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여성의 안에는 늑대가 있다

모든 여성의 안에는 늑대가 있다

마지막 업데이트: 31 12월, 2017

미국의 작가, 클라리사 에스테스가 쓴,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성 ]이라는 책은, 새로운 여성의 유형: 바로 야생의 여성의 유형을 대중에게 보여준 듯 보인다. 이 책은 18 개 언어로 번역되어, 여러 권의 판본 및 재판본을 내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책의 글에서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페미니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한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일 것이다. 이 책의 기본 전제는, 바로 모든 여성의 안에는 사나운 영혼, 늑대의 영혼이 있다는 것이다.

이 정신은 여자의 자연스러운 태도의 자발성에서 태어난, 강력한 생명력과 에너지를 보호한다. 이 여성은 또한 치열하다. 그녀는 육식 동물과 같은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알고 있고, 자신의 경험부족과 고지식함을 극복한다. 늑대는 강하고, 오랜 시간 동안 쉬어 왔더라도,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법을 알고 있다.

늑대는 인간에게 크게 오해받고, 낙인 찍힌 동물이다. 늑대의 사나운 면은, 말 그대로의 순수한 사나움이 아니다. 늑대는 자신의 무리의 여족장이 되는 법을 알고 있으며, 다른 늑대들을 인도하는 방법도 알고 있다. 그녀는 두려움이나 불안함을 느끼지 않고,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배우며, 자신을 돌볼 수있는 방법도 잘 알고 있다.

늑대와 현대 여성

현대의 여성들은 놀라운 업적을 이뤄 냈고, 지도자의 위치에 도달했지만, 그들은 야생의 늑대의 본질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야생의 여성은 현대 여성들이 광고하는 것처럼, 남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떤 길을 갈 건지도 말하지 않는다. 야생의 여성은 창의적이고, 열정적이며, 본능적이고 현명한 사람이다.

모든 여성의 안에는 늑대가 있다

여자가 되었다는 것은 특권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우리 문화는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묻어버린다. 때로는 여자들 자신들이 이를 묻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우리의 문명의 기원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처음에는 확립된 혈통은 여성을 통해서 전해졌다. 옛날에는 아버지의 모습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의 집단은 어머니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인간 사회는 바로 여성들의 중심에서 시작된 것이다.

인류의 새벽에, ‘야생의 여성’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오늘날, 여성성은 평가 절하되어 있다. 많은 여성들이, 남성을 모방하여 자립권을 얻으려고 하지만, 야생의 여성은 남성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여성성을 높이 평가하는, 사납고 결정적인 여자이다.

특히, 야생의 여성은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지배하게 두지 않는다. 그녀는 혼자서 또는 연인과 함께 춤을 춘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을 포용하고 들어준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즐겁고, 자신의 삶이 자신의 본능과 욕망에 연결되어 있다. 그녀는 누군가가 그녀에게 체중을 줄이거나, 아이를 가질 때, 다른 사람들의 승인을 얻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멋대로 결정하게 두지 않는다.

늑대의 도전

우리 문화는 “좋은 여자”와 “나쁜 여자”에 대한 고정 관념을 갖고 있다. 좋은 여자는 존경할 만 하며,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모범적이고 미덕이 가득한 여자라고 생각다. 반면, 나쁜 여자는 그녀가 스스로 발전하고 발전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사회의 안정성을 해한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많은 사회에서 이런 여성을 “쌍년”, “창녀”, 심지어 늑대라고 부르며 모욕한다. 진취적인 여성들은 항상 뜨거운 감자가 된다. 항상 스캔들을 일으킨다. 재미있게도, “puta”(스페인어로 ‘창녀’) 란 단어는 “buzda”라는 단어에서 유래하는데, 이 단어는 지혜를 뜻한다.

여자와 늑대

세계의 수도라고 불리던 로마는, 로물루스와 레무스에 의해 설립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군신인 아버지에 의해 버려진 이 소년들은, 어느 암늑대 덕분에 살아 남았다. 고대 로마에서는 매춘부가 결코 여성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정치, 점성술, 수학 등을 교육받았다. 그들은 성을 줄 뿐만 아니라, 다재다능한 동료이기도 했다. 그들은 훌륭한 대화자였다. 이  개념은 일본의 게이샤나 한국의 기생의 개념과 비슷했다. 이것은 야생의 여성이 매춘 여성과 비슷하다는 생각을하게 할 수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모든 여성의 안에는 늑대가 있다

야생의 여성은 결코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는 제안한다. 그녀는 무언가를 원하지 않고, 오히려 준다. 그런데도, 그녀는 길들여지고 복종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이유는, 여성이 복종하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목적지를 고를 필요없이, 자신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자신에게만 속한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얼마든지 다른 일에 헌신할 수 있다. 그녀는 자유로우며, 그 때문에 다른 사람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야생의 여성은 좋은 친구이다. 그녀는 충성스럽고 보호 본능이 강하다. 그녀는 또한 매우 영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는 한달 한달의 임시적인 목표가 아니라, 자신의 보편적 가치를 향한 삶을 지향한다. 그녀는 자유로운 표현의 가장 좋은 수단이으로 예술을 활용한다. 그녀는 자기 탐미적이거나 자기 중심적이지 않지만, 자신을 사랑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야생의 암늑대가 모든 여성 안에 남아있다는 것이 . 그렇기에 여자들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이 일어서기 위한 용기를 모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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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inkola. Estes, Clarissa (2009) Mujeres que corren con lobos. Madrid: Zeta Bolsi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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