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모습이든 내 몸을 사랑하는 순간

2018-05-27

어떤 모습이든 상관 없이 스스로의 몸을 사랑할 수 있는 순간은 인생에서 큰 발전의 시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체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 때문에 쉬운 과정이 아니다.

하지만… 몸은 어떻게 생겨야 하는가? 우리 자신의 평판을 판단하고 파괴하기 전에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자: 우리의 몸은 진정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누가 그렇게 말하는가? 패션은 당연하게도 우리가 우리의 몸에 대한 편견 형성에 있어 큰 역할을 한다. 패션 산업은 우리에게 몸이 어때야 하는지, 기준을 정해준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생각과 관심사는 어떠하든 상관 없어야 한다.결국, 우리는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신체에 대한 기준을 받아들일지, 자기만의 기준을 갖고 있을지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은 당연하게도 개인적인 선택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한다.

자신의 몸을 사랑하라: 신체에 대한 모욕을 수용하지 말고, 칭찬만을 받아들여라

만약 우리가 패션 업계의 변덕에 따라 변하는 외부 기준에 따라 우리의 몸을 만들려고 한다면, 통제할 수 없는 어떤 것에 평생을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신체에 대한 모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수용의 길로 갈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사랑으로 대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우리 몸을 “치료”가 필요한 어떤 대상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비판은 때때로 가혹하게 변한다. 특히 청소년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조각난 신체 어떤 모습이든 내 몸을 사랑하는 순간

거의 모든 인간들은 남 앞에서 멋있게 보여지고 존경 받을 필요를 느낀다. 많은 경우에 이는 신체와 관련되어 있다. 이처럼 신체는 주목 받을 만한 가치가 있기 위해서는 특정한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독특하고 특별한 사람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우리 내면이 겪어야 할 내적 투쟁은 어마어마하다.

자신의 몸을 사랑하라: 판단을 멈춰라

이처럼 우리의 몸은 전쟁터가 되어 버린다. 진정한 재앙의 지역이다. 사회는 우리가 관심도 없는 것을 자꾸만 강요한다. 우리는 절대 자기 신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고 교육받지 않는다.  아무도 우리가 그것을 평가하는 대신에 호기심으로 탐험하도록 격려하지 않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몸을 혹독하게 굴리고, 심지어 의식하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몸은 감옥으로 변한다. 집도 아니고, 놀라움과 변화의 장소도 아니다. 그것은 무거운 짐이다. 경쟁력 있고 매우 외모 중심적인 세상에서 불리한 점일 뿐이다.

날개

만약 우리의 몸이 우리에게 소리 치고 있지만 우리의 귀가 막혔다면 어떻게 될까? “나를 사랑해 줘! 날 좀 돌봐 줘! 다른 사람의 말은 그만 들어!” 우리가 시야를 바꿀 때에야 스스로의 몸에 있어 더 친근하고 따뜻한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 몸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어떤 모습이든 내 몸을 사랑하는 순간

우리는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래, 나는 약간 통통하지만, 내 몸을 애정으로 바라보겠어.” “그래, 배는 좀 나왔지만, 운동을 벌처럼 여길 바에는 즐기겠어.”

물론, 건강은 어떤 긴급한 변화의 필요성의 기초다. 우리 몸에 좋은 감정은 우리가 수용과 애정의 장소에서 몸을 돌볼 때 생긴다. 

운동하고, 춤추고, 몸을 돌보고, 정면으로 바라봐라. 그것은 모두 하나로 연결된다. 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내는 것. 이는 자신을 더 친절하게 보는 법을 배우는 가치있는 과정이다.

네 몸을 네 영혼의 무덤으로 만들지 말아라.
-피타고라스-

스스로의 몸을 “돌보기”를 원하는 것과 그것을 처벌하기를 원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마치 개조할 때까지 잠시 묵는 집과도 같다. 본인의 은 평생 묵어야할 곳임을 받아들여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몸이 어떻게 생겼든 상관 없이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