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소설, '1984'
‘1984’ 는 조지 오웰의 대표작인 ‘동물 농장‘의 뒤를 잇는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이다. 조지 오웰은 매우 흥미로운 심리적 뉘앙스가 담아 우리에게 정치적 문학을 소개했다. 오웰은 민주 사회 주의사상과 (사회 민주주의와는 다른 개념) 반 전체주의자로서 유명하다. 사실, 오웰은 내전 중 POUM 민병대에서 파시즘과 스페인으로 떠났다. 그는 자신의 저서 ‘카탈루냐 찬가’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1984’ 전체주의 정부를 바탕으로 한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오세아니아 지역에 위치한 소설 속의 정부는 모든 정보를 완전한 정부 통제하에 둔 사회를 만든다. 이 소설에서는 “현재를 통제하는 이는 과거를 통제하며, 과거를 통제하는 이는 미래를 통제할 것이다.”를 핵심 전제로 두고 있다. 오늘날 이 소설은 우리 사회에 반영하는 위대한 작품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이 소설은 우리가 오웰이 제시한 ‘전체주의 사회’ 어느 정도까지 가까워졌는지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1987을 통해 오웰은 심리적 관점에서 흥미로운 여러 가지 개념들을 제시한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런 개념들을 깊이 있게 분석해 볼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a) 이중사고, (b) 새로운 언어, (c) 정보의 통제에 기반한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1984의 ‘이중사고’
첫째, 정부가 집단을 통제하는 주된 방법의 하나가 ‘이중사고 (doublethink)’의 개념에서 비롯된다. 이중사고는 두 개의 상반된 의견을 동시에 가지면서 힘을 발휘한다. 이러한 상반된 신념은 동시에 한 사람 내에 존재하게 된다.
소설 속 오세아니아에서는 사람들은 ‘이중사고’를 교육받음으로써 모순을 받아들이고 실질적 존재 이유를 받아들이게 된다. 1984의 통제 된 사회에서 전체주의 정부의 이런 조짐은 숨김없이 드러난다. 전체주의는 가르쳐지고, 사람들은 전체주의를 받아들이지만 동시에 이를 부인하려 한다. 이런 움직임은 정부의 구호 세 가지에 반영되어있다.
전쟁은 평화롭다. 자유는 노예이다. 무지는 힘이다.
이중사고의 궁극적인 목표는 집단을 자동으로 이런 방식으로 사고하게 하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들이 이것이 모순된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두 개의 모순된 생각을 가지면서도 이에 익숙해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이미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은가? 이중사고와 현재 우리의 사고방식 사이에 특별한 차이가 있을까? 바로 이점이 이중사고가 심리적으로 작용하는 부분이다.
우리 사회의 이중성
많은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모순된 사고를 지지한다고 한다. Festinger의 인지적 부조화 이론(theory of cognitive dissonance)에서 이 이론은 설명될 수 있다. 그의 이론은 우리가 부조화된 생각들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Festinger는 우리의 두뇌에서 이런 불협화음을 무시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이중사고는 이 불협화음을 합리화하고 그것들과 공존시키는 방법이다.
실제로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이중사고를 많이 하고 있다. 정부들은 이런 점을 이용하여 이중사고를 더 발전시키고 있다. 가장 명백한 예는 테러에 대한 우리의 적개심이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국가가 이를 행하고 있으며 심지어 테러 집단에 무기를 팔고 있다. 우리는 이점을 극도로 주의해야한다. 모순은 자동으로 합리화되며,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이런 모순을 합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지 오웰의 1984: 새로운 언어
1984의 정부가 통제하는 또 다른 주요 양상은 생각을 통제하는 것이다. 생각을 통제하기 위해 정부는 유용한 사고 과정을 배제하고 실용적인 사고만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언어를 바꾸려고 한다. 정부는 사람들이 과도하게 사고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간주한다. 이중사고에서 벗어나 정부를 파괴의 길로 이끌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피어-워프 가설(Shapir-Whorf hypothesis)에 따르면, 오웰은 언어를 변화시킴으로써 인간의 사고를 바꿀 수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오세아니아 정부는 사고 통제를 실현하기 위해 언어를 가장 단순한 형태로 줄이고 완전히 실용적인 언어로 바꾼다. 이로써 동의어와 반의어는 의미를 잃어버린다. 판단과 해석으로 이어지는 단어의 뉘앙스를 전달하는 것은 더 이상 큰 관심사가 아니게 된다. 반의어는 갈등을 발생시키고, 갈등은 이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것의 예시는 사전에서 ‘전쟁’이라는 단어를 제거해버리고 대신, ‘더 평화롭다’ 혹은 ‘덜 평화롭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언어’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언어가 우리 삶에서 위험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어는 우리의 인식과 생각을 바꿀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정치 담론은 묘사하는 데 사용된 단어에 따라 매우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정치인들이 ‘공격’이나 ‘전쟁’과 같은 말에 반대하는 ‘민주주의’, ‘헌법적’, ‘평화’와 같은 단어를 언급한다면, 시민들로부터 동정을 구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이 특정 어법을 사용하는데 숨겨진 사고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1984의 ‘정보 통제’에 기반한 사회
1984의 독재자 ‘빅 브러더(Big brother)’는 항상 모든 것을 보고 통제하고 있다. 빅 브러더는 자신의 집을 포함하여 모든 곳의 시민들을 감시한다. 가정 내에서 아이들은 부모를 보면서 범죄를 저지른다고 비난한다. 통제의 주요 측면은 ‘정보의 조작‘이다.
오세아니아 정부는 정부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과거를 다시 쓸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진리 부(Ministry of Truth)는 모든 서신, 신문 및 책을 빅 브러더에 유리하게 바꾸기 위한 일을 맡고 있다. 빅 브러더가 초콜릿 배급량을 올릴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이전보다 적을 경우 초콜릿 배급량이 실제로 증가한 것처럼 과거 데이터를 변경한다.
우리는 정보 조작이나 통제에 취약한 위치에 있다. 텔레비전, 라디오 및 신문을 포함한 대중매체 뒤에는 일반적으로 정치 정당과 정부가 숨어있다. 그리고 그들은 정보를 변경하여 우리의 의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접하는 모든 정보를 읽을 때 비판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1984를 통해 오웰은 현재의 사회와 큰 평행을 이루고 있는 매우 흥미로운 디스토피아 사회를 보여준다. 이 평행선을 고찰하고 우리 사회의 잠재적 결함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오웰의 세계를 향해 가지 않기 위해선,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설득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