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삶과 관계를 이어주는 접착제
어떤 의미 있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고, 삶과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신뢰이다. 신뢰는 진실성과 일관성처럼, 관계를 더 낫게 발전시키는 요소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신뢰를 주는 것만큼 심리적으로 중요하고 복잡한 것은 없다. 우리의 일부를 나눠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일상 속에서 하는 모든 행동이 신뢰 쌓기에 조금씩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택시에 타는 것도 택시 기사를 믿기 때문에 탈 수 있는 것이다. 수술을 받으러 병원에 가는 것 역시 그 병원의 의사를 믿기에 가능하다.
인간 관계를 한 데 묶어 주는 것은 상호 신뢰, 상호 이해 이상의 것이다.
-H. L. 멘켄(Mencken)-
맞다. 거리에 나갈 수 있는 이유도 지나가는 사람이 우릴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상은 이런 생활의 연속이다. 법칙이 있고, 약간의 혼란과, 균형이 우리 삶 속에 있다.
반대로 세상 모든 것을 불신하는 태도로 살아갈 수도 있다. 만일 우리의 사고 방식이 늘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라면, 공포 신경증에 걸릴 수도 있다. 불신은 우리를 마비시키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신뢰: 삶과 인간 관계를 이어주는 접착제
불신은 우리를 삶에서 “단절” 시키고 우리를 어둡고 위협적인 구석에 가둔다. 아주 간단한 이유 때문이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며, 우리는 서로 상호작용하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때때로 이러지 않거나, 심하게는 실망감이나 배신감을 경험하게된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우리의 뇌에는 정말 깊고 고통스러운 상처가 남는다…
신뢰의 신경 과학
산티아고(Santiago)는 몇 년 전 인생 최악의 배신을 경험했다. 그는 자기 친구, 반 친구, 동료와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친구들이 공을 다 가로채간 적이 있었다. 그 이후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다 잊고 용서하라고 말했지만, 산티아고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 사건 이후로, 그는 조심스럽고, 남을 쉽게 믿지 못하는 성격으로 변했다.
산티아고는 우정을 공중에서 춤 추는 두명의 예술가로 묘사했다. 둘은 함께 위험과 도전에 임했지만,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서로를 붙잡아줄 상대방의 손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한명이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 때 받은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감정은 몇 가지 재미있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옥시토신
이 주제에 관한 전문가는 많이 존재한다. 그들에 따르면, 옥시토신은 우리의 인간 관계 내부를 끈끈하게 유지시켜줄 신뢰를 형성한다. 우리가 인간관계를 긍정적이고 보람차다고 느끼도록 만들어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반대의 경우를 경험할 때, 우리의 뇌는 이를 위협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나서 그것은 코르티솔(cortisol)을 분비한다. 스트레스와 불안을 유발하는 호르몬이다.
전두엽 피질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사회적 과정은 전두엽 피질이라는 특정한 뇌 기관을 자극한다. 이부분은 보상감과 감사함을 담당한다. 이곳은 우리가 인간 관계와 관련된 기억을 모으는 곳이기도하다. 이런 기억을 바탕으로 우리는 의사 결정을 내린다.
이처럼 긍정적인 사회적 과정이 더 강한 뇌를 형성한다. 두려움, 불확실성, 불안감이 적은 뇌에서 말이다. 하지만 가끔 산티아고가 겪은 것과 같은 배신을 당하기만하면 그 뇌 부분은 완전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감정적으로 실망한 경우는 실제 화상을 입었을 때와 같은 고통의 중심을 자극한다. 이로 인해 진정한 사회적, 신뢰감 가득한 행동과 경험을 얻을 수 있다. 그 반대를 경험하면 잠시 동안 삶과 동떨어진 평화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을 믿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삶은 불가능하다.
-안톤 체호프-
인생 태도, 그리고 신뢰
우리는 모두 실망을 경험한 기억이 있다. 실망이 얼마나 쓴지, 뇌에서 실망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이미 알고 있다. 왜 우리가 실망을 느끼면 타파할 수 없고, 오래 갈 것처럼 생각이 되는지도 안다. 모욕감을 느낄 때도 있다. 더 안좋은 것은, 그 사람을 믿은 자기 잘못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얼토당토 않는 말이다. 악마를 믿은 사람은 잘못이 없다. 인간으로서, 누군가를 믿는 것은 본능이기 때문이다.
죄는 배신한 쪽에 있다. 왜냐하면 인간관계가 끝나는 것보다 기분 나쁜 일은 없기 때문이다. 믿던 사람으로부터 배신 당하는 것보다 비인간적이고, 기분 나쁜 일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기본적인 사실이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대하는 방식 그 이면을 알 수 있어야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남을 ‘신뢰’하는 자세를 취해야한다. 물론 과거에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는 그래서는 안된다. 살고, 앞으로 나아가고, 성장한다는 것은 그에 따른 위험을 감수해야함을 의미한다.
신뢰는 우리를 더 행복하고, 더 자유롭고, 더 정직한 미래로 이끌어 줄 수 있는 태도다.
이미지 제공 Tomasz Alen Kope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