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왕자를 기다려서는 안되는 이유
옛날 옛적에 매우 빨리 잠에 빠져버리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있었다. 그녀를 잠에서 깨우려면, 그녀에게 걸린 저주를 풀어줄 수 있는 왕자의 키스가 필요했다. 왕자는 그녀를 잠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그녀가 깨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그녀의 “구원자”였다. 하지만, 만약 실제로 그 왕자가 절대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그 왕자에게 부여한 구원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리고 사랑과 독립심 사이의 미묘한 관계는 무엇인가?
오늘날의 인간 관계는 이것과 비슷한 형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절대로 오지 않는 왕자를 기다리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들, 그리고 이 공주들은 왕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그저 인생을 방관할 뿐이다.
이 공주들은 그 역할을 충족시켜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 역할, 그들을 깨워줄 역할. 때때로 그들은 그 “누군가”를 찾아낸다, 하지만 다시 그들을 잃어버린다. 그러면 그들은 매우 우울에 빠진다. 그들은 마치 그 무엇도 즐길 수 없는 꿈 속에 빠진 듯 하다, 그 꿈은 그들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꿈이다.
나는 선택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를 선택한다. 사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도, 나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나는 다른 사람이 그 모든 것을 책임지게 한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면 나는 텅 빈다.
사랑과 독립심
이 세상에는 매우 많은 잠자는 숲 속의 공주들이 있다. 실제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또는 심지어 자신들이 그것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왕자”의 키스를 받는 여성들. 하지만 한번 그 키스를 받으면, 그들은 그 구원자에게 매달린다. 그는 그녀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고, 그것은 보상 받아야 마땅한 일이 아닌가? 그를 벗어나려 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왜냐면 다른 왕자가 나타날 것이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때가 바로 공주들이 “구원자 왕자님”에게 평생 감사함을 느껴야 하는 순종적인 관계에 자기 자신을 던져버리는 타이밍이다. 그들은 자신을 전부 왕자에게 헌신하고, 왕자에게 자신의 삶을 빚졌다고 생각하며, 그에게 자신의 행복을 맡겨 버린다. 그들의 삶은 완벽하다! 그들의 사랑은 영원하다! 하지만 그것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그들의 왕자가 전처럼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가 자신을 피곤해 하는 것 같다! 행복이 깨지고, 남은 것은 고통스러운 잔인한 현실이다.
사랑은 고통이 된다
이때가 바로 사랑이 고통이 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끊임없는 분투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노력하고, 모든 것을 다 주고, 심지어 스스로를 낮춘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라졌다. 공주는 이제 이 왕자가 애초에 자신을 원하기는 했었던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어쩌면 그는 그저 공주에게 키스를 하고 싶었고, 그녀가 따라오는 것을 그저 말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고민한다. 어쩌면 그녀는 상황을 좀 더 어렵게 만들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처음에 왕자가 키스를 했을 때, 계속해서 자는 척을 했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완벽한 반쪽을 찾을 수 있다거나 함께하면 완전하게 느껴지는 구원자 왕자가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이 감정적인 의존을 만들어내고, 이것은 관계를 해로운 구원으로 바꾸어 놓는다. 사랑과 의존은 서로 싸울 것이 아니라, 서로 손을 잡고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그녀의 왕자에게 의존해왔다. 만약 왕자가 그녀를 떠난다면,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 왜냐면 그녀는 처음에 세상에 나올 때부터 그가 필요했었기 때문이다. 감정적인 의존은 그녀를 가둬버렸다. 사랑은 더 이상 행복의 동의어가 아니고, 그것은 노력과 고통이다. 공주는 왕자가 자신에게서 조금씩 멀어질 때마다 죽어가는 느낌이 들것이다. 그것은 정당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실제로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고? 왜냐면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깨어났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그녀 스스로.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왕자 없이 깨어나는 방법
오랜 세월을 이어져 온 이러한 공주 이야기들은 우리로 하여금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우리 자신 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것이 감정적 의존이라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이 없다면 자신이 아무도 아니라고 느끼는 감정이다. 우리의 행복, 웰빙 그리고 즐거움이 모두 다른 사람이 어떠한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느끼는지에 달려있다. 이것은 정당하지 않다,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그 다른 사람은 전혀 우리만큼 고통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자신의 왕자가 나타나 키스로 자신을 깨워주길 기다리는데 지쳤다. 이것은 그저 자신이 자존감이 부족하고, 스스로는 인생을 마주할 능력이 없으며, 사랑과 의존을 서로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공주가 기다림을 멈추고, 인생에 순응하며, 눈을 떠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러면 그녀는 자신이 실제로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왕자가 구원자가 아니고, 그녀가 그에게 희망을 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왕자가 좋은 사람이건 아니건, 모든 책임감을 그에게 지워버린다면, 그는 지쳐버릴 것이고 결국 떠나게 될 것이다.
장미빛 안경
우리에게 처음으로 와준 사람에게 자신을 바치고, 그가 우리의 구원이라는 생각을 멈출 시간이 왔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생각을 멈출 시간이다, 이 생각은 일이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흐를 때 우리를 더 힘들게 할 뿐이다. 우리는 자주 장미 빛 안경을 쓰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세상을 보려 한다. 우리는 그 안경을 벗는 것이 두렵고, 실제의 세상을 보는 것이 두렵다. 우리는 사랑과 의존을 따로 떼어 놓고 보는 것이 두렵다.
당신을 떠난 사람들의 행운을 빌어주어라, 왜냐면 그들은 당신에게 자신을 돌려주었기 때문이다.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만약 왕자가 오지 않으면,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깨어나지도 못한 채 죽을 수도 있다. 이것은 슬프게도 매우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완벽한 관계라는 것이 절대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으면, 우리는 슬퍼질 것이고 스스로를 불쌍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아무도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 자신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눈을 떠라! 어떻게 스스로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왜 당신의 가치를 믿기 위해 그것을 알아봐 줄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것인가? 왜 사랑과 의존을 동일 시 하는가?
이제 잠자는 숲 속이 공주가 깨어날 시간이다. 어쩌면 어느 날 두꺼비가 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왕자가 와서 키스로 자신을 깨워주길 바라지 말고, 스스로 일어날 시간이다! 공주는 자신의 왕자를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고, 왕자를 기다리고 있을 필요도 없다. 그녀는 스스로를 존중하고 소중히 하며, 최고를 가질 자격이 있다.
단지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좀 더 나아질 인생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의 인생은 이미 완전하고 온전하다. 이것을 깨달은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드디어 깨어났다. 그녀는 다른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 않기로 했고, 이제야 스스로 자신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사실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녀는 앞으로도 행복하게 잘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