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데가르트 폰 빙엔 : 여성 대학자의 생애

2019-07-10
힐데가르트 폰 빙엔은 여성 건강과 해부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저서 중에는 무월경 치료를 위한 식단 지침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녀는 중세 여성 과학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다.

힐데가르트 폰 빙엔은 12세기의 한 독일 수녀원장이었다. 그녀는 또한 철학자, 신학자, 작곡가 및 시인이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그녀가 오페라, 성과학 및 박물학의 선구자라고 말한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지식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그녀는 자연을 이해하고 싶어 했다. 그녀의 부모가 그녀를 아주 어린 나이에 교회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지식을 개발하고 그녀의 생각, 예언적 환상 및 그녀가 평생에 걸쳐 받게된 신비한 메시지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자원들을 발견하기 위해 애썼다.

힐데가르트 폰 빙엔은 거대한 유산을 남겼다. 그녀는 여성에게 명백한 제약적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과학적 진보를 꾸준히 이끌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분명한 예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어떤 인간의 지도 없이도 같은 시각에서 선지자, 복음서, 다른 성인들 그리고 특정 철학자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이 나를 가르친 것처럼, 나는 문학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었지만 그중 일부는 상세히 설명할 수 있었다. 

-힐데가르트 폰 빙엔-

힐데가르디스 빙겐시스 스테인 글래스힐데가르트 폰 빙엔

힐데가르트 폰 빙엔은 1098년 독일 버머스하임에있는 나이헤 및 라인강 근방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린 나이부터 건강 문제로 심하게 고생했다. 그녀가 어렸을 때 스판하임의 유타라는 수녀가 그녀를 돌보면서 음악과 라틴어를 가르쳤지만, 그녀에게 글 쓰는 법을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힐데가르트 폰 빙엔은 혼자서 글을 쓰는 법을 배웠다.

에히터나흐의 테오도리히 수도승이 작성한 일부 문서에서는 그녀가 여덟 살 때부터 예지력을 지녔다고 전한다. 항상 그녀는 의식이 있는 채로, 그리고 모든걸 인지한 상태로 예언적 환상을 경험했다. 그것은 그녀의 전생애에 걸쳐 일어난 매우 강렬한 시각 및 청각적 환각 경험이었다.

한 ‘예언’이 모든 것을 바꾸다

힐데가르트 폰 빙엔이 어른이 되었을 때, 그녀의 육체적인 고통은 가볍게 사라졌다. 그리고 이것은 그녀를 각성시켰다. 이를 통해 그녀가 가장 열정을 가진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바로 ‘지식’이었다. 그녀는 그녀가 지닌 과학, 박물학 및 그리스 우주론 서적을 통해 혼자서 공부하면서 과학적 시각을 개발할 수있었다.

그녀의 ‘예언적 환상’은 그녀의 질병처럼 사라져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렬해졌다. 그러나 수녀원장 ‘유타’와 힐데가르트의 멘토이자 수도승인 디지보덴베르크 수도원의 ‘폴마르’ 만이 이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녀가 38세의 나이에 그녀의 인생에서 제일 큰 계시를 받게 된다. 그녀 자신이 빛으로 둘러싸여 있는 환상을 경험했을 때였다. ‘그녀의 소명은 그녀의 지식을 적어서 남기고 세상에 공유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힐데가르트 폰 빙엔 : 여성 대학자의 생애 - 힐데가르디스 빙겐시스가 지낸 수도원

디시보덴베르크의 수녀원장 : 로마 교황의 축복을 받은 ‘대학자’

그 환상을 경험한 직후, 수녀원장 유타는 세상을 떠났고 힐데가르트 폰 빙엔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교황은 그녀의 신비한 경험에 대해 전해 듣게 되었다. 그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녀의 인생에서 경험했던 16가지 환상에 대한 모든 것을 기록할 권리를 그녀에게 부여했다.

힐데가르트는 1141년 그녀의 첫 번째 저서인 ‘스키비아스’를 썼다. 이 책에서 그녀는 그리스 문화를 바탕으로 일종의 우주론에 관해 다루고 있다. 그리고 지구가 바람, 불, 물, 땅이라는 4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또한 지구의 천체는 공기와 물로 서로 다른 층으로 구성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이는 당시의 주목할만한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교황의 축복으로 인해 그녀를 향한 사람들의 이단 취급이 멈출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 사람들에게 수녀원장 빙엔은 신의 음성이었다. 미신이 만연한 사회에서 그녀는 다른사람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목소리였던 셈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녀는 이를 어떻게 이용해야할지 잘 알고 있었다.

힐데가르트 폰 빙엔, ‘라인강의 예언자’

교회가 그녀의 편이라는 사실은 유럽 전역에서 힐데가르트의 연구 업적을 매우 유명하게 만들었다. 이로써 그녀는 유명해졌고, 사람들은 그녀를 ‘라인강시불라‘ 즉, ‘라인강의 예언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던 여성이었다. 그녀는 디시보든베르크를 떠나 자신의 수도원을 세우고 싶어했다. 이 꿈은 마침내 독일에서 아이빙엔 수녀원을 짓기로 결정하면서 현실화되었다.

힐데가르트 폰 빙엔은 의학과 자연으로 깊이 파고들면서 치료사가 되었다. 그녀가 50세였을 때 유럽 전역을 여행하였는데, 이는 그녀가 발 닿는 곳마다 평화를 전파하고, 과학 및 의학에 대한 그녀의 지식을  나눠주기위함이었다.

첫 번째 성(性) 연구가

그녀의 가장 주목할만한 업적은 ‘자연적 치유법에 관한 자연학’이었다. 그녀는 이 백과사전에서 몇 가지 질병과 식물의 약효를 자세히 설명했다. 또한 그녀는 통증을 치료하고 신체와 상처를 깨끗이 닦는데 있어서 끓는 물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힐데가르트는 또한 오르가슴을 남자와 여자 모두 즐길 수 있는 아름답고 숭고하게 불타오르는 것으로 묘사했다. ‘원인과 치료’와 같은 그녀의 의학 서적에서는 월경과 무월경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힐데가르트 폰 빙엔 : 여성 대학자의 생애

‘예언자’ 그리고 ‘성녀’

힐데가르트 폰 빙엔은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파문당하는 것을 면했지만 교황, 왕, 귀족 및 평민들 누구에게서나 한결같은 인정을 받았다. 실제로 2010년에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그녀를 ‘예언자’이자 ‘성녀 힐데가르트 폰 빙엔’으로서 언급했으며, 그녀에게 ‘교회의 의사’라는 칭호를 달았다.

  • King-Lezneier, Anne H (2001) Hildegard of Bingen: An Integrated Vision, Liturgical Press
  • Maddocks, Fiona (2001) Hildegard of Bingen: The Woman of Her Age, Double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