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적함을 느끼는 일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말자

2019-01-28

원치 않을 때 미소를 짓지 않아도 되는 것은 얼마나 좋을까? 세상을 향하여, “세상이여, 난 오늘 나가고 싶지가 않소. 아무도 보고 싶지가 않소,” 라고 말하는 기분은 좋지 않을까? 가끔 자신만이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울적할 때 “배를 쥐어 잡는 느낌 없이 소통한다면 더 쉬울 텐데” 라고 소망한다. 죄의식 없이 울적함을 느끼는 일, 가능할까?

불평도 설교도 들을 필요 없이 가끔 혼자 있으면서, 을 비축하고 새로이 일어설 자격이 있다.

일진이 사나운 날은 있기 마련이다. 그래야 감사할 좋은 날도 오는 법이니까.

장미가 가시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가시에서 떨어져 다치지 않게 자신을 돌보기도 해야 한다.

울적함을 느끼는 일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말자 01

울적함을 느끼는 일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말자

울적한 기분은 상상보다 더 흔하다.  삶의 모든 것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실은 사회가 우리가 울적한 것을 표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 기분을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죄의식을 느끼고 판단 받는 느낌을 준다.

슬프다고 말하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당신이 쓸모없는 인간인 것처럼 그들이 생각한다고 느낀다. 그러나 다른 다람은 그저 동정을 하고 기운을 북돋아주고 툴툴 털고 일어서라고 할뿐이다.

그들은 남이 울적해하는 것을 다룰 줄 모른다. 매우 불편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걸 숨기려고 한다.

아마도 실제는 슬픈 사람을 보면 그들도 자신이 그런 느낌을 가졌던 때가 생각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슬픔은 봉합해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에서는,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울적하다면 숨겨서는 안 된다. 적어도 그것에 대해서 죄의식을 느낄 필요는 없다. 삶의 일환이니까. 안 좋은 날이 있는 법이고, 안 좋은 날이 생기면 그냥 그대로 좋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내면에서 느끼는 것과 다르게 억지로 행동하는 것은 진을 빼는 일이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 것은 힘을 앗아간다.

하지만 감정을 드러내면, 극복할 수가 있다. 그리고 때때로 울적함을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면,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최고의 피난처: 자기 자신

일진이 사나운 날 최고의 피난처는 자기 자신이다. 고독을 즐기며 홀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는 건 어떨까?

울적할 때 최고의 피난처는 자기 자신이다

  • 감정이 당신에게 뭘 말해주려는지 귀를 기울인다. 결국, 나가서 행복한 척하는 것은 당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감정은 더 큰 소리를 내고 회복하는 일이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 자신을 포옹한다. 나쁜 감정이 드러나게 놔둔다. 그저 느끼고 이해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에 대해서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