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윌슨: 에드거 앨런 포의 성찰 이야기

· 2019-04-29

에드거 앨런 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 천재 중 한 명이다. 단지 그의 작품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죽음과 무덤에 대한 숭배자의 신비한 일화도 있다.

에드거는 <레이븐(The Raven)>과 같은 기억에 남는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미스터리한 인물이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기도 하였다.

그의 모든 문학 작품 중에서도 오늘 글에서는 윌리엄 윌슨을 다루고 싶다. 이야기를 통해 저자의 잠재의식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 문학에서 매우 인기 있는 주제, 즉 더블이나 도플갱어의 주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드거 앨런 포는 1월 19일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그는 탐정 이야기의 원조자, 고딕 소설의 재생산자, 그리고 의심할 여지 없이 윌리엄 윌슨을 통해 공포의 일인자로 여겨진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마음을 분석하고 우리를 동요시키는 심리적인 공포를 다룬다.

에드거 앨런 포의 이중성

아마도 포의 삶이 평화로웠다면 그는 알코올이나 가족과 관련된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문학적 천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삶은 참으로 피폐했다. 그가 살았던 이 불안과 정신적 고문이 가득한 삶은 그의 작품에 반영되어 있다.

윌리엄 윌슨은 에드거 앨런의 캐릭터 중 하나다. 에드거 앨런 포의 유명한 이야기 중에서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이중적 라이프를 다룬다.

윌리엄 윌슨은 1인칭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로, 여기서 ‘저자’는 윌리엄 윌슨으로 제시된다. 비록 가명임에도.

이야기는 이 인물과 한 사람의 동반자의 삶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의 동반자는 그와 이름이 동일하다. 그는 평생 윌리엄을 따라다닌다.

이 두 캐릭터는 부모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이름이 같고 외모도 동일하다. 윌리엄 윌슨의 “더블”, 즉 대역을 맡은 이 자는 ‘원조’ 윌리엄 윌슨과 대결할 수 있는 유일한 등장인물이다.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이기려고 한다.

에드거 앨런: 윌리엄 윌슨

잠재의식, 이중성 그리고 문학

정신분석은 겉보기에도 불구하고 문학문헌의 분석에 매우 유용할 수 있다. 특히 상징성이 높은 사람들이 그렇다.

정신분석은 문학이나 꿈의 해석에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프로이트의 일상생활 심리학에 있어서 꿈은 그 유명한 심리적 구조, 즉 무의식, 의식과 관련된 트라우마의 해방이나 표현이라고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트라우마를 밝히려고 한다. 프로이트는 꿈을 의식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이번 항해의 수단으로 해석했다.

문학과 예술은 꿈과 유사한 메커니즘으로 여겨져 왔다. 저자는 은유와 상징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능한 트라우마를 볼 수 있게 한다.

프로이트는 우리가 문학에서 보는 일련의 현상을 분류한다. 이중의 생김새, 절단된 몸, 마술적인 생각 등이 있다.

문학의 역사를 통틀어 우리가 정신분석을 통해 해석할 수 있는 수많은 상징과 은유를 발견할 수 있다. 가장 연구된 사례 중 하나는 아마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일 것이다. 또한 수많은 남근의 상징과 아버지 형상의 상징적 죽음(적수의 모방)을 발견할 수 있다.

수많은 시와 문학 작품에서 이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의 좋은 예가 다마소 알론소의 The Mother이라는 시일 것이다.

예술에는 고야의 Saturn Devouring His Son이 있다. 이 작품은 정신분석을 통해 해석되어 왔다. 식인 풍습, 우울함, 파괴, 성적 문제와 관련이 있다.

아이를 먹는 남자

문학과 예술

문학은 무의식을 향한 길을 만든다. 이것은 프로이트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 전반에 걸쳐 존재해 왔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비극 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그곳에서 정말 잔인한 장면들을 볼 수 있으며, 이러한 감정을 통해 자유롭게 정화되고 정화된다고 말했다.

문학이나 예술에서 우리는 상당히 불쾌한 내적 갈등들을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유에 굴복한다.

이중의 주제는 영혼의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거울, 반사(물) 등을 통해 이중성의 구조를 확립하고 나타난다. 그 때문에,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분석할 때, 이런 작은 세부사항에 주목하는 것이 흥미롭다. 이러한 작품은 우리에게 그 작품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힌트를 줄 수 있다.

악한 쌍둥이

신화 속 인물 나르키소스 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는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했다. 이중성의 사례 중 하나다. 또한 이중주제의 첫 사례 중 하나였다. 플라우투스의 희극에서도 볼 수 있다.

여기서 쌍둥이는 서로를 혼동하고 헷갈려하며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다가 낭만주의의 도래와 함께 사악한 이중적 사상이 생겨났다.

이는 “악한 쌍둥이(evil twin)”이다. 이를 계기로 쌍둥이는 더이상 희극적 요소가 아닌, 비극적 요소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윌리엄 윌슨은 드라마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윌리엄 윌슨의 쌍둥이는 전형적인 사악한 쌍둥이가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우수한’ 존재다. 의식적인 마음의 목소리가 될 캐릭터다. 그것은 윌리엄의 개선된 버전이며, 그 존재로 인해 윌리엄의 자존감이 위협을 느낀다.

에드거 앨런: 대화하는 남자

에드거 앨런: 윌리엄 윌슨의 이중성

1인칭 내레이션과 윌리엄 윌슨의 생년월일(1월 19일 – 포와 동일함)은 이것이 자전적 작품임을 시사한다. 작가의 파란만장한 삶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윌리엄 윌슨은 포의 의식적인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 시절 그의 내부 투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분열된 성격은 처음부터 뚜렷하다. 이것은 이중성 뿐만이 아니라 윌리엄 윌슨이라는 이름 때문이기도 하다. “W”는 그 자체로 이중 성질을 나타낸다.

그것과는 별도로 성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즉 작품 내 소재는 모두 줄거리를 고려해서 선택된 것들이다.

윌리엄 윌슨과 그의 더블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친구가 된다. 이것은 이중성이 위협이기 때문에 증오와 공격이 자리잡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윌리엄은 그를 자기 자신의 성찰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한다. 대화가 계속되면서 둘 사이의 유사점들은 더욱 뚜렷해진다.

그 두 사람은 심지어 그의 옷과 그가 어떻게 걷는지까지도 보고 따라한다. 이런 의미에서 윌리엄 윌슨은 대담한 인물이다. 그는 법이나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에 그의 더블은 윌슨의 계획을 방해하려고 한다.

대립

이중성의 문제는 이 이야기에서 대담하고 심오한 방식으로 접근된다. 이 더블은 주인공에게 진정한 악몽이 된다. 이것은 작가가 의도한 개인적인 갈등이다. 분열된 성격은 주인공을 몹시 불안하게 만드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된다.

그것은 또한 이런 성격의 책에서 기대했던 대로 우리를 화려한 사건의 사슬에 이르게 한다. 게다가, 읽는 독자 역시 작품을 통해 성찰이 가능하다.

이 이야기는 많은 상징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분석할 가치가 있는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또한 포의 문제를 이해하는데 더 가까워지게 한다. 윌리엄 윌슨은 자서전적 요소가 있는 이야기다. 저자는 자신의 생활 방식에 의문을 품고 자신의 의식으로 대화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읽을 때 독자의 영혼은 작가의 뜻에 따라 흘러간다.”

-에드거 앨런 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