 공식적으로는 권력의 위치를 유지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마치, 어떤 사람에 대한 극한적인 영향력을 보이듯이 말이다.
이러한 권위적인 모습이, 역설적으로 수동적인 폭력의 사례를 유발할 수도 있다. 그들은 계급적으로 자신들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에 대해 반응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마치, 사장이 매일 한 시간씩 더 일하면서 부하 직원의 가능여부를 신경쓰지 않으면서, 선심 쓰듯 말하듯이 말이다. 혹은, 연인이 자신이 직접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당신에게 무언가를 떠넘기는 것처럼 말이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수동적인 폭력은, 간접적이지만 죄책감을 유발하거나, 상대방을 은근히 부정하거나, 모욕하는 방법 등으로 사용된다. 때로는, 부드러운 말과 좋은 매너로 포장되기 때문에, 감지하기가 매우 어렵다. 의식하기조차 힘들다.
사회적 집단에서의 수동적 폭력의 효과
많은 수동적인 폭력 행동이 우리 사회에서 전파되고 양성된다. 예를 들어, 당신이 길가에서 노숙자가 돈을 요구하는 것을 마주칠 때처럼, 때때로 당신은 돕고 싶지 않거나 도움을 줄 수 없어도, 줘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돈을 받은 노숙자는 ‘신의 축복이 있길’이라고 말한다. 물론 정말로 신이 당신에게 축복을 줄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당신에게 주는 메시지, 혹은 립 서비스일수도 있다.
명백히 수동적이면서 폭력적인 행동에는, 같은 방식으로 보답하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사는, 마찬가지로 부하 직원들 에게 야근을 강요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한다. 권위주의적인 교사는, 공개적으로 또는 은연중에 아이의 나쁜 행동을 유발시킨다. 권위적인 부모는 문제 있는 아이들로 키울 수도 있다. 악질적인 정치인은, 자신이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변명하기 일쑤이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수동적 폭력에서 가장 해로운 점은, 그 폭력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의 혼란을 야기시키고, 쉽게 드러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청소년인 자녀가 부모인 당신에게 복종하지 않을 때, 이를 지적할 때, 아이는 ‘아, 한다니까!’로 짜증섞인 대답을 내뱉기 일쑤이다. 또, 직장의 사장이나 상사의 평가가 불공평하다고 말하면, 그는 아마도 훈계와 효율성에 관해 당신에게 변명 섞인 잔소리를 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연인은 당신이 바보인 것처럼 주변 사람들이 당신을 대우하고 있다고 말할 때, 그들도 피해자처럼 느껴지거나, 진심으로 놀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러한 교묘한 악순환을 끝내야만 한다. 우리는 이 악순환만 불러오는 폭력을 일으키거나, 혹은 공급하지 않도록, 내면과 외부의 갈등을 처리해야 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두번 생각하지 않고, 마음 속의 것을 내뱉으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자신의 의사 소통의 능력 활용하여, 분명하고 침착하게 향상시키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