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오트만: 파란 문신을 한, 두 번 잡힌 여자

2018-05-09

올리브 오트만 (Olive Oatman)은 턱에 파란색 문신이 새겨진, 신비한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야브파이 인디언에 의해 아이로 납치되었다가, 다시 모하브 인디언에 납치된 그녀는, 마침내 형제에 의해 구출되었다. 그녀는 삶의 일부를, 그녀 자신의 생존과 인간의 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보냈다.

어쩌면 당신은 이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수도 있다. 주인공의 고요한 얼굴이 우리를 끌어들인다.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눈, 그리고 그녀의 야생 부족민으로서의 문신은, 그녀의 전반적인 모습과 모순되어 있다. 그녀는 19세기의 멋지고 잘 교육받은 여인 이상의 존재이다.

올리브 오트만은, 그녀의 삶에 큰 흔적을 남긴, 두 가지 비극을 겪었다. 첫 번째는, 그녀는 야브파이 인디언의 공격으로 가족을 잃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그녀는 모하브 인디언에게 다시 납치당했다는 점이다.

올리브 오트만은, 그 시대의 평범한 여성상이 아니다. 그녀는 인생에서 큰 트라우마를 겪은 여자였다. 생존하기 위해, 그리고 모든 좌절과도 같은 운명에 적응하려고 노력한 사람은, 마치 그녀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녀는 살아 남았다. 확실히 말이다. 그녀의 훌륭한 삶은, [오트만 걸스 (1856)의 포로(The Captain of the Oatman Girls)]와, [푸른 문신(Blue Tattoo : Olive Oatman의 삶, Margot Miffin의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올리브의 삶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확실히 존재한다. 올리브 오트만은 모하비와 살 때처럼 결코 자유로운 삶을 살지 못했다. 그녀가 산 시대에서 거의 100년 후, 미국의 한 작은 도시가 그녀의 이름을 따서 이름지어졌다. 그것은 이 어린 소녀가,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살았던 곳이었으며, 흥미롭게도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했던 곳이었다.

올리브 오트만

올리브 오트만: 수년간의 포로 생활 및 자유로운 생활

우리는 1850년, 콜로라도의 건조하지만 장엄한 풍경 속으로 돌아왔다. 멀리, 외롭고 돌투성이이던 많은 길에서, 동물, 수레, 그리고 ‘신대륙’에 정착하기를 희망하는 정착민들의 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신대륙에는 이미 정통한 주인이 살고 있었다. 위대한 영예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이 이방인들에게 순순히 땅을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이러한 ‘정복자 이방인들’ 안에는 오트만 가족이 있었다. 그들은 영적 지도자인, 제임스 브류스터 목사의 광신도가 이끄는 모르몬 교도들이었다. 필연적으로, 그들을 재앙으로 이끈 원흉은, 그의 뻔뻔한, ‘앞으로 나아가자’라는 선구자적 정신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이 새로운 땅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고, 외부에서 전한 경고를 듣는 것도 거부했다. 그들의 목적은 너무 굳어 있었고, 그 신앙심도 너무나도 맹신적이어서, 이 땅에 이미 주인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 소유주인 민족은 매우 거칠고 폭력적인 원주민인, 야브파이 족이었다.

인디언들은 탐험대의 모든 개척자들을 거의 다 죽여버렸다. 그 후, 그들은 노예로서, 2명의 선구자 소녀를 데려오기로 했다: 바로 올리브 오트만(14세)과, 여동생 메리 앤 (8세)이었다.

두 사람이 이런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은 이후, 두 어린 소녀는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그들은 백인들을 멸시한 원주민들에 의해, 거의 1년간의 학대와 기아, 꾸준한 굴욕감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웃 부족에 의해, 이 두 소녀의 운명도 바뀌게 된다.

인디언

모하브 족과의 삶

그 이웃 부족은 모하브 족이었다. 그들은 교환을 하여, 소녀들을 구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 2명의 붙잡힌 소녀를 위해 몇 마리의 말을 교환했다. 거래가 성립되었을 때, 올리브와 그녀의 여동생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들이 받은 가난과 학대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말이다.

그들은 각기 다른 가족에 의해 입양되었다. 아름다움, 밀밭, 포플러 숲으로 가득한, 환영받는 땅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친절한 사람들과 매일 밤 잠을 잘 수 있었다.

지역 사회와의 연합을 보여주기 위해, 두 소녀는 전통적인 문신을 받아 새기게 되었다. 이 문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의 연합은 내세에서 보장받을 수 있었으며, 모하브 족과의 교제의 상징이자, 종교적 상징이었다.

이윽고, 몇 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다. 올리브는 부모의 상실을 슬퍼하면서도, 새 가족과 가까워졌다. 그러나, 그만큼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사람들은 굶주림을 겪고, 많은 아이들이 죽고 만, 몇 년 동안의 가뭄을 겪어야만 했다. 올리브도, 그녀의 여동생, 메리 앤도 가뭄과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올리브는 자신의 종교에 따라, 그녀를 묻어줄 수 있었다. 그녀는 올리브가 야생의 꽃을 심었던, 한 조각의 땅에 묻히게 되었다.

올리브 오트만의 보이지 않는 문신

포트 유마에서 온 전령이, 모하브 족의 마을에 도착했을 때, 올리브는 어느새 20세의 처녀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원주민의 부락에 백인 여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윽고 그녀의 귀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엄밀히는 이 어린 소녀는 모하비 족에게 포로로 잡혀 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모하브 족은 언제나 그녀가 원할 때마다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리브는 백인의 ‘문명‘이라고 부른 곳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고, 돌아갈 이유도 없었다. 그녀의 인생은 좋았고, 그녀는 행복했다.

다만, 그녀는 돌아와줄 것을 원하는 사람이 ‘로렌스’라는 것을 알았을 때, 결국 마음을 바꿨다. 로렌스는 그녀가 아직 원주민이 되기 전, 야브파이 족에 의한 잔인한 공격에서 죽었다고 여겨졌던, 그녀의 남동생이었다. 그녀는 모하비를 떠나, 동생과 다시 살기로 결정했다. 물론 그것은 어려운 결정이었고, 그녀는 1년 후에 후회하게 된다.

올리브 오트만

파란 문신을 한 여자

그래서, 그녀는 ‘파란 문신을 한 백인 여자’가 되었다. 그녀가 입은 빅토리아 풍의 드레스도, 그녀의 턱에 있는 문신을 숨길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그녀의 팔다리에도 문신이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다시 콜로라도 주의 태양을 볼 수 없었다.

문명 사회로 돌아온 후, 올리브 오트만에게는 모든 것이 아주 빨리 움직이는 듯이 여겨졌다. 그녀의 이야기에 대한 책이 쓰여졌다. 그녀는 그녀의 이야기가 쓰인 책의 로열티의 일부를 제안받았다. 그 돈은 대학에서 공부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고, 로렌스의 훈련비로도 지불되었다. 나중에, 그녀는 미국 전역에서, 그녀가 원주민 부족에서 겪인 일을 바탕으로, 강의를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일생을 담은 책이 담고 있는 내용과, 사람들이 강의에서 듣기를 기대했던 것은, 바로 원주민들의 야만성과, 그들의 무지하고 비인간적인 일화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런 압박감으로 인해그녀의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고, 그녀를 맞이한 마을에서, 그녀는 생존을 위해 거짓말을 해야 했다.

1865 년에 그녀는 부유한 목장주와 결혼했다. 그는 단지, 그녀의 과거를 잊을 것을 요구받았다. 강의를 끝내고, 그 문신을 덮을 수있는 베일을 착용할 것을 요구받았다. 그녀는 이를 허락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아마도 이 시기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최악의 구속이 된 기간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새로운 문신을 새기고야 말았다: 모하비 족과의 시간, 그 동안의 고통과 기억. 그녀가 자유롭고 행복했을 때… 그 시기를 담은 문신을 새기게 되었다.

올리브 오트만은, 결국 자신의 삶의 많은 시간을, 두통과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캐나다 클리닉에도 들러야만 했다. 그들은 그녀의 다른 가족인, 모하비 족을 그리워하는 그녀를 치료하려고 했다. 결국, 그녀는 65세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