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 젠더는 영화속에서 어떻게 표현되는가

2019-04-07

트랜스 젠더는 과거부터 논란의 여지가 있었고, 지금도 은근히 금기시 되는 주제로, 그 때문에 너무 오랫동안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그것의 정상화는 트랜스 젠더들에게 매우 느리고 힘든 길임을 증명하고 있다. 수십년 전에 비하면,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랑은 육체적인 것을 넘어선다고 이해한다. 심지어 오늘날, 몇몇 나라들은 동성 결혼을 허용하고 있다.

트랜스 젠더는 많은 편견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장벽 없는 사랑에 대한 요구와 표현은 여전히 매우 필요하다. 

트랜스 젠더에 대한 편견은 여전히 존재하고, 우리는 동성애자나 양성애자를 괴롭히는 사회적 괴롭힘이나, 폭력에 대한 뉴스를 듣는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들은 어떨까? 여전히 사회에는 뿌리 깊은 오명이 자리잡고 있다. 

성 전환을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 동성애자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환경에서조차, 그 오명은 어떤 식으로든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평생의 사랑의 시작이다.” 

오스카 와일드

한 가정의 구성원 중 한 명이 성 전환을 했기 때문에, 여전히 이사를 해야 하는 가정의 사례가 있다는 것은, 씁쓸한 사회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아직도 그 성전환 때문에 특정한 직업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가족들이 그들의 아들이나 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훨씬 더 끔찍하다.

트랜스 젠더는 영화속에서 어떻게 표현되는가

사실, 하리수를 비롯한 트랜스 젠더는 미디어에서 최소한의 가시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유일한 언급은 공격성과 괴롭힘 혹은 영화 속 패러디 정도이다.

영화와 TV에서 대부분의 성전환자 캐릭터들은 부차적인 역할을 가지고 있다매춘부나 코믹한 상황에서 등장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남자가 여자와 동침하는 유머러스한 장면이, 결국에는 성 전환을 하는 것으로 밝혀지는 것은 흔한 일이다.

글렌 혹은 글렌다 – 시야를 확보하기 위한 첫번째 단계

1952년, 크리스틴 조겐슨은 성공적인 성 전환 수술을 받은 최초의 사람으로서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이것은 글렌, 혹은 글렌다라는 영화에 영감을 주었다. 

역대 최악의 영화 감독으로 알려진 에드 우드가 감독했다. 

현재 에드 우드는 컬트 영화 감독으로 명성을 쌓았으며, 예산이 적게 소모된 그의 영화들은 여러 방면에서 발굴되어 다시금 연구되고 있다. 팀 버튼도 그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다.

“모든 사람들은 다양한 양성적 수준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남자라기보다는 여자다.”

– 크리스틴 조겐슨 –

우드가 직접 주연을 맡은 ‘글렌 혹은 글렌다‘는 우드에게 어울리는 영화이다.

지금도 많은 세계의 자료 속에서, 무수한 오류와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허점을 지니고 있다.

한마디로 역대 최악의 감독에 의한 영화이지만, 그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줄거리를 갖고 있었다.

글렌 혹은 글렌다

‘글렌 혹은 글렌다’에서, 우드는 복장 도착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감독 자신이 하는 것처럼, 크로스 드레서를 선호하는 이성애자 인물로서의 연기를 해냈다. 

또 성 전환 수술을 받는 혈액 투석을 맡는 역할의 캐릭터도 있다.

이것은 복장 도착증과 성 전환주의의 차이를 보여 주며, 이성애자도 도착증 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문제는 그것이 1953년에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그 시절에는 이런 도착증이 질병으로 간주되었고, 지금도 아직 온전히 해결되지는 못했다. 우드는 이것을 그의 영화에 반영했다. 

수십 년이 지난 후, 당신은 도도 소브레 미 마드레, 댈러스 구매자 클럽과 같은 여러 영화에서 다른 예들을 볼 수 있다. 

뮤지컬 록키 호러 픽쳐 쇼, 사막의 여왕인, 프리지아의 모험같은 작품들도 있다.

대니쉬 걸 – 트렌스 젠더는 수많은 장애물에 직면한다

대니쉬 걸은 우리를 실제 캐릭터인 릴리 엘베로 더 가까이 인도한다. 하지만 모든 각색과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에도 다양한 버전이 존재한다.

릴리 엘베는 성 전환 수술을 받은 첫번째 사람이었다. 남성에서 여성이 되기 전의 릴리는 아이나르라고 불렸다.

그녀는 화가였고, 또 다른 화가인 게르다 베게너와 결혼했다.

릴리는 무수한 장애물에 직면했다. 

이 사회적인 충격을 안겨준 사건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일어났으며, 그와 같은 환자들은 여전히 정신병으로 인지되어 치료를 받아야만 했고, 전기 충격 요법이 적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난소 이식을 포함한 다양한 수술을 할 독일 의사를 구했다. 그 당시에 그것은 실험적인 수술이었다.

대니쉬 걸

대니쉬 걸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목격할 수 있다. 에디 레드메인은 릴리 에이즈나를, 엘리시아 비칸더는 게르다 역을 맡았다.

많은 비평가들은 이것이 이 문제를 너무 많이 완화했고, 전개가 너무 극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대니쉬 걸은 꼭 필요한 영화이다.

에디 레드메인과 엘리시아 비칸더의 해석은 우리를 정복하고, 좀 더 자연스럽고 친근한 트랜스젠더의 모습을 보여준다.

모든 것은 게임으로서 시작된다. 아이나르는 게르다의 그림을 위해, 남성이지만 여성으로서의 포즈를 취하게 된다.

처음에 두 사람 모두 이를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샌가 또다른 자신인 릴리는 아이나르에게, 그의 남성적인 외모 뒤에 숨겨진 감정을 일깨워 준다. 

게르다의 아이나르에 대한 릴리의 그림은 꽤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영화에서 다루는 트랜스 젠더 - 대니쉬 걸 01

릴리를 인식하기 시작하는 아이나르

어린 시절 아이나르는 동성애 경험을 했지만, 그것을 숨겼다

릴리는 아이나르의 몸에 갇혀 살아야만 했다. 릴리는 게르다의 그림과 초상화를 보고, 그것들에 비친 그녀의 모습을 본다. 

하지만 그녀가 거울을 볼 때, 그 모습은 완전히 사라진다.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자크 라캉은 거울 앞에서 주체가 자신을 인식하는 단계인, 거울의 단계에 대해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의 감각이 형성될 때, 우리는 조각난 우리의 몸을 볼 수 있다. 팔, 다리, 손 등…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아보는 순간은 우리의 온몸을 보고 인지하는 순간이다.

릴리는 자신을 알아보려고 하지만, 정작 거울 속에 갇힌 채, 성공하지 못했다. 그림은 자기 인식에 가장 가까운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아이나르/릴리가 마치 벌거벗은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 있는데, 그는 여전히 남자답게 거울을 들여다 보면서 릴리로서의 ‘그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이 영화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 중 하나이다. 

릴리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다리 사이에 난 ‘그것’을 숨긴다. 왜냐하면 그것은 남성성의 상징이고, 그녀는 남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자이다.

영화에서 다루는 트랜스 젠더 - 대니쉬 걸 02

이와 비슷한 일이 그가 사창가로 들어갔을 때도 일어나는데, 그 곳에서 남자들은 벗은 창녀의 모습을 본다. 

릴리는 그녀의 몸을 보는 것처럼 그녀의 동작을 따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녀의 몸이기 때문이다.

대니쉬 걸은 인간의 사랑의 주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우리는 어떻게 게르다가 릴리를 받아들이는지 처음부터 지켜보게 된다

처음에 그녀는 그녀의 남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나르가 죽었고, 이제 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녀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은 어떤 편견보다도 더 크고, 그렇기에 그녀는 끝까지 릴리 곁에 머물렀다. 

비록 그들의 사랑이 다르고, 더 이상 ‘일반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녀의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영화는 인류에게 도움이 되고, 관객으로서 우리에게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반영하도록 만든다.

“어젯밤에 가장 아름다운 꿈을 꿨어. 나는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기의 모습을 꿈꿨어. 그리고 그녀는 나를 내려다보았고, 나를 릴리라고 불렀어.”

– 대니쉬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