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남겨진 사람들의 견딜 수 없는 고통

· 2018-05-28

자살, 왜 문제인가? 자살은 언론 매체가 쉬쉬하며 감추고, 사회 또한 조용하지만 매일 맞서 싸우고 있는 주제다. 이와 같은 비극이 생겼을 때 나타나는 온갖 감정들로 인해, 자살은 가장 엄격히 금지된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스스로의 생명을 거두기로 마음먹는다면, 우리가 그에 대해 아무리 수도 없이 생각해 보더라도 그 결정을 이해하기란 매우 힘들다.

우리의 마음은 수만가지 질문과, 의심과, 그런 결과를 “허용”치 않았을 다른 가능성으로 꽉 차게 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떠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이해하기에 너무나 어렵다.

그렇게 우리를 강타한 충격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될 있다. 이 음울한 장면에서 불신이 솟아오르고 계속해서 주변을 맴돈다. 부정 또한 나타난다. “그 애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일이 생겼을 거야. 왜냐하면 그 애는 가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아니야, 난 믿지 않아. 그 애는 이렇게 부모를 저버릴 아이가 아니야.”

물음표: 자살, 남겨진 사람들의 견딜 수 없는 고통

자살: 우리가 모든 한계를 탓하게 만든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스스로 떠나기로 결정했다는 가능성을 제외한 가능한 모든 설명을 찾는다. 그들이 의식적으로 그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른 모든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가능성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이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우리는 그들이 이 쪽, 생의 쪽에 남도록 하지 못했던 모든 문제에 대한 감정의 홍수에 잠길지도 모른다. 이 때 우리는 배신감과 억울함에 휩싸여 분노를 표출할 수도 있다. 우리는 더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더 신경 쓰지 못했던 것에 대해 탓하려고 한다.

당신은 사랑하던 사람이 떠나게 만들지 않았다. 그들이 떠나기로 결정했을 때 당신은 그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다. 당신은 그들의 자살에 책임이 없다. 남겨진 사람들은 이 모든 말들을 들어야 한다. 그들은 또한 일어난 일에 대해 새롭게 통합적으로 서술하고, 말로 표현해야 한다.

자살에 대해 생각하는 여인

가책의 감정은 대부분 경고의 표시를 “보지” 못한 것에서 온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막지 못한 데서 말이다. “내가 어떻게 그걸 알아채지 못했을 수 있지? 내가 거기에 있었다면 훨씬 나았을 텐데. 그 날… 그 때.” 우리는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을 우리 위에 덮어 씌운다. 불행히도, 우리는 그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살아있는 것의 괴로움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떠나야 했던 사람은 언제든 떠날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어떻게든 말이다.

분노와 미련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매우 흔하다

이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실이다. 자신을 탓하지 않고. 그들과의 이별에 대한 책임을 느끼거나 알지 않고. 이는 당신이 처음부터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격려해야 하는 내부적인 과정이다. 비논리적이고 비현실적인 자책감은 당신이 고통 안에 오래, 힘들게 머무르게 하기 때문이다.

떠난 사람에 대한 분노 또한 인간의 매우 흔한 감정이다. “어떻게 네가 나를 떠날 수 있어? 그렇게 하기 전에 나에 대해선 단 일초도 생각하지 않은 거야?” 어떤 증오가 우리의 텅 빈 공간을 채운다. 설명할 없는 무언가에 대한 분노표출하기 가장 어려운 감정 하나이다. 우리는 이 분노를 누구에게도 향할 수 없다. 탓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은 꽃잎이 채 다 피지 못한 데이지 꽃과 같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이런 경험을 겪었을 미련은 떨어뜨릴 없는 감정이다. 그들이 얼마나 오래 고통을 겪었을까? 아주 잠깐이라도 후회했을까? 고통스러웠을까? 그리고 영원하며 낙담적인 질문, 왜 그랬을까. 이는 쉽게 해결할 수 없으며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다. 조금이라도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내부적인 과정을 겪어야 한다.

또 다른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삶을 마비시킨다

또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 사랑하는 또 다른 사람이 같은 일을 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누군가를 탓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견디기 힘들다. 이 두려움은 많은 사람들의 삶을 집어 삼킨다. 그들은 혹시라도 또 다른 비극이 생길까 봐 아주 작은 고통이라도 예측하려 애쓴다.

자책하는 여인

마지막으로, 그러나 중요한 오명. 많은 가족들의 이름에 가위표를 치는 것이 그들의 삶을 채운다. 비극을 막을 수 “없었기에” 느끼는 자책감. 이 감정이 만들어 내는 침묵. 이런 종류의 죽음에 따라오는 커다란 금기.

모든 것은 우리가 분석하고 확인해야 매우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감정이다. 이 모든 감정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우리는 또한 느끼지 않아도 되는 모든 비논리적인 감정과 자책감을 없애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마침내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는 침묵을 끝낼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영혼은 말하고, 표현하고, 혼자가 아니라고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극적이게도 자살이 낯설지 않은 모든 사람에게 우리의 진심 어린 사랑과 지지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