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서 증오로 – 정말로 그 길 뿐인가?

· 2017-07-03

우리는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연인이 갑자기 헤어져, 서로의 기억의 한 조각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곤 한다.

지금 여기서는 불화를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번 사랑을 나눈 남녀가 최악의 적으로 돌아서는 경우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끔 오랜 세월이 지날 때까지는 이렇게까지 추락하진 않지만, 연인의 관계는 틀어져버리곤 한다.

하지만 이 변화가 갑자기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어제는 열렬히 사랑했던 연인이 오늘은 갑자기 서로를 미워한다. 이때 우리는 묻고 싶다: 정말로 사랑과 증오밖에 방법이 없던 걸까?

사랑과 증오

증오와 한꺼풀 차이나는 사랑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마 상대가 우리가 필요할 때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대를 미워할 수는 있다. 혹은 그들이 우리가 원했던 우리의 노력에 대해 감사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우리는 또한 상대가 우리를 이해하지 않을 때, 혹은 우리가 원하는 말을 듣지 못해서 상대를 약간 미워할 수도 있다.

이 작은 증오의 조각은 일반적으로는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 증오의 조각은 급격히 나타난 만큼 급격히 사라져간다. 그리고 작은 조각을 남기지만 일반적으로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쉽게 대응할 수 있으며 애정은 여전히 유지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결과가 긍정적이지 않은 상황들 또한 존재한다. 가끔은 이 작은 일화들이 자라나 엄청난 증오의 가시덤불로 변할 수도 있다.

어쩌면 티끌 모아서 대산이 되는 속담의 부정적인 경우일 수도 있다.

즉 이런 것이다: 사랑과 증오는 절대로 반대인 것만은 아니다.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다; 그것은 무관심이다. 사랑에는 미세한 증오가 포함된 만큼, 증오에도 사랑의 조각이 스며들어있다.

사랑과 증오의 모순

사랑에서 증오로 변하는 과정은 크게 2개의 단계가 존재한다.

길고 긴,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견디는 긴 휴식기간을 거쳐, 사람이 깨어났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상대에게 매우 심각한 어떤 짓을 저질러 그 사람의 감정이 사랑에서 억누를 수 없는 파괴적인 욕망으로 변한 경우이다.

이 상황은 ‘인내심이나 좌절에 대한 내성이 낮은’ 사람, 혹은 나르시시즘이 심한 사람에게 좀 더 흔한 일이다. 만일 자신의 감정의 균형을 유지할 수단이 없다면, 이 좌절의 감정을, 지금 겪는 아픔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려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미워한다. 그들이 우리의 약점을 들춰냈으니까. 우리의 불안함과 의존성도 드러냈으니까. 나르시시즘은 다른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비난과 자기주장을 구분하지 못한다. 만일 상대가 자신의 공간, 인식, 독립성 등을 주장한다면, 나르시스트들은 그것을 비난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연인이 자신의 법칙을 따라야 하며, 어떤 자유를 위한 행동조차도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증오는 다른 사람과의 강한 유대를 만들어낸다. 사실, 사랑보다는 유대의 폭이 좁긴 하지만. 가장 최악의 경우, 상대방을 향한 무시의 끈으로 이어질 경우, 더욱 심각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어느 쪽도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삶이란 피해를 주는 사냥이자, 피해를 받기 싫은 사냥감들의 추격전이 될 것이다. 자신의 상황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 극적인 연결고리는 극히 위험하다. 누가 승리를 거두건, 결과적으로는 패배하는 것과 같다. 이 순환을 풀 수는 없게 된다.

유일한 대안은 상대에 대한 미련을, 참을 수 없는 감옥과도 같은 그 증오를, 상처만 남기는 증오를 버리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