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투 더 와일드: 물질적인 것을 제거한다

2018-12-31

모든 것을 가졌는데 왜 거지처럼 사는 삶을 선택할까? 왜 모든 호사와 안락을 포기하고 야만인처럼 살기를 선택할까? 아마도, 가장 엄격한 의미에서, 그냥 살고싶은 것이리라. 살고, 생존하기 위해서 먹고, 자연의 일부분인 느낌을 갖고, 사회가 성취한 모든 것을 잊고, 그리고 자유로워진다… 인투 더 와일드'(Into the Wild), 바로 2007년의 Sean Penn 감독의 영화가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인투 더 와일드: 물질적인 것을 제거한다

인투 더 와일드: 논쟁

Jon Krakauer의 책이 모태가 되서 이 영화가 나왔는데, 그 소설에서는 진짜 이야기, Christopher McCandless의 실화가 나온다.

버지니아에서 태어났고, 상위층에 속하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부모와 함께 유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모범적인 가족의 이면에는 이런 저런 토론이 종종 일어났다. McCandless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하는 젊은이였다.

인류학과 역사를 공부하고 졸업했고, 독서를 좋아했다.

그가 좋아하는 소설가는 톨스토이와 소로이다. 그들에게서 영감을 얻은 그는 인생의 가장 과격한 결단을 내리게 된다.

껍데기의 세상 속에 살기가 신물이 나고, 항상 뭘 “해야하는” 일이 진저리가 났다.

절대적으로 물질적인 세상 속에서 살고, 그리고 규칙을 지켜야 하는 것도 신물이 났다.

그런 그가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떠났다. 가진 모든 것을 자선 단체에 기부하고, 가방 하나와 몇 가지를 챙기고는 홀로 여행을 시작했다.

인투 더 와일드: 탄생

McCandless는 절대적인 자유의 상태를 경험하고 싶었다. 자연과 하나가 되고 싶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그게 자신이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삶과 우리의 야성에 대한 이 로맨틱한 꿈은 McCandless를 일약 전설적인 영웅으로 만들었고, 20세기의 미국적인 민속 전통을 부채질 하였다. 그런데, 전설의 이면에는, 늘 더 어두운 면의 가능성이 있다. 이 현대적 영웅과 그의 걸출한 행적의 신비를 깨버린 것은 바로 그의 수많은 추종자들에게서 나왔다.

이 영화는 여러 전설로 이 등장 인물의 가장 달콤한 버젼을 제시하고, 그의 동생과 자신이 나레이션을 했다. 박대하는 곳을 지나고 환상적인 길을 가고, 또한 큰 도시의 가장 어두운 유혹 속으로도 빠진다….

“내가 숲으로 간 것은 이유가 있었다. 신중하게 살고, 삶의 필요한 사실만 직면하고, 자연이 가르쳐 주는 것을 배울 수 없나 해서, 내가 죽을 때가 되서 내가 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가 되지나 않을까 해서.”

-Henry David Thoreau-

이 영화는 과연 애착을 버릴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책임과 의무가 가득한 세상에서 정말 자유로울 수가 있을까? 사회적 정치적 언론적 자유를 얘기하지만, 분명히 제한되어 있다. 그런 제한이 있을 진대, 진정 자유를 말할 수 있을까?

자유는 엄격한 의미에서는 제한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갖고있는 자유의 개념은 늘 적응이 되어왔다. 자유를 생각할 때는, 뭔가에 의지하는 자유를 생각한다. 예를 들면, 사회적 자유는 법과 도덕성에 의존하고 그의 제한을 받는다.

McCandless는 자신이 한 번 도 자유로워 본 적이 없고, 자신이 한 것을 토대로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기대를 한다. 사회는 우리가 규칙을 따르도록 강요한다. 공부하고, 일하고, 번 돈으로 집을 사고…. 모든 것이 물질적인 것과 연관이 되어있다.

사람들은 정말로 배우기 보다는 지위, 힘, “어떤 사람”이라는 상징을 갖고 대학을 졸업한다.  동시에, 학사 학위는 직장으로의 문을 열어주고, 그래서 돈을 벌고, 물질적인 것을 살 수가 있고, 그러면 “행복”해진다.

인투 더 와일드: 이상향의 기원

McCandless는 학습과 공부를 즐겼지만, 그걸 목표나 소지하고 싶은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다. 학사 학위는 그에게 별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가족은 그것을 커다른 성취로, “착한 아들”이라면 응당 선망할 어떤 것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런데, McCandless로서는, 그것이 자유의 추구에 대한 걸림돌일 뿐이었다.

이 젊은이는 자유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자기 자신의 이상향을 실천하기로 마음 먹었다. 노숙이나 먹기 위해서 사냥을 하는 것 같은 극단적인 상태를 직면하는 걸 꺼려하지 않았다. 자연(과 그 규칙)에 따라 사는 동물들 처럼 살고 싶었다. 최대한의 자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일 뿐인 것, 즉 유토피아를 경험하고 싶었다. McCandless에게는 그것이 성취 가능한 목표였다.

영화를 통하여 자유를 얻으려는 실험을 보여준다

인투 더 와일드: 신화로의 변신

그의 여행이 마치 영웅의 여정인 듯이, 이 영화는 등장인물의 진화와 자유를 향한 추구를 보여준다. McCandless의 여정을 아는 사람들은 그 전설에 기름을 부었고, 조금씩 전설로 변신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뭔가 매우 복잡하게 보이는 것이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기술의 발달이 우리의 삶을 압도하여, 전설이란 것이 저 먼 옛날 이야기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영웅은 보통 여행을 시작하는 부름을 받는다. 묘기를 부리고, 어느 시점에서는, 역경이 너무 강해서 포기할까 걱정을 하기도 한다. 나중에는, 뭔가 (초자연적인 혹은 다른)가 일어나서 자신의 믿음을 회복하고 여정을 계속한다.

McCandless는 자신의 여행으로 일종의 현대 영웅, 전설에 버금가는 가치있는 인물이 되었다. 확실히, 그의 성취는 과장, 왜곡, 심지어는 비하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McCandless를 신화로 만들어버렸다. 모두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고, 그가 죽었을 때는, 그의 이야기는 탄력을 받게 되었다. 그의 죽음은 이 신화의 탄생에 크게 기여를 했다.

이 영화는 실화 소설에 근거한 영화이다

이상을 위한 싸움

McCandless는 이상향으로 변했다. 이상을 위한 싸움을 구현했다. 인투 더 와일드는 희망, 가장 순수한 상태의 자연의 향유, 역경 극복, 그리고 무엇 보다도 휴식에 관한 것이다. 일상으로부터의 휴식, 혹은 우리가 있는 곳, 우리가 가진 것으로부터의 휴식을 말한다. 물질적인 것이 지배하고, 우리가 죽을 운명이란 것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삶으로부터의 휴식을 말한다.

무시무시한 장소와 아름다운 장소

McCandless는 이 진수를 포착하는 방법을 알았다.

그저 살고, 그 이외에는 하지 않고, 자연이 주는 것을 즐기고, 그게 어둡고 힘들어진다 하더라도.

이 영화는 그 도시를 그가 속하지 않는 곳이라는 의미의 “무시무시한 장소”로 제시한다.

규칙을 따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적인 불행 속에 살도록 저주받는 곳이다.

이 영화는 속박하는 세상에서 깨어나라고 경고한다

반면에, 자연은 아름다운 곳이다. 그 곳은 물질적인 것을 포기한 사람들이 다른 어떤 것도 필요치 않는 목가적인 곳이다.

그 도시 속에서 McCandless가 한 피난처로 가서는, 편안하게 잘 침대를 찾는데 결국 거절을 당한다.

혹독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 도시의 어두운 부분에 사는 것보다는 그곳이 더 나았다. 그런데, 거기에는 그의 자리가 없었고, 그의 이상향도 없었다.

이 곳에서는 모든 것을 으로 사야 하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확실히 임무를 완수한다. 이 영화는 우리를 속박하는 세상으로부터 깨어나게, 일상과 안전 지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데 그럭저럭 성공한다.

우리가 자유를 찾게 격려하기 까지 한다!

“자유와 단순한 아름다움은 너무 좋아서 지나칠 수가 없다.”

-Christopher McCandless, 영화 인투 더 와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