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우리를 강하게 한다: 킨츠쿠로이

03 3월, 2018

상처는 우리를 강하게 한다. 킨츠쿠로이(金繕い,きんつくろい)는 감정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고대의 일본 예술에서, 도자기를 수리하는 데 사용된 방법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 방법의 핵심은 흡집을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흡집을 금색과 은색으로 장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흉터가 생기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행동으로 인해, 잘 일어나도록 두지 않게 된다.

우리는 처음에는 우리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것에 끌리게 되지만, 이 선택은, 장기적으로는 상처가 치유되지 못하도록 막는 결과를 부른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상처가, 흉터가 될 시간조차 주지 않은 채, 빨리 낫기만을 바라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고통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상처에 딱지를 앉게 하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자신의 고통을 얕잡아보지 마라

별 거 아니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것은 그만둬라. 나보다 나쁜 사람이 있다고도 말하지 마라. 당신이 인간의 감정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당신은 공감력이 없고, 당신은 자신의 고통을 얕보고, 자신의 가치와 성숙함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이것은 위안과 자만적인, 자기기만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나를 성숙시키는 것과 같은데도 말이다.

상처는 우리를 강하게 한다

나는 용감한 사람이다. 나를 속이고 있는 나를 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상처를 감히 보고, 감히 치료한다. 나는 내 상처가, 나 자신이 살아 있다는 징후이기 때문에, 감히 내 상처를 가꾸려 한다.

나의 상처들은 내가 열심히 삶을 살았으며, 계속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두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최소한 나는 마음의 어둠 때문에, 그 의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내 상처에는 나의 자존심이 있다. 나는 부분적으로, 그들이 가져간 나의 시간이, 나의 배움이 될 기회의 창이라고 인정했다.

내 아이들은, 내가 겪은 고통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친구들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남에게서 손가락질 받을 일이 없게 할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따라야 할 모범적인 모습을, 나에게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모법적인 모습에서, 삶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이유가 없다는 것과, 적절한 방법을 잘 알고 있다면, 나 자신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줄 것이다.

고통은 삶의 일부이다. 우리가 이를 잘 말하지 않으려 한다 해도, 이는 불변의 사실이다. 신체적, 정서적 고통 모두 동일하다.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 모두는 고통을 겪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이것을 부인하면, 그것은 자기 기만이 될 것이다. 

모두 다 아마 상처를 겪었을 것이다

날 봐. 내 상처를 봐. 나는 사랑에 의해 망가졌다. 나는 내 딸이 느꼈던 것과 똑같은 고통을 느꼈다. 나는 잃어버린 것을 보고, 울었고, 이 무의미한 고통을 한 번 이상 저주했다.

나는 공감과 연민으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너처럼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지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다.

나는 깨진 영혼의 조각들을 집어들 수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의 모든 파편들을 집어 들고, 분노와 격노를 느꼈다.

내가 밑바닥까지 추락한 이후, 나는 나의 마음의 조각을 집어, 함께 되돌려 놓았다. 그것은 내게 일어난 일과, 그 일을 내가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되었다.

극렬한 두려움을 느끼지 말고, 강렬한 삶을 살아보자. 걱정하지 않아도된다. 당신의 마음은, 당신의 몸처럼, 수리 충동이라 불리는 적응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이 메커니즘은 우리의 고통을 치유하고, 우리의 흉터를 꾸미는 작업에 착수할 것이다.

최악의 상처는 자신이 만드는 것

나는 나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일을 분석했다. 이것은 나 자신의 필터를 제거하고, 거짓된 해석과 기만을 없애기 위함이다. 더 이상 나는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았기에, 상처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내 상처를 다시 열어야만 했다.

나는 이미 깨끗하다고 ​​생각했지만, 틀렸다. 나는 내 상처를 청소해야 했고, 그 때에야, 나는 나 자신에게 있었던 일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가 사랑과 연민의 관점에서 일어난 일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과, 나 자신이 나의 최악의 비평가임을 깨달았다.

나는 내 상처가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았고, 내가 슬픔에 빠뜨린 결론을 검토했다. 내 영혼을 억압하는 같은 슬픔을 말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우리가 행복해야 한다는 것을 확신시키려 한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의 역경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어떻게 감정적인 상처를 치유하고, 크고 작은 모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감정적인 힘과 자신을 연결하라

나는 나 자신의 힘과, 나 자신을 연결시켜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을 분석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역경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나는 거리를 두고, 다르게 생각하고, 건설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을 배웠다.

그 때 나는, 나의 행동과 용기가 감정적인 성장의 엔진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다음, 나는 내면의 대화를 분석하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나는 나 자신의 내면의 거인과 싸울 수는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의 것들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벽을 무너뜨리려는 것을 그만두고, 대신 문을 찾게 되었다. 결국 나는 바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수영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건널 수 없는 강을 저주하지 않고, 차라리 다리를 세우기로 했다.

여자

상처는 우리를 강하게 한다

나는 열심히 일했고, 나는 생각했고, 그리고 나는 용감했다… 또한, 나는 두려움이 나를 둔화시킬 수도 있지만, 끝내 나를 때리지는 못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나는 나의 상처 속에 반영된 아름다움을 찾게 된다. 이 감정적인 흉터는 나와 내 힘에 대해 많이 전하고 있다. 그들은 내가 고통에서 배우고, 역경을 극복하는 나의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 상처는, 나에게 연약함과 강함을, 동시에 생각나게 한다. 내가 그 상처를 볼 때, 나는 고통을 보지 못한다. 대신, 나는 힘과 내가 극복 한 모든 것을 보게 된다.

내가 내 상처를 볼 때, 나는 더 강하고, 더 안전하고, 어쩌면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 아마도 이것은 정말 행복의 비밀인걸까?

‘건널 수 없는 강을 저주하지 않고, 차라리 다리를 세우기로 했다.’
거울 속 여자

상처를 교훈으로 바꾸자

나는 내가 배운 모든 것을 나누기로 결심했다. 화재로 인해 상처를 입을 수 있음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을 태울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나는 정상적인 것을 다시 정상화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고, 혼자서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었고, 대신에 그들이 겪었던 상황에 맞게 고통받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격려했다. 이것은 강렬하게 살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엄격히 유보된 것이다.

요즘에는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끼는 일 없이, 두려움도 없이 내 상처를 보여줄 수 있다. 견디기 위한 역경은 순수한 기회의 산물이다. 다른 고통과는 다른 문제이다.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때로는 내가 결정했거나,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고통을 겪기도 했다. 내가 분석하지 않은 사람들과, 내가 가지지 않게 된 기대감, 또는 내가 경험했던 실망감 때문에.

세라믹 도자기 같은 삶은 허약하고 아름답다. 인생은 언제든지 우리를 수많은 조각들로 깨뜨릴 수도 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우리의 조각은 다시금 붙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로부터, 배울 수 있다면, 우리는 더욱 아름답고 강해질 것이다.

내 교훈, 내 상처, 고통

오늘, 나는 새로운 현실을 만든다. 연민, 공감, 사랑이 우리의 판단, 고정 관념 및 거짓을 뿌리째 뽑을 현실을.

나는 이 새로운 현실의 한 부분을 만들어나간다. 현실은 내가 고통 받았다는 것과, 영혼이 울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 눈물 중 단 하나도 헛되지 않았다. 내 눈물이, 모두 내 상처와 함께, 나에게 배울 것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킨츠쿠로이 덕분에, 오늘 나는 더 강하고 안전한 사람이 된다. 킨츠쿠로이 덕분에, 나는 내 상처, 감수성, 내 허약함 및 나의 불굴의 의지를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킨츠쿠로이가, 단순히 깨진 도자기를 수리하는 데 사용된 고대 일본의 기술일 뿐이라고 가벼이 여기지만, 이는 옳지 않은 것이다. 감정적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원천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