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토그래피: 섬뜩한 19세기의 과학

13 3월, 2020
19세기에 법의학자들은 살인자를 붙잡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기술은 어둡고 신비로웠으며 또 의심스러웠다.

19세기는 현대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기의 하나였다. 사회 운동, 산업화, 학교 출석의 증가 및 과학의 발전은 많은 혁신과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조합은 “옵토그래피”를 포함한 수많은 이상한 믿음과 과학적 실험을 일으켰다.

옵토그래피: 섬뜩한 19세기의 과학

당시 사람들은 내세, 셜록홈즈 소설, 그리고 가장 악명 높은 연쇄 살인범 중 하나인 토막 살인자 잭(Jack the Ripper)에 열광적인 관심을 가졌다.

따라서 이 시기에 독특한 법의학적 방법들이 고안되었다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중 가장 유명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끔찍한 범죄를 해결하려는 시도였는데, 이 방법은 희생자가 죽기 전에 그 희생자의 눈 망막에 남은 마지막 이미지를 되살리려고 애썼다.

비록 이 생각이 지금은 터무니없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1800년대 말의 사회가 사진술을 숭배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이국적이고, 신비롭고, 심지어 마술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맥락에서 일부 열정적인 전문가들이 사진을 기반으로 한 과학을 만들기로 한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옵토그래피: 섬뜩한 19세기의 과학

옵토그래피: 무엇일까?

옵토그래피(optography)라는 단어는 두 가지 그리스 말인 opto(시각)와 grapho(쓰기)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1877년 독일 남서부 하이델베르크 대학교(Heidelberg University)에 있는 학자들이 이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단어를 최초로 만들어 낸 사람은 바로 생리학 교수 빌헬름 프리드리히 쿤네(Wilhelm Friedrich Kühne)이었다.

그의 동료 프란츠 크리스티안 볼(Franz Christian Boll)의 독창적인 이론은 그가 이 주제에 관해 처음으로 깊은 관심을 두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 생리학자는 망막 내부에 색소가 있는데, 이 색소는 태양이 있을 때 희미해지고 어둠 속에서 다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이 발견은 법의학의 혁명을 약속한 새로운 가설과 이론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쿤네는 옵토그래피가 피해자의 망막을 분석함으로써 살인자의 신원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망막에 기록된 마지막 이미지가 범죄자를 찾는 데 필요한 단서를 제공해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해야 할 모든 건 바로 망막을 추출하고 그 마지막 이미지를 적절한 화학 물질에 넣어 보존하는 것이었다.

프라이어 크리스토퍼 쉬너(Friar Christopher Schiener)는 실제로 백 년 전에 안저사진(사진 전문가가 이미지에 부여한 이름)을 분석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프라이어는 개구리의 망막에 ‘기록된’ 마지막 이미지를 발견했을 때 개구리를 해부했다. 이러한 발견은 프라이어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장을 마련하게 되었다.

혁신의 잔인함

물론 쿤네의 의도는 좋았지만, 그의 방법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연구를 위해 도덕적으로 의심되고, 잔인하며, 다소 무시무시한 기술을 사용했다.

쿤네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없는 듯 보였다. 결국, 옵토그래피가 세상을 바꿀 거라고 믿었으니까!

쿤네는 실험을 위해 작은 개구리와 토끼를 사용했다. 그는 그들에게 긴 시간 동안 매우 밝은 빛을 보도록 강요한 다음 이 동물들의 목을 잘랐다.

그런 다음 그는 재빨리 동물들의 눈을 제거해 어둡고 밀폐된 한 방에 두었다. 그곳에서 그는 망막을 잘라내고 그 유명 색소를 화학 용액에 담아 보존했다.

“과학은 열 개를 더 만들지 않고는 절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그 실험이 다소 성공하지 못했다면 이러한 잔학 행위는 그렇게 흔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쿤네는 토끼를 사용하여 그의 가장 유명한 실험을 수행했다. 추정하기에 그는 그 동물의 마지막 창 이미지를 완벽하게 캡처할 수 있었다.

쿤네는 그의 옵토그래피 실험을 위해 수많은 동물들을 죽였다. 오늘날 사람들이었으면 아마 이러한 행동에 대해 신속하게 항의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의학과 생물학에서의 중요한 혁신이 너무도 많이 일어난 나머지 동물 학대나 동물의 고통에 대해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인간 검체

1880년 쿤네는 그의 가장 큰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한 지역 감옥에서 사형 집행자들은 온 가족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한 죄수의 목을 잘랐다. 그리고 이로써 쿤네는 처음으로 인간의 망막을 실험할 수 있게 되었다.

쿤네는 색소 분석 결과 단두대의 칼날 이미지가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 중 일부는 그의 주장을 거부했다. 그들은 그것이 다른 이미지가 될 수도 있다고 반문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그리고 1년 후, 쿤네는 망막의 해부학 및 생리학 관찰(Observations for Anatomy and Physiology of the Retina)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 책에서 그는 자신의 실험이 성공적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쿤네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과학적 근거는 없었다.

인간 검체 

옵토그래피의 진화

결국 불충분한 근거로 인해 법의학자와 경찰은 범죄를 해결하는 데 있어 옵토그래피 사용을 중단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 이론이 수년간 집단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도시 전설이 되는 건 막지 못했다.

옵토그래피의 신화는 수많은 책, 영화 및 TV 쇼에 영감을 주었다.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이나 쥘 베른(Jules Verne)과 같은 유명한 작가들은 이러한 아이디어를 자신의 이야기에 포함했으며, 닥터 후(Dr. Who)와 같은 유명한 TV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은 끔찍한 일에 매료되고 그것이 주는 죄의식을 동반한 즐거움에 저항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현명하고 문명화된 방식으로 우리의 능력을 사용할 책임이 있다.

결국 과학적 발견에 대한 미래의 책임은 우리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여전히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비밀을 계속 발견하려고 할 것이다.