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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로에스와 17인의 중세 철학자

7분
아베로에스, 토마스 아퀴나스와 보이티우스는 대표적인 중세 철학자에 속한다. 이들 외에 다른 유명한 중세 철학자를 알아보자.
아베로에스와 17인의 중세 철학자
Matias Rizzuto

작성 및 확인 철학자 Matias Rizzuto

마지막 업데이트: 21 7월, 2025

중세를 흔히 암흑기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중세는 현재 알려진 유명 철학자들이 초기 성찰을 펼쳤던 시대다. 서로마 제국의 몰락부터 르네상스가 시작될 때까지 유럽 중세 철학자 또는 현자들은 기독교의 가르침과 고전 철학을 융합하여 논쟁을 펼치고 새로운 사상 학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스, 로마, 이슬람, 유대 전통의 영향을 받은 중세 현자들은 존재, 도덕, 인간과 신의 관계를 다뤘으며 서구 사상을 형성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다음에서 중세 철학자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자.

시대를 이끌었던 중세 철학자

중세 철학자들은 중요한 성찰과 지식, 사고 모델을 물려줬다. 그들이 누구인지 아래에서 이야기하겠다.

더 읽어보기: 비범한 중국의 철학가, 공자의 일생

1.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서기 354~430년)

중세 철학자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이미지 출처: 세계사백과사전.

성 어거스틴으로도 알려진 그는 서구 기독교에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타가스테(현재 알제리의 수크 아라스)에서 태어나 파란만장한 청년기를 보낸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와 신플라톤주의를 특히 강조하면서 다양한 철학적, 정신적 흐름에 몰두했다.

저서인 ‘고백록(Confessions, 398)’에서는 전례 없는 지적 불안의 여정을 통해 자신의 영적 탐구와 궁극적으로는 기독교로의 개종을 자세히 설명한다.

기독교 문학의 위대한 저서로 인간 본성과 개인과 신의 관계에 대한 솔직한 고찰 덕분에 수 세기 동안 철학자와 작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2. 보이티우스(480~524 AD)

보이티우스는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로, 고대 철학적 사상과 기독교 가르침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으로 중세와 르네상스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아니키우스 만리우스 세베리누스 보이티우스(Anicius Manlius Severinus Boethius)는 평생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책을 라틴어로 번역하고 논평하는 데 헌신했다. 이 때문에 보이티우스의 저서는 헬레니즘 사상을 보존하는 데 필수였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보이티우스가 철학자로 인정받는 이유는 ‘철학의 위안(524)’이라는 책 덕분이다. 처형 직전 투옥 중에 쓴 이 책은 의인화한 철학과 보이티우스의 철학적 대화를 통해 내적 행복과 참되고 영원한 선에 대한 성찰을 다루고 있다.

3. 후안 스코투스 에리우게나(810~877 AD)

에리우게나는 아일랜드 태생의 신플라톤주의 신학자 겸 철학자로, 고대에서 중세 사상으로의 전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그리스의 철학적 전통과 중세 유럽의 신흥 신학 전통 사이에서 가교 구실을 했다.

그의 걸작인 ‘자연의 분할(867)은 신, 자연, 인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고 신성이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한 질문을 다룬다.

에리우게나의 사상은 이단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결국 교회로부터 비난받았지만, 그가 중세 시대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쿠사의 니콜라스 같은 후기 철학자에게 이 분야에 끼친 영향은 부인할 수 없다.

4. 알 파라비(872~950 AD)

중세 철학자 알 파라비
카자흐스탄 공화국 화폐의 알 파라비.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제2의 스승’으로 경칭된 중세의 가장 저명한 이슬람 철학자인 파라비는 논리학과 정치 철학 연구의 선구자였다. 파라비는 그리스, 페르시아, 이슬람 철학의 전통 요소들을 결합하고 종합했다.

파라비의 공헌은 음악, 수학, 우주론, 윤리학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했지만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에 대한 논평과 재해석으로 유명했다.

정치 철학 분야에 관한 저서인 ‘이상도시론’은 플라톤의 ‘공화국’과 유사하게 철학적 지도자가 통치하는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비전이 두드러진다.

5. 아비켄나(이븐 시나) (980~1037 AD)

아비켄나는 의학, 철학부터 천문학과 연금술에 이르기까지 당대 지식의 다양한 분야를 탐구한 페르시아 지식인이었다. 대다수가 아비켄나를 현대 의학의 아버지로 여기며, 그의 영향력은 이슬람 세계를 넘어 중세 유럽까지 퍼졌다.

가장 잘 알려진 저서는 ‘의학 전범(1025)’으로 수 세기 동안 의학 분야의 주요 참고 자료가 되었다.

철학 영역에서 아비켄나는 아리스토텔레스 사상과 이슬람 원리를 융합하고 조화시키려 노력했다. ‘치유의 서’라는 저서에 이러한 노력을 담았다.

스스로 존재하며 모든 것이 의존하는 ‘필연적 존재’ 개념은 아비센나 형이상학의 기본이며, 신의 존재와 본질에 대한 중세와 르네상스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6. 중세 철학자, 캔터베리의 안셀무스(1033~1109)

안셀무스 칸투아리엔시스’로도 알려진 이탈리아의 베네딕토회 수도사, 신학자, 철학자로 이후 캔터베리 대주교직에 올랐다. 특히 신의 존재에 관한 논증과 관련하여 신학과 철학에 공헌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신앙에 대한 안셀무스의 합리주의적 접근 방식과 신성한 신비를 이해하는 이성적 능력에 대한 강조는 그를 신앙 연구에 이성과 논리를 사용하려는 철학적, 신학적인 운동인 스콜라주의 발전의 근본적인 인물로 자리매김시켰다.

7. 피에르 아벨라르(1079~1142)

피에르 아벨라르는 12세기 유럽 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 중세 철학자, 신학자 겸 논리학자다. 파리 대학 대표 철학자이기도 한 아벨라르는 논리와 논증을 사용하는 토론의 한 형태인 변증법에 대한 기술로 유명했다.

학문적 경력 전반에 걸쳐 피에르 아벨라르는 전통적인 교리에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했으며, 종종 당시의 다른 저명한 사상가 및 교회 권위와 대결하기도 했다.

아벨라르의 저서인 ‘긍정과 부정(1141)’은 그의 변증법적 접근 방식을 보여주는 분명한 예로 교회 관련 서적에 나타난 모순을 지적하며 비판적 분석과 더 깊은 신학적 논쟁을 장려했다.

8. 아베로에스(이븐 루시드) (1126~1198)

무슬림 스페인의 코르도바에서 태어난 아베로에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저서에 대한 광범위한 논평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리스 철학자에 대한 아베로에스의 세심한 해석은 이슬람 세계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라틴어로 번역된 후 중세 유럽에서 아리스토텔레스 부흥의 토대를 마련했다.

아베로에스는 철학과 종교가 상호보완적이며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생각을 옹호했다. 그의 저서에 따르면 진리는 철학적 이성이든 종교적 계시를 통해 도달하든 통일된 진리로 남아 있다.

9. 마이모니데스 (1135~1204)

중세 철학자 마이모니데스
티베리아스에 있는 마이모니데스의 무덤.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히브리어 이름인 모세 벤 마이몬 또는 줄여서 람밤이라고도 불리는 마이모니데스는 안달루시아 출신의 유대인 학자였으며 유대교, 철학 및 의학에 대한 공헌은 수세기에 걸쳐 영향을 남겼다. 무슬림 스페인의 전성기에 코르도바에서 태어난 마이모니데스는 저명한 랍비이자 존경받는 의사였다.

마이모니데스가 쓴 철학 책, ‘혼란스러운 자를 위한 안내서(1190)’를 보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가르침과 유대교의 원리를 조화시키려고 시도했다. 그는 신의 본질, 예언, 악의 문제 등 복잡한 질문을 다루며 신학적 딜레마에 대한 합리적인 답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마이모니데스는 평생 자신의 철학적 성향을 의심했던 보수적인 유대인과 무슬림 사상가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10. 중세 철학자, 알베르투스 마그누스(1200~1280)

마그누스는 유럽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저서를 광범위하게 소개하고 논평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가 유명하지 않고 의심의 대상이 되던 시기에, 마그누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사상과 기독교 신학의 통합을 옹호했고 철학과 종교는 서로 반대가 아닌 풍요롭게 하는 존재라고 믿었다.

철학에 대한 깊은 관심 외에도 알베르투스는 자연에 대한 경험적 연구의 선구자였다. 식물학, 동물학, 화학, 지질학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며 현대 과학적 연구법 일부를 예상하면서 관찰과 실험적 접근 방식을 반영했다.

11. 토마스 아퀴나스 (1225~1274)

이 사상가는 의심할 여지 없이 철학과 신학 역사에서 가장 탁월한 사람이다. 서유럽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저서의 재발견이 학계에 긴장과 논쟁을 불러일으켰을 때,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성과 신앙이 상호보완적이며 신에 대한 지식은 합리적인 수단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는 생각을 옹호했다.

가장 유명한 아퀴나스의 저서인 ‘신학 대전(1274)’은 신의 존재, 윤리, 선과 악의 본성에 이르기까지 신학과 철학의 거의 모든 기본 주제를 다루고 분석한 신학 개요서다. 아퀴나스는 깊이 있는 학식과 논증 능력으로 각 주제에 대해 이의와 답변, 반박을 제기했다.

12. 로저 베이컨(1214~1294)

로저 베이컨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로, 초기 연구에서 경험적 방법을 강조하고 지식 발전에 있어서 실험의 역할을 옹호했다. 고대 문헌과 전통의 권위가 종종 직접적인 관찰보다 우선하던 시대에 로저 베이컨은 체계적이고 실용적인 접근 방식을 옹호했다.

또한 우주를 이해하는 데 있어 수학의 관련성을 강조하고, 신학적, 철학적 이유뿐만 아니라 인간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지했다.

방법론적 공헌 외에도 베이컨은 광학, 연금술, 천문학에 관한 글을 썼고 안경, 자주포 같은 미래 발명품을 예측했다.

13. 존 던스 스코투스(1266~1308)

존 던스 스코투스는 옥스퍼드 대학교와 파리 대학교 교수였고 신학과 철학에 대한 공헌으로 후기 스콜라주의의 중심 인물이 됐다. 미묘하면서 정교한 논증으로 신학적 문제를 다루고 해결하는 능력이 유명했다.

스코투스의 가장 주목할 만한 공헌은 신학의 맥락에서 ‘자유 의지’ 개념을 옹호하며 하나님의 뜻은 절대적으로 자유롭고 어떤 논리적 필연성에 의해서도 결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당시 다른 사상가들과 다르게 아퀴나스는 지성보다 의지가 우선임을 강조했다.

14. 중세 철학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1260~1328)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독일의 신학자, 철학자, 설교자회 또는 도미니크회와 관련된 신비주의자였다. 그의 사상은 스콜라 신학의 요소와 깊은 신비적 통찰력을 결합한다. 인간의 영혼과 신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탐구하는 설교와 논문은 에크하르트를 중세 시대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로 자리매김했다.

에크하르트의 가르침 중심에는 ‘영혼의 불꽃,’ 즉 신의 현존이 발견되고 개인이 신과 직접 연합할 수 있는 영혼의 내재적 지점이라는 개념이 있다. 저서에서는 영혼이 신을 만나기 위해 모든 이미지, 개념, 욕망을 스스로 벗겨내는 과정인 비전용을 강조한다.

에크하르트는 의식과 중재를 넘어서는 하나님과의 경험적 관계를 옹호했다. 특히 하나님과의 연합의 본질과 신성한 초월성을 언급하는 사상은 교회에 의해 이단적이라고 비난 받았다.

15. 중세 철학자, 윌리엄 오컴(1287~1347)

중세 철학자 윌리엄 오컴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프란체스코회 회원인 오컴은 유명론으로 알려진 사상 학파와 자주 연관된다.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물 외부에 있는 보편성(추상적 개념 또는 공유된 특성)의 존재를 거부하던 오컴은 오직 개인만이 존재하며 보편자는 사물에 붙이는 이름이나 꼬리표라고 주장했다.

명목주의에 대한 공헌 외에도, 오컴은 그의 이름을 딴 인식론적 원리, 즉 ‘오컴의 면도날’로도 유명하다. 이 철학적 도구는 동일한 현상을 설명하는 여러 가설에 직면했을 때 가장 단순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다.

16. 중세 철학자, 라몬 룰(1232-1315)

기독교의 진리를 보여주고 전파하기 위한 예술이나 논리 조합 방법을 창조하려는 라몬 룰의 시도는 그를 중세 시대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로 만들었다.

‘아르스 마그나’라고 불리는 그의 시스템은 신학적, 철학적 개념을 나타내는 일련의 회전하는 기하학적 도형을 사용하여 모든 신학적 또는 철학적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논증의 조합을 생성하려고 했다.

비록 그의 조합적 방법이 당대 지식인들에 의해 자주 사용되거나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룰을 계산 논리의 선구자로 주저하지 않는 많은 사상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17. 니콜라스 쿠자누스(1401-1464)

중세 철학자 니콜라스
쿠에스(Kues)에 있는 쿠사의 니콜라스(Nicholas of Cusa)의 출생지.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니콜라스 쿠자누스는 신학자, 철학자 겸 수학자이면 가톨릭교회 추기경으로, 그의 사상은 중세 철학과 떠오르는 르네상스 사상 사이의 중요한 전환을 대표했다.

가장 유명한 저서인 ‘박학한 무지’는 인간의 지식이 아무리 광대하더라도 신의 무한성에 비하면 항상 제한적이라는 생각을 탐구한다. 그러므로 참된 지혜는 자신의 무지를 아는 데 있다.

니콜라스 쿠자누스는 ‘대립의 합치’라는 개념을 도입했는데, 이는 겉보기에 모순되는 생각들의 결합에서 가장 깊은 진실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또한 수학 분야, 특히 무한의 개념과 관련하여 중요한 공헌을 했다.

18.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1463~1494)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철학자이자 인문주의자로, 다양한 사고 전통을 조화시키고 인간 존재의 잠재력과 존엄성을 강조하려는 노력에서 르네상스 정신을 요약했다.

어릴 때부터 지식에 대한 끝없는 갈증을 나타냈으며, 고전 철학부터 유대 신학, 수피 신비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문을 공부했다. ‘르네상스 선언’으로 묘사되는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연설(1496)’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미란돌라는 인간이 우주의 계층 구조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다른 생물과 달리 신의 높이까지 올라가거나 신의 깊은 곳까지 내려갈 자유와 선택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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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철학자의 중요성

위의 철학자들은 현대 사상의 구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세 시대는 철학이 광범위하게 발전한 시기였기 때문에 후대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 현대 철학은 이러한 중세 사상가들의 노력 없이는 이해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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