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를 인정하기: 왜 어려울까?

25 12월, 2018

알렉산더 교황이 일찍이 말했듯이, 실수는 인간이 하고 용서는 신이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표면상 완벽의 시대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힘들어한다.

게다가 정치가들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책임을 지려하지 않고 기관들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모른 체 해버린다. 자기가 저저른 실수의 인정, 왜 어려운가?

실수를 인정하기: 왜 어려울까?

왜 사람들이 실수를 인정하기 어려운 것일까? 용감하게 실수를 인정하는 것보다 뭔가 용서를 비는 것이 더 쉬울 듯하다. 오하이오 주립 대학에서 행한 한 연구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심리학자 Roy Lewick 와 Leah Polin이 발견한 것이 있다. “맞아, 내가 실수했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화나게 했다면 미안해”라고 말하기가 더 쉽다고 한다.

후자에서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것에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책임을 지지 않고 정서적 측면을 바로 잡는 것이 목표이다.

자신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남에게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흠이 없고, 취약하지 않고, 극도로 효율적인 것처럼 보이려는 고전적인 욕망은 매우 엄격하고 건강하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낼지 모른다.

행복은 완벽해지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님을 쉽게 잊는다. 행복은 인간다운 것에 관한 것이다!

결국,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성장하고 개선할 수 있는 예외적인 기회이다.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Goethe-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실수 인정하기: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요인

실수를 인정하기 거부하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상대방을 좌절하게 만든다.

우리 자신의 관점을 그들이 이해하게 만들려고 하는데, 이내 포기해버린다. 이유는 이런 사람들이 엄격한 성격에다 사교성도 모자라서, 우리가 실망하는 게 낫다는 인식이 들기 때문이다.

작년에 뉴욕 타임스지가 바로 이 주제에 관한 재미있는 기사를 실었다.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 Paul Krugman에 따르면, 우리는 지금 무과실이 만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예를 들면, 절대적인 완벽의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는 정치인들에게서 분명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실수를 인정하고 좋지 않은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누구도 넘고 싶어 하지 않는 빨간 선이다.

이는 주로,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약함의 신호라는 고전적인 생각 때문이다.

끊임없는 불확실성이 가득한 세상에서는 약점을 보이는 것은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과 진배없다.

이 알려진 사회적 시나리오를 넘어서, 가까이 있는 사람인데 실수를 인정하기 거부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재미있기도 하다. 왜 그럴까?

자아도취

런던의 브루넬 대학이 한 연구에서, 여러 성격을 분석하고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에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분석을 했다.

자아도취자는 자신의 성취와 힘에 대한 글을 끊임없이 올리는 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이런 매우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뭘 잘못한 것을 거의 인정할 줄을 모른다. 인정하면 자신에 대한 기대를 직접적으로 저버림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타인의 흠을 지적하기를 늘 좋아한다.

실수를 인정하기

개인적 무책임

개인적 무책임은 정서적 미성숙과 사회성 기능의 결여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필수적인 사회화 기능이 결여되어 있다.

“나 자신의 잘못에 대해 내가 책임을 안 지면, 잘못이 없는 것이고, 내 행동에 대한 결과도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난 뭐든지 할수가 있게 된다.”

이런 개인적 집중은 뻔한 실패와 불행으로 이어진다.

방어기제

우리는 모두 실수를 저지른다. 그럴 때 옵션이 두 개가 있다. 첫 번째이자 가장 합리적인 것은 실패를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다.

두 번째는 거부하고 방어기제를 적용하는 것이다. 인지 부조화는 분명히 흔하다.

그래서 자신의 정체성에는 영향이 없게 두 개의 모순되는 상황을 무시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를 들면, 유럽 사회학회지에 실린 한 기사는 아주 흥미로운 뭔가를 지적해주고 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은 그러는 것이 자신을 강하게 만들고, 남과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권한을 갖는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실패한 것을 알고, 인지적 부조화가 있다는 것도 알고, 그래서 자신의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침묵을 선택한다.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그 높은 데서 내려와야 한다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많은 심리적 전략을 이용하여 책임을 뻔뻔하게 회피한다.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보지만 쉽지가 않다. 하지만 가능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그 높은 데서 내려와서 더 인간적으로 되어서 실수를 인정하고 성장하는 것은 언제든 늦지 않다.

Festinger, Leo (1990) Teoría de la disonancia cognitiva. Paidós (Madrid)

Lowen, Alexander (2000) El narcisismo, la enfermedad de nuestro tiempo. Paidós América

Festinger, Leo (1992) Métodos de investigación en ciencias sociales. Paidós (Madr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