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어두운 면을 받아들이고, 괴물과 마주하라

14 12월, 2018

자신의 어두운 면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면, 우리의 고난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괴물에게서 숨는 것을 멈추자.

괴물과 마주하고,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찾아내자.

조용한 장소를 찾은 다음, 편안하게 앉자. 이 순간은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다. 내 안의 어두운 면을 받아들일 시간이다.

자신의 어두운 면을 받아들이고, 괴물과 마주하라

귓가에 들려오는 소음이 사라지도록 하고, 해야 하지만 아직 끝내지 못한 일들이 무엇인지 적어보자. 머릿속에 들려오는 부정적인 소리가 조금씩 사라지게 하자.

고요함을 즐기는 것이다.

고요함의 감사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침묵이란 좋은 친구가 아니다. 하지만, 고요함의 근본을 찾아낼 수 있다면, 침묵이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고마운 것이 될 수 있다.

침묵은 그 무엇과도 소통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번 시도해보자.

침묵은 나 자신과 연결되는 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우리는 내면에 숨겨져 있는 우리 자신과 연결된다.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도망치려 해서는 안 된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피부를 쓰다듬듯, 피하고 싶은 내면의 상처와 흉터를 쓰다듬자.

시선을 돌리거나 못 본 척하며, 아무것도 없는 척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모두 그 상처의 존재를 알고 있다.

상처가 만들어 낸 머릿속의 괴물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어두운 면을 인정해야 한다. 자기 자신과 연결되어야 한다.

자신의 어두운 면을 받아들이고, 괴물과 마주하라 01

고통의 어둠

고난을 직접 마주하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우리의 기억을 괴롭히는 괴물은 매우 무섭고, 누군가에게는 견디기 힘들 만큼 커다란 것일 수 있다.

그들은 절대로 건드릴 수 없는 곳, 좀 더 불안정하고, 좀 더 어두운 부분이 어디인지 알고 있다. 그리고 정확한 장소에 괴물을 숨겨둔다.

이 괴물은 우리 과거의 기록이다. 우리가 겪은 고통을 잊지 못하게 만드는 각인이다. 이 괴물은 때때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우리가 과거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하게 만들기 위해 고통을 더욱 가중한다.

그것을 멈추지 못하면, 거절, 혼자 되는 것, 실패의 고통과 같은 우리가 너무나 두려워하는 더욱 강력한 괴물의 모습이 된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나 확실하게 믿고 있는 그릇된 믿음의 다양한 형태의 모습 또는 가면일 뿐이다: 행복해질 수 없다는 불 가능성이다.

상처 또한 그것만의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다. 알고 있었는가? 이때, 우리는 회색의 슬픔, 우리를 찌르고 있는 날카로운 가시로 인한 통증 외에는 그 무엇도 볼 수 없다.

매우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위험한 상태이다. 이것을 미리 막지 못하면, 우리의 인생은 절대로 고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를 조금씩 옭아매는 교묘한 거미줄인 것이다.

상처에도 어두운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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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벗어나자

과거의 상처로 인해 이미 부서진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상처가 너무 깊고, 그 상처를 못 본척 하고 있다면 더욱 어렵다. 고통은 몇천 가지의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표현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났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고통과 고난은 신체적으로도 표현되기도 한다. 애버딘 센터의 트라우마 연구소 소장이자, 교수인 데이비드 알렉산더는 정서적 피해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경우, 고통이 신체적으로 발현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어두운 면과 상처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이유이다. 어두운 면이라는 것은 꽤 미묘한 것일 수 있다.

그것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 우리가 현실을 보는 방식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고난의 굴레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보이는 것만큼 끔찍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지 않은 상처는 없다.

상처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어떤 고통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고통의 끝 또한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상처는 기억의

이음매이다.

우리를 상처 입히면서, 우리를 치유하는

완전하지 않은 마무리이다. 그것이 바로

시간이 우리가 절대로 우리의 상처를 잊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마르완-

빛은 우리가 가진 어두운 면에서 태어난다

우리가 가진 어두운 면이 우리 자신을 부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를 성장하게 만들 수도 있다. 모순이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진 어두운 면의 특성이다.

고난의 바다는 너무나 넓지만, 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른 쪽을 바라보면, 육지를 발견할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균형을 찾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경험의 존재를 깨닫고 그것을 인정한 다음, 거기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가슴에 남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다.

인생이 비록 고난으로만 가득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상처와 고통에만 신경을 쓴다면, 우리의 마음은 우리에게 상처와 고통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믿어버릴 것이다.

언제나 고난은 있다. 고난을 이겨내는 것을 포기하고 그저 주저앉거나, 또는 그것에 맞서 좀 더 성숙하고 성장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어두운 면, 괴물, 그리고 악마를 인정하는 것이다.

스위스 심리학자 칼 융은 인간의 어두운 면을 그림자 원형이라고 불렀다. 그곳은 우리의 가장 억압된 본능을 숨겨두는 지하실과 같다. 최악의 개인주의,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욕망 같은 것들이 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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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보고 싶다면, 우선 가장 어두운 곳으로부터 스스로를 끌어 올려야 한다.

자신의 어두운 면을 받아들이고, 괴물과 마주하라 02

자신의 어두운 면을 인정하자

우리는 누구나 인생에서 힘든 경험을 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인정, 수용하고 느끼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친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게 굴 필요는 없다.

이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살펴봐야 한다.  우리의 고난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의 본질은 무엇일까? 우리의 생각 중 무엇이 그 고난을 더욱 증폭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어떤 행동이 그것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을까?

어떤 감정이 그 고난을 다시 우리의 인생으로 불러들인 것일까? 때때로, 우리는 스스로의 말이나 행동, 그리고 생각에 불을 지르고,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자유로워지기 위한 다음 단계는 고난의 원인을 피하는 것이다. 어떻게? 고난을 더욱 크게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을 피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인내, 노력 그리고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우리 자신을 다양한 방법으로 상처 입힐 수 있다. 그것의 대부분은 우리의 생각과 무의식적 행동과 관련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깨닫고, 그 중 어느 무엇도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자신의 인생을 바꿀 힘이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인생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꼭두각시가 아니다.

이것은 쉽거나 간단한 과정이 아니다. 엄청나게 많은 장애물을 뛰어넘고, 많은 벽을 부셔야만 한다. 하지만 이것만이 자신의 인생을 밝히고, 웰빙으로 이어지는 길을 찾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 변화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신의 어두운 면을 이겨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우리의 고난을 끝내고, 내면에 평화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때때로, 우리를 조종하는 괴물들은 단순히 우리가 가진 가장 은밀한 공포일 때가 있다. 소리 내서 도움을 요청하자.

“빛의 형태를 상상하는 것으로 빛을 얻을 수는 없지만, 어둠을 의식하는 것으로 빛을 얻을 수는 있다.”

칼 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