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현재를 사는 것을 거부할까?

30 9월, 2020
현재의 삶에 집중하는 건 왜 그렇게 어려울까? 현재를 잘 사용하는 게 얼마나 유익한지는 알고 있지만,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무언가가 항상 존재한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은 위대한 로마시인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가 한 것이다. 이 말은 눈앞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현재를 즐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원래 이 명언의 전체 문구는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이다. 이것을 가장 정확하게 번역하면 “현재를 즐겨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를 사는 것을 계속해서 거부한다.

솔직히 현재의 순간을 활용하는 것보다 하루를 그냥 보내고 내일을 기다리기가 더 쉽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렇게 하는 경향이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정말 현재를 살지 못한다.

그들은 단지 지금 생각한다는 것 자체를 가늠할 수 없다. 현재를 살기엔 그들은 과거에 너무 집중하고 있으며, 그래서 자기 생각과 싸우는 모든 전투에서 패한다.

또 최악인 부분은 ‘문명사회’가 이 능력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갔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남겨져서 그것의 모든 목적이 느끼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을 멈추는 것인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도대체 왜 우리는 현재를 사는 것을 거부할까? 이것이 인간의 진화와도 관련이 있을까?

사람들은 판단으로 인해 현재를 사는 것을 거부한다

에크하르트 톨레(Eckhart Tolle)는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한 훌륭한 회의에서 정신적, 물질적, 감정적 방식으로 갇힌 인간의 불행에 대해 밝혔다.

그는 그들을 더는 일시적인 것으로 여기지 말고 동일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존재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반드시 정신적으로도 만족해야 한다.

이는 “자기도취” 또는 “자기 마비”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사실은 그 반대이다. 이번 생에서 “일을 해야 한다”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을 하는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판단은 쉽지만, 감정에 라벨을 붙이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즉, 자신을 판단하지 말자. 이는 바로 여기에서 가장 성숙한 형태의 헌신과 성격이다.

“경험과 고통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

-소크라테스(Socrates)-

현재와의 연결, 자아와 죄책감의 부재

때때로 정신적으로 감금되는 것을 그만두는 일은 아기, 자연 또는 동물과 즐거운 접촉과 유사하다.

사람이 자신을 판단하지도, 자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기로 하는 것을 보는 건 감동적이다. 어떤 사람들은 힘이 있다고 느끼고 다른 사람들은 약하다고 느낀다. 어떤 사람들은 평가받지 않을 때 긴장을 풀고 현재와 연결된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무언가를 계속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후자의 경우, 그들은 그 순간에 사는 것을 관둘 뿐만 아니라, 더 강한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는 과도한 나르시시즘과 자아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더 나은 회사를 찾고 문제가 있는 회사를 떠나야 할 수도 있다. 아마도 그들은 혼자 있을 때 판단을 제쳐두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또 그들은 자신이 한 일이나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모든 상황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 상태를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현재의 순간과 연결된다.

또한, 외부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지성과 참 지혜를 구별함으로써 그렇게 될 수 있다.

현재와의 연결, 자아와 죄책감의 부재

분리와 서구 문화로 인해 순간을 살지 않는 것

서구에서는 분리를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이 사람들은 놓아주기를 거부하고 그냥 버티기로 한다.

서구 사람들은 가족, 친구, 연인이 있을 때 그들이 영원히 지속할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진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들이 고통받는다는 것이다.

이 고통은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어떤 이유로 그들은 자유를 느끼고 현재의 차원과 연결되는 것을 매우 어려워한다.

현재를 사는 것은 개인이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할 때 확실히 더 어려우며, 더 나쁜 것은 행복하기 위해 누군가 또는 다른 것에 의존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는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를 알고 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극복하는 데에는 몇 달 또는 몇 년이 걸릴 수 있다.

슬프고 고통스럽지만,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다. 슬픔에 관해서는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를 정상적인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

정신 건강을 위해 현재를 사는 것을 배우자

더욱이 서구인들은 현재 소비지상주의 및 생산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즉, 현재를 살고자 하는 이 열망은 거의 사치가 되었다.

과연 지금 아침 바람이나 젖은 풀 냄새를 즐기기 위해 출근길을 늦출 시간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모두가 끊임없이 바쁘게 움직인다. 이것이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이는 이제 많은 사람에게 일상이 되었다.

우리의 일상은 매우 바쁘므로 주말, 다음 휴가, 또는 은퇴를 늘 꿈꾸게 된다. 또 출근하는 동안 저녁으로 무엇을 만들지 생각한다.

일요일은 월요일과 관련한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이처럼 현재의 순간은 너무 지루하고 공허해 보여서 이로부터 도망칠 수밖에 없다.

“과거에 머물지 말고 미래를 꿈꾸지 말며 현재 순간에 마음을 집중시키자.”

-부다(Buddha)-

자신의 가치를 고려하자

우리는 모두 오늘날 사회가 성과를 내는 것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알고 있다. 이는 모두 업무 수행 방식, 수익 창출 방법, 하루에 몇 시간 일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분명히 그 순간의 삶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철학을 게으르고 부주의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현재에 일체감을 주는 것은 과거와 미래다. 그것은 정지 화면이 아니라 영화의 일부다. 미래를 건설하려면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환경적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현재 환경을 대하는 방식은 분명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피로와 싸우기 위해서는 잠시 멈추고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다. 종종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기 위해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행동과 선택에 동기를 부여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굉장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찾은 다음 그 우선순위에 따라 일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족, 사랑 또는 자녀가 될 수 있다.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끝내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다.

잠시 시간을 내어 그 순간을 포착하고 즐길 때, 우리가 만드는 추억은 우리에게 엄청나게 소중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모든 감각과 연결될 것이다.

어떤 주술사들은 그들을 “뜨거운 추억”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지성으로 만들어진 “차가운 기억”과는 달리, 이러한 기억은 잊을 수 없고 위로의 원천이 된다.

반면에 성과에 너무 몰두하여 인생의 행복한 순간을 즐기지 않으면 인생에서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사실 소위 말하는 ‘중년의 위기’는 종종 이러한 관찰의 결과이다.

자신의 가치를 고려하자

사람들은 왜 때때로 그 순간의 삶을 포기할까?

현재의 살아 있고 건강한 느낌은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잠시 멈춰서지 않으면 그것을 감상할 수 없다.

작가 사라 밴 브레스낙(Sarah Ban Breathnach)은 매일 감사하다고 느끼는 5가지를 일기에 적어보라고 조언한다.

이렇게 하면 생각보다 자신이 훨씬 더 부유하다는 것을 알게 될 수 있다.

오랫동안 우리는 “현재는 과거에 달려있다”, “좋은 미래를 만드는 건 자신에게 달려있다”와 같은 말을 들어 왔다.

하지만 이 모든 말은 현재 순간의 가치를 쓸모없고, 보이지 않거나, 심지어 무활동과 관련시킨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즉,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취약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러한 종류의 메시지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개인에게 불안이나 공황 발작을 유발할 수 있다.

치유되는 유일한 방법은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직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매 순간을 살면서 특정 사건과 상황에 대해 진정으로 느끼는 감정을 스스로 파악할 기회를 갖게 된다.

그 결과 일부 상황이나 문제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만큼 나쁘지 않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 많은 경우 나쁜 일은 우리의 마음에서만 발생한다.

편견과 비극적인 사고방식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카르페 디엠! 살아 있는 동안 기뻐하라. 하루를 즐기라. 삶을 최대한 살라.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라. 우리의 생각보다 더 늦었다.”

-호라티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