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작가, 오라시오 키로가는 1937년, 자살하기 전까지 정글에서 영감을 받은 단편 소설을 썼으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라틴 아메리카 작가로 알려져 있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번 글을 계속 읽어보자.
마지막 업데이트: 27 7월, 2025
현재 가장 위대한 라틴 아메리카 작가로 알려진 오라시오 키로가를 알고 있는가? 사실, 이 우루과이 작가는 정글에서 영감을 받은 흥미로운 단편 소설을 썼다. 1878년 12월 31일, 우루과이 살토에서 태어난 오라시오 키로가 작가는 1901년, 처음으로 시와 산문을 엮은 ‘산호초’를 출간했다. 이후 30년 동안 키로가는 200여편의 어두운 단편을 남겼다.
정글 생활에서 큰 영감을 얻었던 키로가는 심각한 우울증과 말기 암으로 투병하던 중 1937년 2월 19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자살했다.
믿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이 위대한우루과이 작가는 태어나면서부터 암울한 일을 겪었다. 부친이 키로가가 태어난 지 몇 달 안 됐을 때 사냥 중 실수로 자신을 쏴서 죽은 것처럼 평생 여러 가지 비극을 겪어야 했고 이러한 경험은 키로가의 후기 작품에 많이 반영되어 있다.
어린 키로가의 가족은 여러 번 이사를 다녔고 나중에 우루과이의 수도인 몬테비데오에 정착했다. 키로가는 몬테비데오에 있는 대학에 다니며문학에관심을 두었고 단편 소설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키로가는 고향으로 돌아와 문학 잡지와 사이클링 클럽을 설립했다. 그러나 1899년, 계부가 자살하면서 또 다시 비극을 겪었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 키로가는 4개월간 파리를 여행했다.
“자신과 비슷한 소수의 등장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써야만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
어린 시절 유럽을 여행한 후 키로가는 아르헨티나에서 대부분의 삶을 보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사는 동안 그는 밀림 지역인 미시오네스의 산 이그나시오를 자주 여행했고 이때 작품의 소재 대부분을 얻었다. 또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가끔 다른 일을 하기도 했다.
1900년, 유럽에서 돌아온 키로가는 다시 몬테비데오에 정착했고 이듬해 그의 첫 번째 문집인 ‘산호초’가 출간한다. 시, 시적 산문, 그리고 단편은 신인 작가였기에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게다가 사랑하는 두 형제가 장티푸스에 걸려 죽는 비극을 시작으로 키로가는 이듬해 결투 직전 권총을 확인하던 중 실수로 친구를 쏴 죽이기도 한다. 잠시 수감된 후 키로가는 모든 혐의에서 풀려났지만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루과이를 떠나 아르헨티나로 향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서의 삶도 비극적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정착하여 교사로 일하며 계속 글을 썼는데 1904년, ‘타인의 범죄,’ 1907년, ‘깃털 베개’를 출간했다. 이 작품은 모두 에드거 앨런 포의 작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며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키로가는 자주 근처 정글을 방문했다. 1908년에는 미시오네스 근처 정글 지방의 농장으로 이사하여 정글 생활을 소재로 한 작품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직간접적으로 어두운 관점과 은유적 공포로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또한 교편을 놓지 않았던 키로가는 1909년, 제자인 아나 마리아 시레스와 결혼하여 정글 농장에서 생활했고 두 명의 자녀도 키웠다. 그러나 문명과 떨어진 위험한 삶이 버거웠던 아나는1915년 12월에 음독 자살을 한다. 이런 비극이 있은 후, 키로가는 자녀들과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와 우루과이 영사관에서 근무했다.
이때 쓴 작품은 유명세를 타게 했고 현대 라틴 아메리카단편 소설의 아버지로 인정받게 했다.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1917)’나 ‘밀림 이야기(1918)’ 같은 작품은 키로가의 작품 세계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키로가는 10년간 여러 훌륭한 작품을 발표했다. 극본, ‘Las sacrificadas(1920)’와 단편집, ‘아나콘다(1921)’와 ‘사막(1924)’ 등을 썼으며 ‘La gallina degollada y otros cuentos(1925)’와 ‘유배자들(1926)’을 출간하며 비평가로도 활동했다.
또 시나리오도 썼지만 영화화하지는 못했다. 1927년, 키로가는 마리아 엘레나 브라보라는 젊은 여성과 재혼하고 2년 후, 두 번째 소설인 ‘과거의 사랑‘을 출간했다. 1932년에는 다시 미시오네스의 정글 농장으로 이사했지만 또 다른 비극을 겪어야 했다.
1935년, 키로가는 마지막 작품을 발표했다. 그 무렵 그의 아내는 남편을 버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왔다. 키로가는 1937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와서 말기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고 같은 해 2월 19일, 음독자살한다.
열대 정글에서 생존을 위한 인간과 동물의 투쟁에 대한 창의적인 묘사는 키로가를 순식간에 단편 소설의 대가가 되었다. 또한 정신 질환과 환각 상태를 묘사하는 데 탁월했는데 미국의 윌리엄 포크너와 같은 20세기 후반 거장의 영감이 되었다.
“인생에서 추억만큼 아름답고 힘이 되는 것은 없다.”
-호라시오 퀴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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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gambide, P. (1997). Horacio Quiroga: una biografí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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