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누구인가

03 11월, 2019
헤겔 사후 그의 제자들은 헤겔우파와 칼 마르크스 같은 헤겔좌파라는 서로 대조적인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헤겔은 서유럽과 19세기 러시아에서 철학 사상의 전과 후를 정립했다. 그는 플라톤, 데카르트, 칸트의 충성스러운 신봉자였다. 그는 독일 관념론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 실제로 의식 진화론의 돌파구를 마련한 사람이다.

헤겔의 저서를 읽는 것은 쉽지 않다. 헤겔의 가장 유명한 저서, 정신현상학(Phänomenologie des Geistes, 1807)은 변증법으로 알려진, 난해하지만 결정론적인 지적 유산의 예시이다.

그의 저서는 급진적이고 독일의 민족주의에 영감을 주었다. 예를 들어 히틀러는 헤겔의 철학을 옹호했다.  “게르만 족의 세상만이 진정한 기독교의 화신으로서 진정한 자유를 대표한다”라는 문장이 자신을 정당화시켜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교육은 인간을 윤리적으로 만드는 기술이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그러나 헤겔은 그 이상이었다. 그의 사상은 수많은 이론과 철학에 불을 밝혔다. 헤겔은 마르크스의 유물론에 영감을 주었으며 쇠렌 키르케고르의 선재론, 프레드리히 니체의 형이상학, 심지어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부정 변증법의 토대를 마련했다.

근본적으로 그의 철학은 우리 자신과 세상 사이에 장벽이 많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보게 한다. 그는 우리의 진리를 창조하는 사람이 우리 자신임을 말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어떻게 해법과 모순 사이의 지속적인 움직임으로부터 역사와 우리의 생각이 비롯되었는지 설명하기 위해 변증법의 개념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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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누구인가

헤겔은 1770년 8월 27일, 슈투트가르트의 개신교 가정에 태어났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 등 주요 인사들과 사귀었다. 그리고 임마누엘 칸트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그는 튀빙겐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1801년 행성궤도론(Dissertatio philosophica de orbitis planetarum)을 발표한 직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학문에 전념할 수 있을 정도의 유산을 상속받았다. 오래지 않아 교수가 되어 수학, 논리학, 법학 등에 대한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위대한 목표의 실현을 통해서만이 인간은 그 강인한 성품을 드러낸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1807년 헤겔은 의식,인식, 지식 등에 대해 심도있게 다룬 정신현상학을 출판했다. 정신현상학에서 그에게 진실한 유일한 것은 이성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정신현상학이 출판된 직후 하이델베르크와 베를린의 많은 대학들이 헤겔에게 학생들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다.

헤겔은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가

헤겔의 수업은 유럽 전역에서 유명해졌다. 헤겔의 학생들은 헤겔은 거의 모든 일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항상 말했다. 학생들은 또 헤겔이 플라톤에 비견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철학과 국가 체계에 대한 헤겔의 분석은 헤겔의 여러 가지 접근 방법과 이론에 대해 배우도록 많은 사람들을 고취시켰다.  그 시대의 문화 엘리트와 정치인들은 헤겔을 배울 점이 있고 어떤 면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헤겔은 1831년 11월 14일에 콜레라로 사망했다.

헤겔의 철학

무엇보다도 헤겔은 철학에 역사를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때까지 철학적인 담론은 공백의 상태, 즉 중요한 사건을 고려하지 않고 진리에 도달하고자 하는 엔텔러키(entelechy)로부터 시작했다.

사실 프랑스 혁명과 시대 정신의 변화와 같은 사건들이 헤겔에게 가장 영감을 주었다.

이제 헤겔의 철학적 유산과 가장 관련있는 개념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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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론

흔히 헤겔을 독일 관념론의 정수라고 정의한다. 무슨 의미일까? 관념론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옹호하는 철학 이론이다.

  • 관념은 필수적이며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 우리를 둘러싼 것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않고 의식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는다.
  • 헤겔에게 있어 세상은 아름답다. 아름다움 자체가 이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형이상학적으로 완벽하다.

“관념은 항상 일반화이며 일반화는 사고의 속성이다. 일반화하는 것이 사고하는 것이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마찬가지로 헤겔은 행복이 인생의 주요 목표여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헤겔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과 이성이었다.

변증법

헤겔은 변증법적 절차로써 이성을 옹호했다. 사람은 한 가지 사실을 긍정했다가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나중에 부인할 수 있다. 따라서 헤겔은 다음과 같은 단계가 포함된 변증법적 움직임을 믿었다.

  • 정립: 관념 긍정
  • 반정립: 정립 부정
  • 종합: 모순 극복

자유

헤겔은 진정한 자유는 국가라고 하는 매우 구체적인 체제 자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었다. 국가는 개인이 완전함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그 결과 개인은 진정한 존엄성을 획득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따를’ 법적 체제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헤겔의 체제 안에서 개인은 기독교를 통해 앞서 말한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자유로운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자유로워지는 것이 모든 것이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논리학

헤겔의 가장 유명한 논제는 모순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상반된 상황이 동시에 존재한다. 

즉 우리는 모두 변한다. 우리 모두 변화하며 우리 자신의 활력의 결과 한 상태에서 또 다른 현실로 이동한다. 요약하자면 삶은 그 자체가 끊임없는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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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미학’을 어떻게 정의했는가

헤겔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예술의 아름다움을 구분지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 고유함과 자유로움으로 인한 정교한 아름다움을 말한다. 기본적으로 사물의 자연적인 정신을 나타낸다. 예술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정신을 형성하며 지식을 얻기 위한 미적 탐구를 가능하게 한다.

헤겔은 역대 가장 뛰어난 철학자들 중 한 명이다.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의 저서가 상당히 불편한 사람들도 있다.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게르만 국가/관념론의 개념이나 유럽 중심주의 때문에 헤겔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헤겔의 저서가 어렵기 때문에 읽어보기를 꺼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헤겔의 사상은 유럽의 중요한 순간을 기념했다.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저서, 정신현상학을 필독서로 꼽는다.

“이 세상에 어떤 위대한 일도 열정없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