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딸의 관계 - 감동적인 편지 한 장

14 12월, 2017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 감동적인 글 하나를 읽어 보자:

딸 아이가 태어난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몇 시간 후면 그 아이가 대학에 들어갈 것이다. 어제만 해도 그들이 나에게 아버지가 될 거라고 말했고, 또 잠시 후에 딸아이는 바닥을 기어 다니고, 몇 분 후에는, 딸아이는 첫 운전 교습을 받았다. 어제 그녀는 마치 아빠가 하느님이라는 듯이 우리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오늘 그녀는 우리의 결점 하나하나를 진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아빠를 바라본다. 이 모든 것 가운데서 겨우 하룻밤이 지났다. 내가 딸에 대해 생각해 봤던 밤, 그녀가 자라는 걸 지켜보고, 당황하던, 그 짧던 듯한 하룻밤이…

나는일하러 가야 했기 때문에, 그녀가 성장하는 것을 때때로 보아 왔던 때도 있었다. 다른 때에 딸아이의 형제들은 나를 필요로 했고, 내 형제들이나 친구들, 혹은 내 집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내 자신이 필요했다. 나는 집에 늦게 도착했고, 때때로 나는 이를 무마할 그럴듯한 이야기를 생각하지 못하기도 했다. 딸아이에게 꾸며낸 이야기가 통하던 시기는 이미 한참 지나가버렸고, 이제 그 아이도, 현실이 즐거운 만큼, 그만큼 더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을, 서서히 겪어가는 나이가 되었다.

“그녀는 혼자서 하고 싶어했다. 그녀는 과보호받는 것, 혹은 자신이 뭔가를 하고,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모르는 게 널 아프게 하지는 않을 거야”라는 말을 듣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 - 감동적인 편지 한 장

아버지와 딸의 관계: 아버지의 희망

어제 나는 딸아이에게 희망을 품었다. 딸아이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 되기를 바랬고, 그녀가 이에 대해 아무 말도 없이 따라주기를 바랬다. 그녀는 목이 마를 때엔, 그저 아빠에게 병을 달라고 손짓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배고플 때, 무엇이건 닥치는 대로 입 안에 집어넣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나의 희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희망을 갖게 되었고, 이제 나는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밤새도록, 고민한 결과이다.

나는 딸아이가 변호사가 되었으면 했다. 변호사가 되면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었다. 변호사란 지위가 세상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더 도덕적으로 자랄 수 있는 교육을 받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기자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녀는 TV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익명의 기자들 중 한명이 되고 싶어 한다. 전쟁이 일어나는 곳을 여행하며, 그 중요한 이야기를 전하는 기자가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나는 이게 너무 무서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한다. 한편, 그녀는 마치, 첫눈에 반한 사람을 열렬히 바라보듯이, 나를 바라보기도 한다. 아버지로서, 이 시선, 딸아이의 이 시선이, 너무나도 자랑스럽다.

조종하려는 것을 포기하면서

아버지로서, 권위를 포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나는 항상 그녀가 본래 나이보다 어리고, 훨씬 작고 연약하며, 감동적이고 순수한 아이로 보인다. 나는 또한 그녀가 세상의 모든 결심을 벼랑 끝까지 걸어가듯이 신중하게 정하는 것을 봐왔고, 나는 그녀가 그것을 하도록 내버려 둬야만 했다. 내가 그녀의 최고의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만큼, 오직 인생만이 너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교훈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배워야 할 몇가지 교훈들이 있다.

잠든 딸아이는 너무 아름답게 보인다. 그녀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딸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이다. 나는 그녀에게 이것을 여러번 말했고, 그녀는 웃고, 웃고, 그리고 마침내 “아-빠!”라고 말해주었다.

그녀의, 자신의 몸과의 싸움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다른 아이들이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내용이, 매우 중요하던 시절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도 어렵다. 이를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과정은 또한 나를 향수병에 젖게 만든다. 내 눈에서 눈물이 날 것 같다.

나는 그 끔찍한 자켓 입고 학교에 가야 할 때 느꼈던 그 불안감을 기억한다. 우리 엄마가 지루할 때, 악마처럼 꼬질꼬질한 손길로 기운 그 자켓. 나는 내 딸이 어떤 끔찍한 자켓을 입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몇 벌 있었겠지. 어쩌면, 아빠를 위해서, 딸은 음악을 공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8분 음표와 16분 음표에 친해지길 바랬던 나의 꿈은, 그녀가 음악에 싫증을 느끼게 되면서, 망가졌는지도 모른다. 음악을 좋아하게끔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나의 앞에서, 그리고 자신의 앞에서, 애써서 음악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딸의 최고의 선생이 되고자 했던 만큼, 삶이 너에게 가르쳐주는 것도 있겠지. 다른 사람에게서 배워야 하는 것도 참 많이 있다.”

비누방울을 부는 여자의 그림

나는 깨달았다..

만약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나는 내가 너를 위해, “너에게 잘해 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하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그렇지 않다. 나는 너와 함께 경험을 나눌 것이다. 네가 어릴 적에, 공을 바라보던 너의 시선을 이해하고, 너와 같이 축구를 하고 놀 시간을 가졌으면 좋았을 텐데. 너에 대한 위험은 덜 인지하고, 꿈에는 더 인지할 수 있었으면 했는데. 너무 많은 것을 늦게 알아차렸다. 나는 너와 더 많이 놀았으면 좋겠다. 네가 나를 포기하고 다른 아이들이 함께 놀기 전에 말이야.

나는 네가 추울 때는 재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네가 배고플 때 먹는 것도 알았어야 했는데. 처음에는 네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지만, 나중에는 그렇지 않았다. 나중에, 네가 필요로 하는 것은 네가 시작한 프로젝트를 격려하는 것이었다. 너는 너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과, 상사가 아닌 소중한 동료들을 원했다. 너는 누군가의 격려, 편안함, 그리고 영감이 필요했다. 어쩌면, 그건 내가 했어야 하는 역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버지로서의 역할이었을지도.

사람들은 감정은 신비롭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은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많은 감정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함께 보내지 않았던 시간을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 슬프다. 난 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같은 느낌을 느낀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내 기분을 나아지지는 않아.

그렇지만, 난 내가 지금 보는 모습 덕분에, 기분이 많이 나아진다.  네가 스스로 싸우는 방식이,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만든다. 옳든 그르든 간에, 너는 자신의 방법을 골랐고, 열정을 찾았다. 나는 네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마침내 내가 너를 위해 편안한 삶을 살게 해주고 싶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네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행복한 삶이다. 이제 아버지로서, 나는 네가 그것을 찾길 바라며, 나와 함께 나누기를 바랄 뿐이다.

추신: 알다시피, 지금의 나는 아버지로서만이 아니라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나는 이 글을 마치고, 점심 시간에 너와 함께 마무리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