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흘려 보내고 현재를 끌어 안아라

2018-01-15

우리는 창문을 열어, 헌 책 사이사이에 있는 책갈피는 갖다 버려야한다. 더 이상 의미가 없는 벽에 걸린 사진들을 버려야한다. 과거를 흘려 보내고 현재를 끌어 안아라. 이제는 더 이상 ‘나의 모든 것’이 아닌 것들을 놔주어라. 현재에 존재하는 우리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모든 과거의 흔적들을 말이다.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버려라. 작은 상자에 모든 것들을 싸보자. 물론 어떤 기능을 했었지만, 불필요하게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한 나머지, 이제는 불편하고 성가실 뿐이다. 간직할 가치가 있는 것을 제외한 과거의 모든 것을 버려라.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보관해야할 것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진다.

방대한 양의 값비싼 꽃들과 어떤 오래 된 배를 찾아 강풍을 뚫고 가는 금 조각을 상상해보자. 어떤 배들은 강풍이 가져오는 좋은 것들을 담을 수 없을만큼 쓰레기로 가득 차 있기도 하다. 이거만 봐도 과거의 것을 버려야하지 않겠는가?

과거는 추억을, 미래는 희망을 상징한다

만약 과거의 사랑스러운 추억이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런 추억을 간직하되, 무너질 것처럼 힘이 약해질 때만 다시 돌아봐라. 예전의 스스로의 모습에서 힘을 모으고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말이다. 만약 과거의 추억이 다시는 상기시키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것이라면, 차라리 운이 좋은 편이다. 아직 좋은 일이 남았기 때문이다.

머리 가위 여자: 과거를 흘려 보내고 현재를 끌어 안아라

다음으로는 앞에서 말한 것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일화를 들려주도록 하겠다: 진정한 지혜란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통해, 현재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교훈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다. 극심한 고통의 상황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 것 뿐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스스로의 힘을 인식하도록 도와 주는 촉매제 역할도 한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자신의 생활고에 대해 털어놓고 있다. 문제 하나를 해결하나 싶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아들을 주방으로 이끌어, 그릇 세 개에 물을 채우고 불 앞에 놓았다.

아들은 참을성 없게도, 어머니에게 대체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20이 지나자 어머니는 불을 껐다. 그러자 그녀는 당근 몇개를 꺼내서 그릇에 담고, 달걀을 접시에 담았다. 마침내 그녀는 커피를 좀 비우고 한 잔을 대접했다.

마침내 아들을 보면서 그녀는 말했다: 무엇이 보이느냐? 당근, 계란, 커피라고 아들이 대답했다. 또 아들은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어머니?”라고 물었다. 이것은 화학이다. 그녀는 설명했다. 세 가지의 물건이 끓는 물이라는 같은 역경에 직면해있다. 하지만 제각각의 성격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대응했다. 당근은 부드러워 졌고, 알의 안쪽이 단단해지고 껍질을 만들어냈으며, 커피는 좋은 향을 내보냈다.”

심각한 질병이나 외상으로 인해 고통 받아 온 사람들 중 몇몇은 모든 고통을 잊고 회복하기도한다. 경계 태세가 없도록 다시 태어난다면 우리는 더 강해지고 또 유연해진다. 이런 사람들은 새로 직면한 문제들을 바라보고, 가능성으로 변환시키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때 스스로에게 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제 다시 한번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과거는 짐이 아닌, 책임이다

과거의 실수로 인해 죄책감이 가득한 채로 사는 것은 것은 좋지 않다. 잠시 동안의 지난 날에 대해 반성을 하고 충분히 슬퍼해야한다. 하지만 이 과정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앞으로 평생동안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주어야한다. 이것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과거와 슬프게 만드는 과거의 차이점이다. 잔잔한 물이 좋은 뱃사공을만들 수는 없다.

“헌신적인 사람들과 마을은 자신의 근본을 알고 있다. 위대한 사람들과 강한 마을은 자신의 방향만 알면 될 뿐이다.”
-José Ingenieros-

꽃으로 나는 여자

과거를 흘려 보내고 현재를 끌어 안아라

과거에게 괜시리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단지 과거에 있던 경험을 빗대어 미래에 교훈으로 활용할 뿐이다. 이는 우정, 사랑, 직장, 습관, 취미 모든 것에 적용되는 말이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환자의 과거 역사에 관심이 있는데, 이는 그 얘기가 중요하거나 현재를 결정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지금 하는 행동은 과거의 특정 사건에서 기이한 방어기제의 원리기 때문이다.

1829년 10월 21일, 토마스 에디슨은 최초로 전구를 발명했고 전구는 48시간 동안 켜져 있었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당대 어떤 물건과 비교해도 훨씬 더 지속 기간이었다. 여기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전구에 사용된 필라멘트는 금속으로 된 대나무가 아니라 탄산 대나무였던 것이다.

그때부터 최대 1500시간을 버틸 수 있는 전구를 완성할 때까지 에디슨의 연구는 계속되었다. 현재 우리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최고의 비유가 아닌가?

우리 역시 삶에서의 전등에 불을 지피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해왔다. 만약 계속해서 불을 켜려고 노력하지만 동시에 불을 끄는 기계를 끄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간다.

대신 이미 과거에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방법이 있다면 놓아줘도 된다. 그런 방법들은 다 버려버리고, 완전히 떠나라. 그러는 동안에도 새로운 것들은 예전 것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어떤 것들은 어둠 속에서 나왔지만, 드물게 빛을 발하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