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을 지르는 것: 많은 가정에서 흔한 소통 방식
대화 중에 고함을 지르는 것은, 우리의 뇌를 과도하게 자극하고, 우리 스스로 다른 사람들을 경계하게 만들고, 우리의 감정의 미묘한 균형에 타격을 준다. 불행히도, 이런 고함 섞인 의사 소통은 많은 가정에서 매우 일반적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가족의 구성원 사이의 불편함을 야기시키고, 서로에 대한 보이지 않는 공격은, 각자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스페인의 작가, 자디엘 폰셀라는, 정말로 할 말 없는 사람이 큰소리로 말한다고 했다. 즉,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고함이란 방법을 통해서, 그저 옆의 물건 좀 전해달라고 말하려고 하거나, 단순히 옆에 있는 사람을 부르려 하는 것 뿐인 경우도 있다. 이들은 그저, 아무 불안 없이는 의사 소통이 불가능한 불쌍한 사람들인 것이다.
“나도 어쩔 수가 없어.”, 그들은 정당화하려 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피하려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정말 통제 밖의 낯선 일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늘상 들었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소리를 지르면 항상 남들이 자신에게 주목을 해주었고, 그 덕분에 자신의 권위를 지킬 수 있었고, 분노와 좌절감, 그리고 자아도 조율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의 목소리를 높인다고 그들이 당신의 말을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걸 알아야 한다. 만일 누군가가 소리를 지른다면,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반응해주고 생각을 할 거고, 그래야 역동적이면서 무질서한 인간관계가 만들어질거라는 걸, 생각하지도 못한 채, 우리는 남들보다 우리 자신을 먼저 바라보는 소통의 창구와, 소통을 할 수 있는 방식이, 단순히 소리지르는 것밖에 모르는 것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불행히도, 소리지르는 방식의 의사소통은, 여러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고함을 치면 서서히 인간관계는 파멸한다
고함치는 모습은, 그 모습이 어떻게 보이건 간에, 인간과 다른 동물의 본성에 관한 매우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생존과 위험에 처한 집단의 생존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 살펴보자. 우리는 지금 아마존 정글의 한가운데에 있고, 그 숲을 헤치며 걷고, 자연을 느끼고 있다. 이 때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우리 뇌에 고음 비명을 뿜어내는 원숭이의 비명소리이다.
그 울음은 당신과 당신의 그룹에게 경고하는 ‘알람’의 역할만을 하지는 않는다. 그 살벌한 서바이벌과도 같은 환경에 처한 대부분의 동물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공포에 반응하며 흥분한다. 편도체라는 두뇌의 매우 구체적인 구조를 제어하는 방어 메커니즘이 있기 때문이다. 큰 소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뇌의 이 작은 영역은, 이 상황을 즉시 위협으로 해석하고, 우리의 교감 신경계를 활성화시켜, 여차하면 도망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생물학적이며 본능적인 기초를 이해하면서, 우리는 이미 고함치는 소리가 많은 환경에서 자라나면서, 그 고함소리가, 우리의 의사소통에 어떤 의미가 될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뇌는 끊임없이 경고를 받는다. 아드레날린도 항상 분비되고 있다. 우리가 ‘무언가’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는 느낌은, 우리를 영구적이고 불안정한 고뇌의 만성 스트레스 상태에 빠지게 만든다.
다른 한편, 이 현실을 더욱 부추기는 것은, 만일 우리가 공격적인 의사소통의 방식에 직면할 때, 우리도 동일한 공감 요소로서, 같은 ‘고함 지르기’로 맞대응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악순환에 빠져들며, 의사 소통의 질이 모든 것인 인간 관계의 복잡한 정글 속에서, 우리 모두가 악순환에 빠지는 결과를 부르게 된다.
고함을 지르는 것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가족
18세의 소녀 로라는, 그녀가 지금가지 알지 못했던 것을, 최근에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매우 큰 목소리로 말을 하곤 했는데, 그녀의 학급 친구가, 종종 로라의 목소리가 수업에서 들리는 소리 중 가장 큰 소리이며, 혹여나 로라와 함께 그룹에 있을 때, 그녀의 의사 소통의 방법이 다소 위협적이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로라는 이에 놀라 이 행동을 통제하려 한다. 물론 집에서는 부모님과 형제 자매가 항상 고함을 지르면서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에, 마냥 쉽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꼭 갈등이 있어야만 소리를 지르게 되는 건 아니며, 그저 큰 목소리에 익숙해진 것 뿐일 수도 있다. 그녀는 또한, 자신의 가족들의 큰 목소리가, 그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기 위한 것임을 알고 있기에, 큰 목소리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는 있다 . 왜냐하면, 집안에는 항상 TV 소리가 들리고, 각기 자신의 행동을 하고 있고, 대화와 조화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로라는, 하루아침에 자신의 가족들의 특성을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나 부모님이나 형제 자매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나마 자신을 바꿀 수는 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야만 하는 일은, 그녀의 말하기 방식을 인지적으로 조절하고, 자신의 고함 소리가 누군가에겐 날카로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굳이 들을 필요가 없는 것임을, 그리고, 차분한 톤의 목소리가 훨씬 의사소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 간단한 예를 통해, 우리는 무언가를 매우 간단히 결정내길 원한다. 때로는, 우리를 키우는 부모와 같은 사람들을 바꿀 수없고, 우리 자신의 과거나 가족력을 바꾸어, 고함으로 얼룩진 가정 환경을 억지로 바꿀 수도 없을 때도 있다.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우리는 현재의 대화, 우리의 우정, 또는 낭만적인 연인 관계, 우리 집에서의 대화의 스타일을 막을 수는 있다. 고함을 치는 것이 오히려 더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자. 때로는 조용히 소통하는 것이, 우리의 차분한 의사소통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